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21-
"괜찮으세요?"
멀리서 마리아가 현식에게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마리아. 현식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아요. 긴장이 풀려서 그래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뒤에서 그녀의 동료들이 다가왔다. 에비나는 고개를 숙여 현식에게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였으면 위험할 뻔 했습니다."
두 명의 기사들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현식은 멋쩍은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기사들만은 미소를 짓지않고 현식을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기사인 테너. 그는 현식에게 물었다.
"어째서 도와준 겁니까?"
그의 질문을 듣고 이해를 하지못했다는 듯 바라보는 현식. 그러자, 테너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경쟁상대인데, 어째서 경쟁상대를 도와주는 겁니까?"
그를 말리려는 듯 에비나와 마리아가 표정을 찡그리며 그를 붙잡았지만, 옆에 있던 베니가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아무래도 베니도 테너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했다.
"그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그런 이유로 우리를 도왔다는 것은 말이 되지않습니다. 예전에 만난 적도 없고 아무런 상관조차 없을 뿐더러, 경쟁상대인 우리들을 그딴 말같잖은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도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설득해도 그는 정말로 그 이유일 뿐인 현식의 진심을 믿지않을 것 같았다.
현식이 뭐라 말할까 고민하고있을 때, 뒤에서 트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그 이유 뿐일꺼에요."
고개를 돌려 트레시아를 바라보는 테너. 트레시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희도 그냥 광분상태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이게 용사가 될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냐고 한소리 들었어요."
테너는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저 정의감 하나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저희를 구하러 와줬다구요?"
로엔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볼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는 현식. 그런 그를 보며, 그는 이빨을 꽉 물었다. 현식은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 말대로, 당신들과 벤이 둘다 탈락하면 저희가 용사가 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해서까지 용사가 되고싶은 생각은 없어요. 용사라는 것은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지않고 방관만 하는 사람들이 용사가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봐도 뻔하죠."
미소를 짓는 현식. 테너 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마리아와 에비나, 베니까지 놀란듯 현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내, 마리아가 피식하고 웃자, 에비나도 작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에비나, 저 사람이 진짜 용사가 되야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에요."
테너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 사람의 마음은 자신도 뛰어넘을 수 없는 용사의 마음을 가지고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로 나서지 못할 그런 용기조차 가지고있는 사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 왜 저 트레시아라는 사람의 밑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현식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위로 올라가 볼께요. 이제 경기장의 수습도 다 끝난 것 같으니 다음 경기가 시작 될 것 같아요."
"네, 저희도 그럼 올라가죠."
거대한 귀족의 방 안에 성인식도 치르지않은 열세살정도의 소년이 심심한듯 의자에 앉아 책상에 턱을 괴고있었다. 그는 방 안이 답답한 듯 연신 방 안을 돌아다녔지만, 이내 힘이 빠져 방의 오른편에 있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푹신한 감촉이 기분을 조금 괜찮게 만들었지만, 심심한 것은 똑같았는지라 그의 심심함은 다시 찾아와 그의 기분을 안좋게했다.
"여봐라, 거기 누구있느냐?"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소년. 이내 집사인 듯한 늙은 남자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왕자님."
"심심한데 무언가 할 것이 없느냐?"
왕자님이라고 불리운 이 소년은 짜증을 내며 그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당황하며 생각에 빠진 집사. 그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렇다면 별관의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 용사 모집 시험장을 구경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소년. 소년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집사에게 외쳤다.
"아, 그래! 지금 용사 모집 시험 중이니까, 그 곳에 가서 구경하는거야! 제레브, 좋은생각이지?"
집사 '제레브'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은 생각이십니다, 왕자님."
소년은 자신의 외출용 푸른색 튜닉을 입고 그 위에 자켓을 입은 후에 머리에 보석이 달린 작은 금관을 쓰고 제레브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곧 여름인지라 밖은 꽤나 더웠다. 자켓을 입고나온 소년은 헥헥거리며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지만, 그 작은 손으로 나오는 바람은 얼마 되지않았고, 그 적은 바람조차 쨍쨍 내리쬐는 태양때문인지 뜨거웠다.
소년은 옆에서 양산을 들고있는 제레브에게 말했다.
"그냥 돌아갈까..... 너무 더운데....."
제레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소년의 귀 가까이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있으면 도착이니 조금만 더 힘내십시요."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이렇게나 더울 정도면, 그는 이번 여름은 말라죽지않게 왕궁에 작은 수영장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형경기장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소년은 원형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원래라면 지금쯤 시작하고있어야했는데 벌써 끝난 것일까?
"제레브. 용사 모집시험 벌써 끝난거야?"
제레브역시 이상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제레브는 원형경기장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소년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저 안에 강자가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용사 모집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
흥미롭게 바라보는 소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갈정도면 저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엄청 강하다는 뜻이었기에, 그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원형 경기장으로 향했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소년. 소년은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보려고 원형경기장 관중석의 제일 앞자리에 앉으려했지만, 제레브는 소년을 부르며 말했다.
"왕자님,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위험하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봐야 잘 보입니다."
"그래?"
제레브의 말을 듣고 중간 쯤에 앉은 소년.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려고 하고있었다.
이번 경기는 4:4의 단체전이었다. 트레시아라고 하는 여검사의 파티와 리온 위스트하트라는 기분나쁘게 느끼한 남자의 파티의 싸움이었다. 구경중에서는 싸움구경이 제일이라고 했던가. 잔뜩 흥분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하는 소년.
그러나, 싸움은 재미가 없게 흘러갔다. 4:4 단체전이라고 해봤자 트레시아라는 여자의 팀에서는 두 명만이 싸웠고, 저 리온 위스트하트라는 남자의 팀에서는 뒤에 있던 마법사가 버프만을 걸어준 채 혼자만 싸우고있었다.
그나마 흥미로웠던 점은 트레시아의 팀 안에 젊은 마검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마검사는 꽤 보기힘든 직업이었기에 그의 싸우는 방식만큼은 꽤나 흥미로운 여흥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다음은 소년도 알고있는 오센트가의 딸, 마리아 오센트의 파티 대 벤 파우트라는 남자의 파티의 싸움이었다. 중간까지는 꽤나 볼만한 싸움이었다. 두 팀 모두 강한 실력자들이었기에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그렇게 싸우다가, 벤 파우트라는 사람이 자신의 피를 보고 화가 난 것인지 광폭해졌을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광분화의 기술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 없었고, 광분화를 보고싶어도 그 사람이 다치거나 화난 상태가 되지않으면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광분화가 되는 순간이 너무나 위험했기에 아버지이신 국왕폐하나 제레브는 절대로 보여줄 생각을 하지않았다.
제레브는 남자가 광분화가 되자 소년에게 작게 속삭였다.
"위험한 것 같으니 여기서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레브.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보고가자."
위태롭게 싸우고 있는 두 파티. 격렬히 싸우는 것을 보니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마냥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빨리 저렇게 싸우고싶었지만, 그는 아직 실력이 부족했다.
중간에는 경비병들이 난입해 그를 막았지만, 벤은 쉽게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고, 그 장면을 본 제레브는 표정을 찡그렸지만,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그 장면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얼마 가지않아 벨라가 다른 용사 모집시험을 보러 온 파티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10개 정도 되는 파티원들 중 그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소년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람이 위험에 빠졌는데 도와줄 생각을 하지않는 놈들이 용사가 되겠다고?"
제레브도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런 상황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용사일텐데말입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 전에 봤었던 마검사인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붙잡은 동료들과 조금 싸우는 듯 하더니 동료들의 손을 뿌리치고 원형경기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호."
흥미로운 듯 그를 바라보는 소년. 잠시 후, 그는 마리아를 도와 싸우기 시작했다. 마리아가 위험에 빠진 것을 구하고, 벤에게서 조금 떨어진 다음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단검에서 작은 불꽃의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단검의 검신이 점점 붉어지며 불이 뿜어져나왔다. 그 불은 천천히 단검을 감싸며 기다란 검신을 형성했다.
소년은 흥분하며 제레브에게 물었다.
"제레브, 저게 무슨 기술이야?!"
제레브는 남성이 쓴 기술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저도 마검사는 처음보는 거라 잘은 모르겠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제레브조차 모르는 기술을 쓰는 남자. 소년은 그에 대한 흥미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 경기가 끝나면 반드시 그를 자신의 방으로 부르리라.
남자는 벤이 휘두르는 세검을 피하며 불로 이루어진 검으로 그를 공격했다. 벤은 막으려했지만, 불로 이루어진 검이었기에 막지못했고, 결국 저 남자가 가지고있던 단검이 배를 찔러 벤은 쓰러졌다.
굉장한 경기였다. 평소에 보지못했던 직업의 싸움이라서 그런 것인지 한층 더 흥분되었다. 이런 경기가 항상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졌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한 소년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저 사람은 용사가 되면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떠나야했다. 계속 자신의 곁에서 싸움을 해줄 수 없었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레브. 여기 있다가 경기가 끝나는대로 저 마검사를 내 방으로 데려와줘."
제레브는 몸을 숙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