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파록 2016. 7. 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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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붉게 물들고있는 황혼의 때가 다가오고있소.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보금자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고, 그 사이에 몇몇 아이들만이 친구와 함께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오.

요즘들어 당신이 그리워지는구려. 새빨간 장미의 정원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나는 이렇게 백발의 노인이 되었으니,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느껴지는구려. 만약 살아있었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있었겠지.

그 때의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생크림과 같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있었지. 아주 새하얀 원피스를 말이야. 그 때의 당신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았소, 진심으로. 당신은 원피스와 같은 새하얀 손으로 붉은 장미를 만지고 있었고, 나는 뒤에서 당신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소. 용기를 내 당신에게 다가가볼까 생각해봤지만, 그 때는 몰랐겠지만, 지금의 당신도 알다시피, 그 때의 내 직업은 하찮은 병사일 뿐이었으니까. 그 때, 나는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돌아가려했지만, 내가 돌아가려는 순간 당신이 돌아봐주었지.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아름다운 눈웃음을 보여주었소.

그 눈웃음과 마주하니, 내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렸소. 메두사의 눈을 본 사람처럼말이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주었지. 그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는 당신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소.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얼굴을 맞대고 한마디 말했지. 꽃을 좋아하냐고.....

솔직히 나는 꽃을 좋아하지않았소. 그 때의 나에게 꽃은 그저 한줄기 연약한 영혼이라오. 줄기를 잡고 들어올리면 사라지는 연약한 영혼들. 그런 연약한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소.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오. 내가 이것을 싫다고하면 사라질까봐, 내가 좋다고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나를 떠날까봐 아무말도 할 수없었소.

내가 아무말이 없자, 당신은 내 멍한 표정을 보더니, 내 손을 잡고 나를 장미의 정원으로 끌고가지않았소? 그 때의 감정이란, 나는 잊을 수가 없다오. 아직도 때때로 장미를 볼 때면 그 때의 장면이 떠오르오. 당신에게 이끌려 붉은 피처럼 붉게 물들은 그 가시돋힌 장미를 보고, 만지고, 향기를 맡는 그 기억이 말이오.

그 이후에도 나는 당신과 더욱 가까워지고싶어 매일 같이 당신과 만났던 장미의 정원으로 향했소. 당신이 언제 올 지 몰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곳으로 가고, 가고, 또 가고.....

당신은 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의 시간을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 때의 나는 마음속 깊이 행복을 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는 꽃들을 보고, 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그 자리에 있었소. 나는 훈련이 끝나는대로 바로 당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가 우연인 것 처럼 말을 걸었소. 

그러나, 당신은 내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 지, 놀라지도 않고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지. 그 때부터였나보오, 내가 당신에게 완전히 빠져들게 된 계기가.....

어느 날 문득,나는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는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었소.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꽃을 보며 같은 향을 맡는 당신, 옷이나 생김새를 보면 고위 관직의 딸이었을 것 같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지. 당신은 왜 항상 여기에 있는거냐고....

그러자,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 당연히 이 장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내 목적은 그게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얘기한 것 같았소. 그래서 다시 물었지. 당신은 어디에 사냐고. 그러자, 당신은 또 다시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지. 이 정원 주인의 딸이라고.

나는 그 때 당신을 포기했소. 당신의 사랑스러운 얼굴, 표정, 행동, 모두를 평생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내고싶었지만, 계급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하급병사라는 계급이 귀족이라는 당신의 계급과는 맞지않았기에, 나는 더이상 당신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소. 그래서 다음 날부터, 나는 가지않았소. 당신이 있는 그 장미의 정원에.

당신을 잊기 위해 수련을 더 열심히 하고, 당신을 잊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하고, 당신을 잊기 위해 잠을 더 많이 자고.... 그렇게 힘을 들였는데도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소. 잊는 것은 수련이나 일을 할 때 뿐이었고 일이 끝나고, 수련이 끝나고, 심지어 잠이 들기 전까지도 나는 당신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소. 내가 당신이라는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소.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내가 당신이 있는 장미의 정원에 안간 지 꼬박 1년이 지난 시점이었소.


그 생각이 든 다음 날, 나는 당신이 있던 그 정원으로 성큼 걸어갔소. 당신을 만나기 위해, 한편으로는 당신이 나를 미워할까봐 두렵기도 했고, 당신이 나를 잊었을까봐 두렵기도 했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당신이 그 정원에 없는 것이었소. 당신이 없다면, 당신이 나를 미워하는 지, 당신이 나를 잊었는 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소.

내가 당신이 항상 앉아있는 정원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당신은 그 자리에 앉아있었소. 그 때처럼 깨끗한 새하얀 원피스를 몸에 걸치고, 장미처럼 붉은색의 리본을 머리에 단 채로 당신은 의자에 앉아 장미를 바라보고있었지. 그 때, 나는 생각이 바뀌어 당신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소.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무서웠지. 과연 아무 말도 없이 오지않았던 나를 미워할까봐, 잊었을까봐 나는 다가가기 무서웠소. 그렇게 내가 주저할 때, 당신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돌아보았소. 그 순간 나는 긴장에 사로잡혀버렸지. 당신이 아무 표정도 짓지않고 돌아본다면 나를 잊은 것이고, 표정을 찡그리고 돌아본다면 나에게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당신을 쳐다보고만 있었소.

그러나, 당신의 표정을 보고, 내 생각 자체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웠소.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고, 나에게 한마디를 했기 때문이었소.

'또 오셨네요.'라고.....

그 때, 당신은 내 눈물을 보고 안좋은 일이 있었나봐요라며 내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나는 안좋은 일이 있던 것이 아니었소. 내가 사랑한 당신을 믿지못한 내가 너무나도 창피하고 미웠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렸던거요. 그리고 그리웠던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 한층 더 나의 감정을 증폭시켰지. 그 때 이후로 내가 울지않았던 것은 아마 그 때 모두 울었기 때문일꺼요.

그 일이 있고나서, 나는 항상 당신이 있는 정원으로 달려갔소. 훈련도 때려치고말이요. 당신과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당신의 웃는 모습을 더 오래 보기위해서 내가 되고싶던 기사를 포기했소. 그러자, 내가 자주오는 것이 이상했는 지, 당신은 이렇게 물었소. 내 일은 어떻게 한거냐고. 나는 당신에게 대답했지. 당신을 위해 포기했다고. 그러자, 당신은 이 때까지 보여주지않은 화난 표정과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소. 어째서 자기와 만나기위해 포기한 거냐고, 당신은 자신때문에 내가 병사를 그만 둔 것을 원치않는다고 얘기했지. 그러나, 나는 당신을 더 만나고싶었소. 당신에 대해서 더 알고싶었고, 당신과 함께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싶었소.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당신은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갔지.

당신이 데려간 곳은 정원에서 멀리 떨어지지않은 넓은 들판이었소. 이 들판에서 당신은 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며 말했지. 당신의 꿈은 세상을 돌아다녀보는거라고. 그래서 나는 물었소. 돌아다니면되지, 어째서 이 좁디좁은 새장안에 같혀있는 거냐고, 그러자 당신은 슬픈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소.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소. 이 세상에는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할 수 있어도 고작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다니.....

그 때 이후로 나는 당신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되었소.


나는 다시 왕궁의 병사로 들어갔소. 그리고 전쟁이 터졌지. 이 평화로운 작은 나라를 쳐들어오는 악의 무리들, 우리는 그 악의 무리와 열심히 싸웠지만, 병력의 차이가 심해 결국에는 졌소. 그리고 당신이 있던 곳까지 쳐들어갔지. 나는 그 전투에서 살아남아 당신이 있던 그 장미정원을 향해 달려갔소. 숨이 차올라 목이 아프고 헛구역질이 나와도,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않았소. 당신이 적에게 끌려가 생각하고싶지도 않은 일을 당할까봐, 당신이 그 더러운 역적들에게 죽을까봐, 나는 그 생각이 들 수록 더욱 더 빠르게 당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소. 그러나, 당신은 그 곳에 없었지. 그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장미들까지 모두 불에 타거나 줄기가 꺾여 죽은 채로 내 눈을 가득 채우고있었소. 그 곳에서 나는 오열했지. 정말 구슬피 울었소. 달려오느라 숨이 턱까지 막혀오는데도 고통스러워 더이상 이야기하지 말라고 몸에서 이야기하는데도 나는 우는 것을 멈출 수 없었소. 그러나, 당신의 시신이 이 곳에 없다는 것에, 나는 희망을 걸고 일어났소. 그 때부터 나는 당신의 꿈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당신을 찾았소.

세계를 여행하기는 했지만, 나는 당신의 꿈처럼 구경은 할 수 없었소. 당신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기때문에 나는 구경할 시간 조차 아깝다고 생각했지. 나는 당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을 그리고, 그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찾아다녔소. 누군가 봤다고 얘기해 그 곳으로 가봤지만, 그 것은 그저 당신과 닮은 여자였을 뿐, 당신은 아니였소. 그리고 또 다시 여행하며 당신을 찾고, 당신을 찾아다니고, 당신을 찾아헤매고..... 그렇게 몇년의 시간이 흘렀소. 전 세계를 찾아다녀도 당신은 볼 수 없었지. 아니, 나는 당신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고 믿었소. 당신이 노예 시장이나, 여관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소. 시신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었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다시 장미의 정원을 찾아왔소. 당신이 살고있던 그 집은 마지막으로 봤던 것 과 같이 불에 타 그을린채 폐허로 되어있었소. 그러나, 그 장미의 정원은 어느샌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있었지. 나는 당신이 앉아있던 그 의자에 앉아 당신이 바라보던 장미를 보며 시간을 보냈소. 그리고, 그 장미의 앞에서 당신을 발견했지. 당신이 입고있던 새하얀색의 원피스, 그 원피스 안에 보이는 당신의 새하얀 피부같았던 그 유골. 나는 당신의 새하얀 옷을 붙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소. 당신을 지키지 못하고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지만, 조금만 찾으면 볼 수 있었을 당신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안타깝고 후회되고 나를 괴롭게 만들었소. 어쩔 수 없었다고도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그 생각을 억지로 하려고할수록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소.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당신의 유골과 함께 시간을 보냈소.

그리고 다음 날이 되고, 나는 당신의 유골을 당신이 사랑하던 그 장미꽃의 앞에 묻어주었소. 당신이 평생을 사랑하던 그 장미꽃과 영원토록 행복하게 함께 하라는 마음으로, 나는 당신을 그 장미꽃에게 떠나보냈지. 그리고 당신이 평생을 이루고싶어하던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소. 나는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았던 포시니아부터 트란실, 벨테게우스, 에반스테릭, 심지어 세상의 북쪽 끝에 있는 블라테누스에도 갔다왔소. 그리고 여러사람을 만나고, 여러풍경을 보며 당신이 하늘에서 이 장면을 보기를 바랬지.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당신의 앞에 와있소. 앞에서 말했던 것 처럼 머리는 백발에 보기싫은 주름, 흰 수염을 가진채로 말이오. 이 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구려. 당신, 당신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내 꿈을 포기하고 당신의 꿈을 이룬 나에게 화를 내겠지만,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오. 당신의 꿈을 먼저 이루었을 뿐이지. 나는 이제부터 다시 병사가 되어볼 생각이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꿈을 이룰 생각이오. 내가 꿈을 이룰 때까지, 당신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며,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오.

그럼 당신의 무덤에 장미꽃 한송이와 이 편지를 놓고가오. 부디 하늘에서는 원하던 삶을 살며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는

벤호반 에스페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