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죽음의 앞에서

죽음의 앞에서 -4-

글쟁이파록 2016. 6. 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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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도 없이 앞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공간에, 성별도 알 수 없이 흰색으로 되어있는 인간이 흰색으로 이루어진 책상에 앉아 아무 것도 적혀있지않은 흰색의 책을 보며 흰색으로 이루어진 연필로 공부하고있었다. 그 것이 무슨 공부인지, 무엇때문에 공부하는 것인지도 알지못하고, 그것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아무 것도 쓰이질 못할 공책에 멍하니 무언가를 쓰고있었다. 그게 멍한 것인지도 얼굴을 볼 수 없기때문에 알 수 없었고, 그녀가 끄적이고 있는 손길을 따라가보면 오로지 낙서 뿐이었기에, 예측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있을 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푸른색의 난방에 초록색의 바지라는 잘 어울리지않는 옷 한벌을 입고, 남자는 그것에게 다가가 책상에 손을 짚고 책을 보며 말했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 좋냐?"

그것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그것이 정말로 남자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허공을 보는 것인지 눈이 없어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그것이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을 확신하고있었다.

그의 질문에 그것은 천천히 말을 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는 한없이 얇고 구슬프게 아름다웠다.

"제가 하는게.... 공부인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의 손에 들려있는 연필을 천천히 집어들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래, 네가 하는 것은 '공부'란 이름의 낙서야."

그것은 자신이 이 '공부'라는 것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여기있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이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행위가 자신이 이 곳에 살고있는 이유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만둘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제가 이 행위를 하고있는거죠?"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네가 알고 있으니까."

그것은 자신이 이러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의 머리 속에서는 해답이 보이지않았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것을 하기 전의 생각은 나지않아요."

남자는 그것의 앞에 있는 책을 덮고 말했다.

"너는 이 곳에 오기 전, 가장 오랫동안 해서 배긴 습관을 하고있는거야."

그것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가장 오래 한 것이 이 공부라는 것인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해온 것은 이 '공부'라는 것일꺼야."

그것은 덮어진 책을 보았다. 아무 것도 적혀져있지않은 책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낙서를 하는 것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한 행동인걸까.

그것은 남자에게 말했다.

"도대체 이런걸 왜 하고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기 때문이지."

"가장 중요한 부분이요?"

"그래."

남자는 천천히 그것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것의 눈 앞이 흐려지며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것의 눈 앞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이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난 후에 교복도 벗지않고 방금 전, 그것이 했던 것 처럼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고있었다. 그녀가 끄적이는 것은 그것이 알고는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문자로 되어있었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그녀가 그만두기를 마음 깊숙히 원하고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만둘 때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그녀에게 달려가 그만두게 하고싶었지만, 그것은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임을 알고있었기에,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알고있었기에, 가만히 앉아 바라만보고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동안 책상에 앉아 낙서만 하고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드디어 그녀가 공부를 그만 두었다. 그만 두었다기보다는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코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소녀는 바로 달려가 코에 휴지를 뭉쳐 꽂아넣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 그만 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만 두지않았다. 어째서 그녀가 피를 흘리며 그렇게까지 열심히 낙서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거야?"

그것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소녀에게 들리지않았다.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아니, 잡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의 손은 그대로 그녀를 통과했고, 통과한 손은 책상을 짚었다.

책상을 짚은 것을 보고, 그것은 책상의 물건들을 하나 둘 내동댕이 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있던 책들과 공책, 그리고 필통과 물이 담겨져있는 물통, 그리고 시계......

하나 둘 던지다보니 어느새 책상에는 소녀가 들고있는 연필과 책 한권밖에 남지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손에서 연필을 빼앗으려했다. 그러나, 소녀의 손에 들려있는 연필은 꼼짝도 하지않았다. 마치 붙어있는 강력한 자석을 떼어내는 것처럼, 그녀의 손을 필 수 없었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연필또한 빼앗을 수 없었다. 연필을 빼앗을 수 없자, 이번에는 공책을 빼앗으려했다. 그러나, 공책 역시 책상에 딱 붙어있는 듯 들어올려지지않았고, 그것은 자신이 박살낸 시계와 던져버린 책, 필통에서 빠져나와 흩어져있는 필기구들이 떨어져있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째서 하는거야!"

그것은 소리쳤다. 자신이 왜 이 소녀에게 그런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지못했다. 그저 이 소녀가 공부를 그만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그것의 눈부분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져내렸다. 어느 새, 눈 앞에는 아까 보았던 남자가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고있었다. 그러자, 그것은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 사람은 공부라는 걸 피를 흘리며 저렇게 열심히 하는거죠?"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에게 말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기 때문이야."

그것은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물었다.

"도대체 어째서 저런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다는거죠? 알 수 없는 문자들,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빽빽히 공책에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울 뿐인데, 그 것이 제대로 머리 속에 들어가지도않는 그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하는 거냐구요!"

그것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소녀가 뭐길래, 자신이 이렇게까지 울면서 그에게 항의하는 것인지, 그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잖아, 그 세상은 공부가 전부인걸."

남자는 그것을 껴안고 말했다. 그것은 하릴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었고, 눈물은 그것의 얼굴에 있는 흰부분을 조금씩 지워가기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질 무렵, 그것의 얼굴에 붙어있는 흰색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눈, 코, 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진 흰색 조각은 천천히 초록빛으로 변하며 바닥을 물들였다.

"자, 이제 갈 시간이야."

남자는 말했다. 그녀는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그에게 향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남자는 말했다.

"더이상 이런 것을 하지않아도 되는 곳으로."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어느샌가 그것은 손을 떨고있었다. 왜 손을 떨고있는 것인지, 그녀는 알고있었다.

"정말로.... 안해도 되는건가요?"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때까지 습관이라는 중독에 빠져 이 자리에서 흰색의 책에 하얀색밖에 쓰지못하는, 아니 하얀색도 나오는 지 의문스러운 연필로 낙서만 하고있던 이 세상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남자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남자는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 곳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이 새하얬지만, 남자는 마치 이 곳의 지리를 다 알고있는 것처럼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눈밭이라면 발자국이라도 생겨 어둠이 지겠지만, 이 곳은 눈밭이 아니였기에,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그렇게 가던 도중, 남자는 그것에게 물었다.

"만약 공부를 하게되지않는다면, 너는 뭐가 하고싶어?"

그것은 고민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싶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하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공부라는 낙서를 하는 습관밖에 없었기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않아요. 제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싶어했는지."

그러자,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그녀의 머리에 다시한번 손을 올렸다. 이번에도 똑같이 그것의 눈 앞에 한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에는 아까봤었던 소녀가 책상에 앉아있었다. 아까와 같은 장면에, 그것은 적잖게 당황했지만, 이내 그녀가 끄적이고있는 것을 보고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가 손으로 끄적이는 것, 그녀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선이 하나씩 그어졌고,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그것의 머리 속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소녀를 남자가 계속 보여주는 이유, 그리고 이 소녀가 누구인지.

소녀의 얼굴은 공부할 때와 달랐다. 웃고있지는 않았지만, 신나있는 것 같았고, 행복해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공부할 때의 집중하는 것과 달랐고, 그림을 그릴 때 집중하는 모습은 마치 상처입은 고양이에게 약을 발라주는 것처럼 섬세하고, 또 아름다웠다.

"다 됐다!"

그녀는 연필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가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행복하게 웃는 소녀와 양손에 조심스럽게 들려있는 한 송이의 연꽃이 있었다. 그 꽃 또한 소녀처럼 행복해보였고, 소녀의 웃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어느 새, 그것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얼굴에 있던 모든 흰색 조각이 떨어져나가고,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이 끝나고, 그것, 아니 그녀는 자리에 앉아 눈을 뜨고 아무소리도 내지않은 채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어때, 하고싶은  걸 찾았어?"

남자가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소녀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울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에 비해 소녀의 울음소리는 구슬프고, 구슬펐다.

떨어지던 눈물이 하늘로 올라가며, 어느 새, 흰색의 하늘은 구름이 개듯 파란 하늘색을 띠며 사라졌다.


그녀는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에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자신이 떠오르는 기억이 기쁜 일도, 슬픈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새, 남자가 가는 곳을 따라가고 있던 그녀에게, 남자는 말을 걸었다.

"기억이 나기 시작했어?"

그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한번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도 기억나니?"

자신이 이 곳에 오게 된 경위, 그녀는 그거 하나만큼은 기억나지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그녀가 공부를 하고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요. 그것만큼은 기억나지않아요."

그 대답에, 남자는 웃었다. 그가 왜 웃었는 지, 그녀는 알 수 없어 물어보려했지만, 그녀의 말보다 한발 앞 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 다 왔다."

그녀는 남자의 앞을 두리번거리며 보았다. 그러나, 그 곳에는 흰색의 바닥 그 위에 있는 커다란 연꽃 하나밖에 보이지않았다. 

"여기는 어디죠?"

남자는 말했다.

"이 건너편이 이제 네가 바라던 곳이야."

"제가 바라던 곳....."

소녀는 눈을 찡그려가며 먼 곳까지 바라봤지만, 아무리 먼 곳을 보더라도 처음있었던 곳처럼 흰색의 바탕밖에 보이지않았다. 소녀가 표정을 찡그리고 있자, 남자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일단 연꽃 위에 올라가봐."

소녀는 남자의 말대로 연꽃의 위로 올라탔다. 그러자, 남자는 천천히 뒤로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어디 가는거에요?!"

소녀의 외침에도, 남자는 아랑곳하지않고 계속해서 갔다. 그녀는 남자를 따라가려고 연꽃에서 내려오려했지만, 남자를 한번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연꽃 위에서 가만히 멀어져가는 남자를 보았다. 잠시 후, 조금 멀리 떨어진 남자는 걸어가며 양손을 머리 오른쪽 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가 박수를 치는 순간, 소녀는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신호에 맞춰 세상은 푸른 하늘과 초록빛의 땅으로 바뀌어갔고, 그가 있던 연꽃 아래의 흰 바닥들이 부서지며 깨끗하고 맑은 연못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주변이 연못으로 바뀌자, 연꽃은 천천히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이동하는 연못 위에서 흘러가는 물을 만지고 느끼며 행복에 젖었고, 어느 새 떨리던 손은 멈춰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소녀는 연꽃 위에 한 주머니를 보았다. 그 주머니를 손에 쥐고, 그녀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보기위해 묶여있던 끈을 풀었다. 그러자, 안에서 새하얀 연기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그녀의 눈 앞에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맨 처음 그녀가 본 것은 호수의 벤치에 앉아있는 자신이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앉아서 영어단어를 외우고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영혼없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머리 속에 들어가는 지, 들어가지않는 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습관처럼 앉아 공부만 하고있는 그녀. 그녀의 눈 앞에 한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과는 다른 얼굴을 한 아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행복해보이고, 즐거워보였다. 그녀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자신도 그 아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중이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일어나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는 퐁당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 가라앉는 돌멩이를 보며, 소녀는 자신을 떠올렸다. 이 세상이라는 호수에 가라앉아 빠져나올 수 없는 한 개의 돌멩이.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것은 얼마 가지않았다. 갑자기 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깜짝놀라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아까 봤던 아이가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도와줄꺼야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안타깝게도 물에 빠져있는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한 여자, 그리고 자기 자신밖에 있지않았다. 그녀는 부모로 보이는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119에 신고할 생각도 하지않고 그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저 상태로 계속 간다면, 반드시 소녀는 죽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그녀는 물에 뛰어들었다. 그 날 처음보는 아이였지만,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고있는 아이가 죽게 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매우 안타까웠다.

호수는 생각보다 깊었다. 발이 닿을 줄 알았던 소녀는 발이 닿지않자 순간, 겁을 먹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어 겁을 떨쳐내고 소녀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갔다. 그러나, 소녀는 수영을 잘 하지못했기때문에, 빠르게 갈 수는 없었다.

소녀가 거의 도착할 무렵, 허우적되던 아이가 힘이 빠졌는 지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수영하여 그 아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를 잡은 것은 호수의 깊숙한 곳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머금고있던 숨을 그 아이의 입 안에 불어넣고 힘껏 위로 던졌다. 그러자, 아이는 천천히 몸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된 소녀, 소녀는 그 순간 힘이 풀렸다. 그녀의 몸 안에는 이제 그녀의 힘이 되어줄 공기조차 남아있지않았다. 자신이 호수에 던졌던 돌멩이처럼, 소녀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자신이 행복해보이는 소녀를 구할 수 있었다는 안도와 함께.


장면이 끝난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마지막이 누군가를 구하고 죽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공부하다 죽은 것이 아닌 누군가를 살리고 죽었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녀가 죽은 것에 대한 슬픔을 덜어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연꽃에 엎드렸다. 연꽃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얼마있지않아, 소녀는 잠이 들었고, 그 소녀가 더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연꽃은 천천히 자신의 잎을 닫으며 빛을 가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