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2-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그는 고개를 올려 해를 보고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해가 중천에 떠있다는 것은 오후 12시 부근이라는 것. 그는 조금 맞지않는 시계를 돌려 12시 정각에 맞춰놓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이 여관과 얼마 떨어져있지않은 잡화점이었다. 로빈이 말하기를, 간판에는 잡화점이라 쓰여있지만 그 안에서 파는 것은 죄다 포션 뿐이기에 로빈은 그 곳을 포션가게라 부른다고 했다.
로빈이 알려준 길로 가보니 그의 말대로 집 하나가 보였다. 글을 읽을 수 없어 이 곳이 잡화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현식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그가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더 크게 두드리려 손을 높게 올렸을 때, 그는 당연히 알고있어야 할 한가지가 생각났다.
'가게는 문을 두드리지않고 들어간다.'
현실에서도 가게에 들어갈 때 문 한번 노크한 적이 없었는데 왜 노크를 했을까.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코를 긁으며 문을 밀었다.
집의 내부, 겉보기와는 다르게 내부는 커다랬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집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입구부터 보이는 포션들과 달달하고 새큼한 향기가 집 안에 퍼져있었다. 그는 집 내부의 모든 선반에 올려져있는 포션을 보고 맞게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실례합니다."
현식은 큰 목소리로 집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얼마 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집의 안쪽에서 들려왔다.
"잠깐만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 레베카가 진주가 굴러떨어지는 아름다운 목소리라면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옥구슬이 굴러떨어지는 예쁜 목소리였다. 현식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문이 열린 방 안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방 안은 제조실인 듯 여러 비커들과 스포이드가 사각형의 커다란 테이블 위에 질서없이 올려져있었고, 창문 쪽에는 여러 식물들이 기분좋게 태양빛을 받으며 자라고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다가가 불 위에 올려져있는 끓어오르는 비커에 고개를 가져다대고 보더니, 이내 창가로 걸어가 식물을 만져보았다. 식물은 관리를 잘 안한 것인지 잎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으아아!"
아까 들려왔던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묵직한 것 여러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 곳에는 문 하나가 있었다. 현식은 그 문으로 걸어가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는 문. 그 문의 안쪽에는 책으로 만든 아주 거대한 산더미 여러개가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 외쳤다.
"실례합니다."
입구부터 쌓여있는 거대한 책더미를 옆으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현식. 그는 방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되지않아 세 번째의 책더미 밑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현식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경계를 하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꿈틀거리는 것에 바로 앞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책더미에서 팔 하나가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끄아아아아!"
깜짝 놀라며 뒤로 넘어진 현식. 그와 동시에 안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튀어나오는 반댓손 하나. 튀어나온 손들은 자신의 위에 올려져있는 책들을 사방에 던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손들의 주인인 듯 한 사람 한명의 머리가 보였다. 푸석푸석한 갈색의 머리를 가진 사람, 빨지않은 지 오래되어 여러가지 포션들이 묻은 흰색 가운을 입고 커다란 안경을 낀 여자가 머리를 머리를 만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작은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키는 키가 178인 그의 키의 반토막밖에 되지않을 정도로 작았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민 여자, 현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예, 괜찮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그러자, 쓰러졌을 때 먼지가 많이 묻었는 지 옷에서 뿌옇게 먼지가 뿜어져나왔다. 현식이 괜찮다고하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는 소녀. 그는 이 곳의 주인이 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 계신 마법사님은 어디계신가요?"
그러자 들려오는 그녀의 대답.
"여기 주인은 전데요?"
현식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네!"
웃으면서 확실하게 대답하는 그녀.
"말도 안돼."
그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마법사라는 것이 믿겨지지않았다. 적어도 가게를 운영할 정도의 마법사라고 하면, 영화 '반지의 여왕'에서 나오는 간돌프 정도의 늙은 마법사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고왔는데, 자신을 맞아주는 사람이 이렇게 작은 아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현식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그녀는 쿡쿡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제 모습을 보고 놀라시더라구요."
"그렇겠네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그의 질문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대답했다.
"이렇게 보여도 저는 20대라구요."
"20대요?!"
"네!"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 번 놀란 가슴, 그녀의 나이를 듣고 또 한번 놀라게 된 현식. 그는 이 곳에서 사람을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놀라고 있을 때, 그녀가 현식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일로 오셨어요? 포션사러 오신거에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어보는 그녀. 그러나, 현식이 온 이유는 그녀가 바라는 이유가 아니였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네."
현식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 지 얼굴을 붉히고 양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감싸며 몸을 배배 꼬았다.
"안되는데~...."
그녀의 행동을 보고 갑자기 소름이 돋은 현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에 모여있던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 얘기를 꺼내지도...."
그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현식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도 없고....."
"결혼?"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아무래도 그녀는.....
"그게 무슨....."
"거기다 처음만난 사이잖아요~.... 우리 천천히 알아가요!"
그녀는 양손을 주먹쥐고 파이팅하듯 손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는 빠르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자 그의 말을 듣지않겠다는 듯 그녀는 손을 저었다.
"아니요, 아직은 결혼 할 때가 되지않았다니까요."
이미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현식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않는 것 같았다. 현식은 아주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꽤나 오랜시간동안 그녀는 상상에 빠져 혼자 여러가지 스토리를 만들었다. 현식이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여러 남자들을 뚫고 자신을 데리러 와 탈출하는 스토리라던가, '헬케이'라는 알 수 없는 것에게 잡혀있는 자신을 현식이 구하러 오는 스토리같은 것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리고 그 스토리가 끝나자 진정했는지 붉어졌던 얼굴이 원래의 색을 찾으며 조용해졌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저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세요."
그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고 현식을 바라보는 그녀. 그러자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한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현식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마법을 배우고싶습니다. 마법을 알려주세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으며 현식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에, 그녀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한테 듣고 오신거에요....?"
"여관에서 로빈한테....."
로빈이라는 이름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쯧'소리를 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녀는 무척이나 로빈을 싫어하는 듯 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짓고 현식에게 말했다.
"왜 마법을 배우고싶으신건가요?"
현식은 당연하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 자신을 지키고싶어서 배우고싶습니다."
그녀는 양 어깨를 잡은 현식의 손을 떼어내고 뒤돌아섰다.
"자신을 지키려면 저한테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로빈한테 검술을 배우시는게 나으실텐데....."
그녀의 말에, 현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그게.... 로빈이 제 몸으로는 훈련하다 도망친다면서 마법을 배우는게 낫다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 다시 한 번 찡그려진 그녀의 얼굴. 더 강한 '쯧'이 현식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표정으로 현식을 바라보는 그녀. 마치 귀찮은 짐덩이 하나를 받은 것 같은 얼굴로 현식을 보고있었다.
현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어색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녀는 책더미 속을 뒤지더니 묻혀있던 의자 하나를 꺼내놓고 앉았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이내 뒤에서 책 한 권을 찾아 현식에게 던져주었다.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죠. 그 책을 한시간동안 정독하세요."
그녀가 던져준 책은 꽤나 오랜시간 손이 타지않은 듯 책의 위쪽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현식은 쌓여있던 먼지를 대충 떼어내고 책을 펼쳤다. 그 순간, 엄청난 것이 책에서 튀어나오지는 않았고 알 수 없는 글자만 잔뜩 적혀있었다. 현식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죄송한데....."
그가 말을 걸자 짜증나는 듯 바라보는 그녀.
"왜 그러시나요?"
현식은 그녀의 눈초리가 무서워 몸을 약간 떨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글자를 몰라서요....."
그러자 입을 점점 크게 벌리며 놀라는 그녀. 그녀는 실신한 듯 하하 웃으며 물었다.
"어릴 때 글자도 안배웠어요?"
"제가 산에서만 살다가 내려와서....."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쉬며 책더미를 다시 뒤지더니 책 한 권을 꺼내 손에 들고 현식에게 다가왔다.
"일단 저기 가서 앉아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방 밖의 커다란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였다. 현식은 천천히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의자를 가지고 온 여자가 앉았다.
"이제부터 한 번만 알려줄테니까 잘 알아들어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는 한 장 한 장마다 커다란 글자가 하나씩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책과 함께 가져온 종이에 그 글자와 똑같이 생긴 글자를 따라 그리며 말했다.
"이게 '아'에요. 그리고 이게 '이'고....."
계속해서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현식.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책 끝에 있는 글자까지 모두 알려주자, 갑자기 현식의 눈 앞에 메세지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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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배웠습니다.
확인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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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은 잠깐동안 메세지창을 무시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글자를 알려준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한시간동안 전부 다 외워놔요. 시험볼꺼니까."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다시 책더미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기 무섭게, 현식은 바로 확인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눈 앞에 스킬창이 떠올랐고, 스킬창의 '화술'태그가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현식은 바로 화술태그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화술의 첫번째 칸과 두번째 칸이 열려있었는데, 빛나는 것은 두번째 칸이었다.
일단 현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입술모양이 그려져있는 첫번째 칸을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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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설명 : 모든 생물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인 회화.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못한다면 세상을 사는데 매우 불편할 것이다.
효과 : 말을 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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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은 창을 닫고, 반짝이는 글자가 그려진 두번째 칸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설명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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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설명 : 말을 이해하고 말할 줄 안다면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글자를 모른다면 무시당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으로 공부하기때문에 읽을 수 없다면 지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효과 :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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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창을 닫고 스킬창을 옆으로 옮긴 다음 책을 보았다. 그러자, 마치 한국어로 쓰여진 책을 보는 것처럼 그 책 안에 있는 문장들과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생각한 언어를 그 문자로 쓸 수 있었다.
현식은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말했다.
"다 외웠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달려온 현식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바로 뒤돌아본 그녀는 무엇인가 수상쩍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지났다고 그 걸 벌써 외워요? 정말이에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주변에 떨어져있는 아무 종이 하나를 들고 말했다.
"알았어요."
그리고 천천히 방에서 나와 그가 앉아있던 의자의 옆에 다가가 책을 들고 그가 쓴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뭐지'라는 문장 딱 하나만 적혀있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쓰여있지않은 깨끗한 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