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르카
손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붉은 루비. 그 루비에 비쳐보이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보였다. 그가 주저앉아있는 집 안에는 사람 한 명, 심지어 그 흔한 개미조차 한 마리 돌아다니지않았다. 그는 피가 부족해 현기증이 일어나는 머리를 움켜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거울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있는 퀭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또 하나의 자신. 그는 표정을 찡그리고 주먹으로 거울을 치려다 바로 앞에서 멈췄다. 팔을 다시 내린 그는 자신의 팔목을 보았다. 날카로운 것에 베어진 그의 팔목,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그의 팔목은 금세 아물은 것인지 울퉁불퉁한 딱지가 져있었고, 그 딱지의 주변은 새빨갛게 부어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핀네아스'의 수도 센타님, 그 수도는 긍정적인 사람들로 인해 언제나 활기찼고, 그 활기가 한낯 작은 마을에서 수도로 바꿔주었다. 점점 몸집을 불려나가는 센타님. 그러나, 거대한 코끼리의 무리에서도 돌연변이가 있듯이, 마을의 안에서도 긍정적인 사람이 아닌 자가 있었다. 항상 미소를 띄지다면않고 퀭한 눈으로 바닥만을 바라보며 걸어다니는 존재. 그 존재는 행복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다른사람이였 반드시 행복했을 일도 그에게는 작은 실소조차 지어지지않았다.
그렇게 부정적인 남자에게도 미소를 짓게하는 하나의 존재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딸 '엘베르카'. 그는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을 환영해주는 엘베르카를 보며 미소를 짓고 안아주었다.
엘베르카는 때때로 그가 집으로 들어왔을 때, 거실에서 큰 소리로 울고있었다. 그는 바로 달려가 엘베르카를 달래며 왜 우냐고 물어봤지만,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안겨오는 것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일을 나가지않고 엘베르카에게 항상 붙어있고싶었다.
그가 집에서 쉬는날이면, 그는 엘베르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던 미소를 지으며 엘베르카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따뜻한 소녀의 온기를 느끼며 걸어가는 길은 그에게 있어서 천국에서 내려준 축복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그는 소녀를 이끌고 공원으로 걸어가 다른 아이들과 놀게하고싶었다. 그러나, 그가 다가와 엘베르카를 아이들에게 소개하면, 아이들은 그녀를 피해 자신의 부모님에게 달려가기 일쑤였고, 어울리지못한 엘베르카는 결국 혼자서 모래사장에 앉아 손으로 흙을 만지며 놀았다. 그는 그렇게 왕따를 당하는 엘베르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엘베르카는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듯 했다. 아이들이 전부 그녀를 피해 도망가도, 그녀는 울음 한 번 내비친 적이 없었고, 짜증조차 낸 적이 없었다. 이런 그녀를 보고, 그는 때때로 집에서 그녀가 우는 이유를 알고싶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않아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나 집에 빨리 돌아온 어느 날, 집에서는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그녀가 우는 이유를 반드시 밝혀내리라 다짐한 그는 빠르게 집 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 쇼파에 앉아있는 엘베르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을 보았다.
쇼파에 앉아있는 엘베르카, 그녀의 다리가 점점 사라지고있었다.
'어째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 때까지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는 엘베르카에게 달려가 양 어깨를 붙잡고 위 아래를 훑어보았다. 흐려지며 점점 모습이 변해가는 엘베르카. 그리고 사라진 엘베르카 대신 나타난 한 명의 남자아이. 그 남자아이는 자신이 잘 아는, 너무나도 잘 알아서 절대로 보고싶지않은 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내 눈 앞에 사랑스러운 엘베르카가 사라지고, 어렸을 적, 절대로 기억하고싶지않은 그 시절의 어렸던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일까.
"어째서 여기있는거야?"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이 점점 찢어지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싫었다. 잔뜩 겁먹은 표정의 이 아이가 내 눈앞에 있다는게 너무도 가슴이 아파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남자, 그는 무언가 하나를 깨달았다. 집 안을 둘러본 남자. 그의 집 안에는 자신이 찍었다고 생각했던 엘베르카의 사진이 단 한 장조차 걸려있지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아이의 방과 아이가 입고나면 빨아야할 아이의 옷 한 장 있지않았다. 그리고 엘베르카를 소개해줄 때면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
"말도 안돼....."
믿고싶지않았다. 거의 매말라갔던 그의 마음이 한 순간 썩어문드러져가며 쪼그라들었다.
아이는 퀭한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혼이 없는 듯한 아이의 눈동자에 공포를 느낀 남자. 그 순간, 아이는 천천히 그의 몸을 안았다. 엘베르카에게서 느꼈던 따뜻함, 그 따뜻함이 아이에게서 느껴졌다. 보고싶지않았던 아이. 그 아이에게서 엘베르카의 향기가 느껴졌다.
"엘베르카?"
그가 말한 그 순간, 아이의 몸이 빠른속도로 사라졌다. 그리고 존재가 사라진 아이. 그의 눈에서 두꺼운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안돼....."
내 사랑 엘베르카, 사랑스러운 나의 엘베르카!
그는 아이가 앉아있던 쇼파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느껴져야 할 온기가 원래 이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듯 차가움만이 느껴졌다.
"으아...으..윽.."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너무나, 너무나도 슬퍼 울음소리조차 목 밖으로 새어나오지않았다. 엘베르카처럼 한바탕 큰소리로 울고싶어도, 그의 목은 그 것을 허용하지않겠다는 듯 성대를 조여왔다. 얼마 후, 드디어 터져나오는 그의 울음소리, 그의 울음소리는 집 주변에 울려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부어올라 원래의 얼굴보다 퀭해진 눈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남자. 그리고 엘베르카가 우는 이유가 다른사람때문일지몰라 만약을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단도 하나.
잠시 후, 그의 손목에서 아름다운 붉은 루비가 그의 손목줄기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