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1-
"이제 몇 분만 더 걸으면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에요."
앞에서 걷던 레베카가 고개만 돌려 뒤에 따라오는 현식을 보며 말했다. 장장 5시간이나 쉬지않고 걸었기때문에, 현식은 지친얼굴로 가쁜숨을 쉬며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세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그녀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그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드디어 멀리서 성벽으로 감싸진 건물의 지붕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꽤나 커다란 규모처럼 보이는 건물들. 그 건물들을 보고, 레베카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 마을도 보이니까. 저는 이만 돌아가볼께요."
"네? 벌써 가시려구요?"
"저는 인간들을 별로 안좋아해서요..... 아마 저쪽에 있는 인간들도 엘프는 싫어할꺼에요."
"아, 그런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현식은 가방과 보따리를 한손으로 들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행동이 무슨뜻인지 모르는 듯 했고, 현식은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이 때까지 감사했습니다."
손을 맞잡은 현식과 레베카. 처음에 손을 잡힌 레베카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잠시 후에, 현식은 손을 놓고 인사한 뒤 천천히 뒤로 돌아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몇 보를 걸어갔을 때, 뒤에서 레베카가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
"현식씨!"
그리고 현식에게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작은 주머니 하나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꽤나 무게가 나가는 주머니. 그는 주머니를 열어 안을 보았다. 그 안에는 금색 동전 몇 닢과 은색 동전 몇 닢이 들어있었다.
"이건....?"
레베카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인간들이 쓰는 돈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번에 어떤 난폭한 인간이 숲을 침범했을 때 물리치고 얻은거에요."
"아, 그래요?"
그는 주머니 안을 조금 뒤적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게 총 얼마에요?"
그가 질문함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뒤로 돌아 달려가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인간이 아니라 이게 어느정도의 가치인지는 잘 몰라요! 알아서 확인하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빠른속도로 현식에게서 멀어져갔다. 허탈한 웃음을 지은 현식. 그는 주머니를 다시 묶고 자신의 손가방에 넣은 후에 미소를 지었다.
마을과는 꽤 거리가 멀어 그는 30분을 걸어야 마을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베카에게 듣고, 멀리서 보고도 마을의 규모가 큰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마을이었다. 입구부터 보이는 회색빛의 벽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성벽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듯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있었고, 그 마을의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여러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 마을의 규모가 어느정도인 지 알 게 해주었다. 그는 마을 입구를 고개를 돌려 둘러보며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을의 안은 입구의 성벽과는 다르게 약간 작은 집들이 빈틈없이 자리잡고있었다. 때때로 애매하게 남은 자리를 어두운 골목이 메우고있었고, 그 골목마다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어제 먹었던 것들을 내뱉거나 나쁜짓을 벌이려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손짓하고있었다.
그는 일단 여관을 찾아서 방을 얻어야했기에, 주변의 간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가게인 듯한 곳에는 간판이 붙어있었긴 했지만, 말과는 다르게 글자는 이세계의 글자였기때문에 그가 전혀 알 수 없는 글자들로 적혀있었다.
계속 걸어가면서 여관을 찾던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한 행인에게 여관의 장소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행인은 친절하게도 여관이 있는 곳을 안내해주었다.
당연하게도 이 마을의 여관은 정말로 거대했다. 많은 여행자들과 상인이 다니는 마을이라서 거대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거대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원래 세계로 따지면 20층정도의 건물이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여관이 정말 크네."
현식은 입구로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의 안은 깔끔했다. 테이블부터 시작해서 의자, 카운터, 벽에 있는 그림들까지 먼지하나 없이 깔끔했고 많은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안주를 뜯으면서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머리에 흰색 두건을 쓰고 각양 각색의 나시에 무릎의 바로 위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빠르게 음식들과 술을 나르고있었다.
카운터에는 딱 봐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었다. 현식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방을 빌리고싶은데요."
그러자, 건장한 남자는 앞으로 돌아보며 현식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꽤나 잘생긴 편이었지만, 인상이 험악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인상쓰는 것처럼 보여 현식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며칠간 묵을껀데요?"
퉁명스러운 말투에, 현식은 최대한 겁에 질리지않은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일단 하루정도 묵어볼려고 합니다."
"응?! 하루?!"
남자는 따지는 듯한 말투에 험상궂은 얼굴을 더욱 구기며 현식에게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란 현식은 빠르게 말을 바꾸었다.
"아니,아니! 이틀.... 그래 이틀이요."
"읭?! 이틀?!"
더 찡끄리는 남자. 도대체 며칠을 말해야 남자가 얼굴을 치우고 방을 내줄까. 생각해보니 그는 얼마간 이 곳에 정착하고 자신이 얻은 이 능력을 시험하거나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오래 머물러야했다.
결국 현식은 그에게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한 달을 외친 후에야 만족한다는 듯 험상궂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치우고 뒤로돌아 열쇠 하나를 고르고 카운터에 내려놨다.
"다 합쳐서 은화 2닢이다."
은화 2닢. 아까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세어보니 은색 주화가 10개에 금색 주화가 5개였다. 한 달을 묵는데 은화 2닢이면 레베카가 자신에게 준 돈은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이었다.
현식은 자신의 가방에서 주머니를 꺼내 은화 두 닢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은화를 가져가며 그에게 물었다.
"밥은 어떻게 할꺼야?"
한 달동안 밥을 안먹을 수도 없는 노릇. 현식은 그에게 물었다.
"한 달 밥값은 얼마나 합니까?"
현식의 질문에 남자는 손가락을 접고 피며 무언가를 세더니, 이내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은화 세 닢 정도면 한 달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여기서 해결시켜주지."
"그럼 그렇게 해요."
현식은 주머니에서 은화 세 닢을 꺼내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운터 밑 선반에 있는 노트 하나를 꺼내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장현식'이요."
"장현식?"
그는 현식의 이름을 듣더니 큰소리로 웃으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상한 이름이구만."
"그래요?"
잠시 후, 노트를 다시 집어넣은 남자는 현식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 내 이름을 모르면 많이 불편할테니 알려주지. 내 이름은 '브레미아 로빈테스'다. 편하게 로빈으로 불러."
"네, 로빈씨."
"자, 그러면.... 지금 점심시간인데, 여기서 밥 먹을꺼지?"
"네, 여기서 먹을께요."
"그래, 그럼 일단 방에 올라가서 짐부터 풀고있어라. 내가 식사준비가 다 되면 부를테니까."
현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한 후에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짐을 푼 지 얼마 되지않아 누군가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이 여관의 직원 중 하나였다.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내려오십시요."
그녀의 말을 듣고, 현식은 알겠다고 한 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입고있던 정장 상의를 침대에 올려놓고 손목의 단추를 푼 다음 다시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아래로 내려가자, 계단의 앞에 대기하고있던 직원 중 한 명이 그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올려 손으로 식탁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쪽입니다."
그녀가 안내한 곳으로 가자, 식탁에는 꽤나 많은 양의 음식이 준비되어있었다. 식탁에는 닭처럼 생긴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그릇 위에 구릿빛 자태를 뽐내고있었고, 그 주위에는 많은 야채들과 또 다른 고기요리들이 각각의 향을 흩뿌리며 자신을 먹어달라는 듯 매혹하고있었다.
그는 직원이 빼주는 의자에 앉아 음식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맛있는 향이 나는 음식들이 주변에 있자, 배는 그 음식을 빨리 먹으라는 듯 강하게 두드리고있었다.
"이거 전부 다 먹어도 되는거에요?"
"예."
직원의 대답이 들리기 무섭게 그는 한손에 자신의 앞에 준비되어있던 포크를 들고 닭처럼 생긴 고기를 찍은 후에, 다른 손으로 다리를 뜯어 손에 들고 입에 넣었다. 그러자, 입 속에서부터 코까지 퍼지는 향긋하고도 짭짜름한 향신료의 맛과 담백한 고기의 맛. 그는 한입을 베어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그는 포크를 고기에서 빼내고 그 옆에 있던 배추같이 생긴 야채가 들어있는 야채볶음에 가져갔다. 그리고 찍어서 입 안에 넣었다. 엄청난 풍미. 고소함과 담백함 뿐만 아니라 그의 강했던 식욕을 더욱 돋구는 미세한 짭짤함이 입 안에 고기와 함께 어우러져 행복감을 주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느껴보지못한 맛.
그는 음식의 맛에 매료된 듯 계속해서 먹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치며 그의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카운터에 있던 로빈이었다.
"그렇게 맛있냐?"
그는 입에 음식을 가득채우고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빈은 기분좋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입에 있던 음식을 모두 삼킨 현식은 그에게 물었다.
"로빈씨가 이 여관의 주인이에요?"
그의 질문에, 로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곳은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여관이고, 나는 시간 나면 때때로 도와드리고있어."
"효자네요."
현식은 자신의 왼손에 들고있던 닭같이 생긴 고기의 다리를 뜯었다.
"그럼 진짜 직업이 뭐에요?"
로빈은 식탁에 있던 열매를 들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내 직업? 내 직업은 기사야."
"기사요?"
"그래."
현식은 스프를 입에 떠넣고 삼켰다. 그리고 손에 들고있던 뼈를 놓고 물었다.
"그럼 검술 잘하시겠네요?"
그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한 번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당연하지. 기사라는 작위는 도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주는 작위라고."
"그렇게나 강해요?"
"그럼."
"그렇다면 저 검술 좀 알려주시면 안되요?"
"뭐?"
현식의 말에 그는 엄청난 짜증과 귀찮음을 표정으로 들어내며 되물었다. 그의 엄청난 얼굴에 약간 무서움을 느낀 현식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그냥 검술 좀 배우고싶어서....."
"안돼."
로빈은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그리고 손톱에 낀 귓밥을 호 불어 날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네 몸으로는 검사가 되기는 커녕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못하고 나가 떨어질꺼다."
로빈의 말대로 그는 원래세계에서부터 운동을 한 적이 없었고, 잦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많이 마른 상태였다. 그런 몸이 기사들이나 검사들이 받는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현식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라도 가지고싶었다. 자신이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또 돌아가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만약 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물리쳐야한다면 힘이 필요하기때문이었다.
현식의 표정을 본 로빈은 한숨을 쉬며 그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넌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도망칠 게 뻔하다. 차라리 마법을 배우는게 나을꺼야."
"마법이요?"
"그래, 마법. 이 근처에 마법사 한 명이 포션가게를 운영하니까 그 곳으로 한 번 가봐. 약도는 줄테니까."
"감사합니다."
현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닭처럼 생긴 고기의 또 다른 반대쪽 다리를 찢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 다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로빈에게 물었다.
"이거 도대체 무슨 동물의 고기에요?"
"너 이 새도 몰라?"
현식은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산에 있다가 내려와서....."
로빈은 뭔가 수상한 지 턱을 문지르며 실눈을 뜨고 그를 봤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일어서며 말했다.
"그건 '리쿠'라는 새인데, 많은 동물들 중에서 양식하기가 쉬워서 여러군데에서 음식의 재료로 쓰이고있다. 아마 음식점들 가면 이 새요리는 무조건 있을꺼야."
"그래요?"
현식은 다시 입으로 리쿠의 다리를 뜯었다. 담백한 고기의 맛이 입 안에 퍼져 혀에 감돌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지며 식도를 통해 빠르게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