단편/죽음의 앞에서

죽음의 앞에서 -2-

글쟁이파록 2016. 6. 22. 01:53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의 눈에서 쏟아진 눈물이 호수 하나를 만들어놓은 이후였다. 자신이 왜 울었는 지는 이미 한참 전에 잊어버렸고, 어느 샌가 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소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 눈물로 만들어진 웅덩이와 그 주변에 자라나는 풀과 작은 나무들뿐이었다. 그 상황을 보니 소년은 다시 눈물이 쏟아지려고했다. 그러나, 소년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막은 것은 어느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제야 다 운거야?"

소년은 목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짙은 갈색의 난방과 푸른색 반바지를 입은 한 청년이 웅덩이 주변의 바위에 올라서 소년이 만들어놓은 웅덩이에서 낚시를 하고있었다.

"아저씨는 누구에요?"

남자는 눈을 돌려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흔들리는 낚싯대를 들어올려 고기를 낚고 말했다.

"나? 나는 그냥 지나가던 낚시꾼이지."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짓말."

청년은 붙잡은 고기를 다시 웅덩이로 던져넣었다.

"믿던 말던 네 자유지."

남자는 바위에서 내려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갈 시간이야."

소년은 그의 손에서 점점 멀어지며 말했다.

"부모님이 모르는 사람 함부러 따라가는 거 아니랬어요."

그러자, 청년은 내밀었던 손을 주먹쥐고 다시 가져왔다. 그리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교육을 잘받았네."

청년은 턱을 만지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는 지 웃으며 소년에게 다시한번 손을 내밀었다.

"네 부모님 찾으러가자."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소년과 청년 단 둘 뿐이었고, 자신의 주변 외 온 세상이 모두 흰색이어서 무섭기도 했기때문에, 결국 소년은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웅덩이에서 나왔다. 웅덩이의 물방울이 소년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며 바닥에 닿자, 하얀색이었던 바닥이 천천히 푸른 녹색으로 바뀌어갔다.

소년은 청년의 손을 꼭 잡으며 천천히 그를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 지, 정말로 소년의 부모님에게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새하얀색만 보이는 앞을 계속 걸어갔다. 잠시 후, 소년이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그 질문에 청년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인 것 같아?"

소년은 그의 손을 한층 더 꼭 잡으며 말했다.

"도화지 나라?"

소년의 눈에는 세상이 새하얀 도화지처럼 보였는 지 궁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청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소년이 아까 보지 못했던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아저씨가 이 나라의 왕이에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그럼, 저도 이 나라에서 사는거에요?"

청년은 소년에게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이 나라에서 살고싶어?"

그러자, 소년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럼 너희 부모님께서 슬퍼하실텐데?"

"그러면 부모님도 여기에서 같이 살면 되잖아요."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소년이 궁금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왜요?"

그러자, 청년은 앞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는 혼자만의 나라거든."

"그럼 아저씨는 이 때까지 혼자 산거에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소년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았다.

"외로웠겠다."

"별로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어."

"왜요?"

"때때로 너처럼 손님이 찾아오거든."

"손님이요?"

"그래, 손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손님이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는 지 안쓰러운 표정을 조금 풀고 그를 따라 계속 걸었다. 잠시 후, 청년이 그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알고있어?"

그의 질문에 소년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이 곳에 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 이 곳에 왔는 지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소년은 이 곳에 오게 된 경로와 경위 같은 것이 생각나지않았다. 마지막에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온통 흰색의 침대에 누워 울고있는 엄마를 본 기억 뿐이었다.

"아니요, 기억나는 건 흰색침대에 누워있는 것 밖에 기억이 안나요."

청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많이 기억나? 대단하네."

청년의 칭찬에 소년은 가슴을 펴고 말했다.

"제가 학교에서 공부는 잘했거든요."

"그래?"

계속 걸어가던 남자는 잠깐 멈추고 웃으며 소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소년의 눈 앞에 기이한 장면이 보였다. 이 곳처럼 새하얀 방 안에서 소년은 새하얀 침대의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고 아파보였으며, 그의 옆에서 소년의 어머니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태영아, 뭐 먹고싶은 거 없어?"

소년은 이게 무슨 장면인지 잘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저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인줄로만 알고 마치 영화를 보듯 그 장면을 보고있었다.

누워있는 소년은 힘을 줘 상체를 일으키려했지만, 그것이 힘에 부쳤는 지 결국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누워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 치킨.... 먹고싶어."

소년은 말하는 것이 힘들었는 지 말하는 도중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말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꼭 나을 수 있다고 하시니까, 병이 낫게 되면 꼭 먹자? 알았지?"

그 말을 들은 소년의 머리 속에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자신도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 점점 머릿 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헐떡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불씨처럼 소년은 위태로워보였고 그 위태로운 상태에서 소년은 한번이라도 더 부모님께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미소를 지어보였다.

결국 소년의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소년은 의사선생님의 말을 믿지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소년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소년은 부모님을 믿고싶었다. 나을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이 꼭 이루어져 더 오랜시간을 부모님 곁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이었다. 부모님이 나가시기가 무섭게 소년이 발작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소년의 눈 앞이 끊기더니 다시 눈 앞에는 같이 걷던 청년이 그를 안쓰러운 듯한 얼굴로 보고있었다. 어느 새 소년은 청년을 만나기 전처럼 울고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소년은 울먹이며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게 뭐에요......?"

청년은 소년을 끌어앉은 채 말을 하지않았다. 청년은 그 아이에게 현실을 보여주고싶지않았다. 그 아이의 인생이 너무도 불쌍했기에,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만큼은 보여주고싶지않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아저씨..... 이게 뭐냐니까요.....?"

소년은 엉엉 울면서 그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나, 소년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않았다.

청년은 가만히 그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청년을 만나기 전처럼 소년의 얼굴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청년은 소매로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며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소년의 얼굴에서 눈물이 그칠 때 쯤, 청년은 다시 소년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소년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반항했다.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돌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소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태영아, 네가 계속 여기있으면 부모님께서 언제까지고 계속 슬퍼하실꺼야. 네가 이 곳에 오기 전에도 부모님이 슬퍼하시는 것은 보고싶지않았잖아."

그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저씨는 저승사자잖아요."

소년은 그 기억을 보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것은 좋은 상황이었지만, 청년은 마음이 아팠다.

"아니, 아저씨는 그저 너를 천국으로 안내하기 위한 안내자야. 네가 천국을 가지않고 이 곳에서 방황한다면, 과연 부모님께서 기뻐하실까?"

소년은 다시한번 울먹이며 상황을 도피하고싶은 듯 그의 손을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소년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제가 천국에 간다고 해도 부모님께서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지금 부모님께서는 네가 천국에 있다고 생각하실꺼야. 그런데 네가 천국에 가지않고 계속 여기 남아있는다면, 그게 더 부모님을 슬퍼하게 만드실꺼야."

이내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팔에 힘을 뺐다. 청년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소년은 힘없이 그에게 이끌려 걸어갔다. 소년이 있던 주변에는 흰색이었던 땅이 푸르게 변하고, 아무것도 없었던 땅에 나무들이 소년의 눈물을 먹고 자라기 시작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소년도 그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있었다. 자신을 데려가는 것이 저승사자의 일이라는 것을 책으로 보고 알고있었기에, 소년은 아까와 다르게 반항을 하지않았지만, 말을 하지않는 것은 청년이 그 기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기억없이 천국으로 가면 좋았을텐데, 소년에게 있어서 나쁜 기억을 보여주었기때문에 청년에게 삐져있었다.

청년은 천천히 입을 열고 소년에게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소년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러나, 소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까와 같이 새하얀 세상뿐이었다.

"거짓말."

소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년은 자리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그가 다시 자신의 안좋은 기억을 보여줄 것을 알았기에, 다시한번 빠져나올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결국 소년은 그에게 머리를 잡혔다.

이번에 보여준 것은 소년이 살고 있던 집 안이었다. 집 안에서는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생활처럼 식탁에서 부모님이 서로 마주보며 식사하고계셨다. 그러나, 소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소년은 그 곳에 있었다. 안방의 나무로 되어있는 서랍 위의 사진에.

부모님은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안방으로 걸어왔다. 아버지는 눈이 붉게 충혈되어계셨고, 서랍 위의 소년의 사진을 보고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흘릴 것 처럼 표정을 찡그리셨다. 그리고 사진을 들어올려 가슴에 꼭 껴안으셨다.

"태영아......"

아버지가 울고계시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그라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소리는 내고있지않으셨지만, 분명히 울고계셨다. 설거지하시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시더니, 이내 조그맣게 소리를 내시며 울으셨다. 그저 보기밖에 할 수 없는 소년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가까이 다가가 부모님의 눈물을 닦아주고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묵묵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내 다시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어느 새 눈 앞에는 청년이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년은 울지않았다. 쏟아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참았다. 자신이 울게 된다면 부모님께서 슬퍼하실 것을 알았기에, 소년은 울 수 없었다.

소년이 울지않자, 남자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울지않다니, 태영이 대단하네."

소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울면..... 부모님께서 슬퍼하시겠죠?"

청년은 소년의 말을 듣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인생이란 것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정신이 이렇게까지 성숙했다는 것에 감탄하고, 또 이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 너무 안쓰러웠다. 청년은 소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는 소년의 훌쩍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자, 도착했어."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던 소년은 고개를 들어올려 앞을 보았다. 그 곳에는 만화에서나 보던 엄청나게 커다란 배가 한 척 있었다. 청년은 뒤로 돌아 소년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때, 멋있지?"

소년은 또래 아이들처럼 흥분한 얼굴로 배를 바라보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이제 네가 이 배의 선장이 되는거야."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물었다.

"정말요? 제가 이 배의 선장이에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청년이 배를 두 번 치자, 위에서 사다리가 내려왔다.

"선장은 아무리 험한 일이 닥쳐와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울면 안돼. 그러면 너를 따르는 아이들도 따라 포기할테니까. 그럴 수 있지?"

소년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네, 절대로 울지않고 포기하지않을께요."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소년을 안아 사다리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소년은 빠르게 위로 올라가 갑판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청년도 소년에게 손을 흔들었고, 이내 배는 천천히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청년은 웃으며 뒤로 돌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년은 그의 말대로 울지않고 포기하지않았다.  배에는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며 그의 말에 따랐기때문에 외롭지않았고, 그들을 잘 이끌며, 소년은 도착지에 도착했다. 배가 멈추자, 소년은 사다리를 내려 움직이는 인형들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보고올께."

인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색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그 주변에는 풀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꼿꼿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의 중앙에는 흙으로 된 도로가 있었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배에 있는 인형들에게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리려했지만, 어느 샌가 배는 사라져있었다. 소년이 당황하며 뒤로 돌아 달려가려했지만, 누군가가 소년의 어깨를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손의 주인을 바라보니, 그 사람은 소년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할머니!"

"우리 손주왔누."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소년은 횡설수설하며 할머니에게 이 때까지 오며 겪은 일들을 얘기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길을 따라 걸어가는 소년과 할머니의 뒷모습은 매우 행복해보였으며, 청년은 그들이 천국에서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