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11-
로빈이 성으로 떠나기 전, 그에게 말했던 3일. 그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지만, 현식은 그가 말한 충고때문에 일단 밖으로 나가려했다..
창문밖은 먹구름때문에 태양이 보이지않아 어두웠고, 틀어놓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처럼 먹구름안에서 꽤나 두꺼운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그는 우산이 없었기때문에 헬베에게 빌리려했지만, 이세계에서는 우산이라는 것이 없고 방수마법이 붙어있는 로브를 입는다고 그 로브를 빌려주었다. 그는 우의같은 것은 군대 이후에 불편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로브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 비를 맞아보니 정말로 주변에 보호막이 쳐져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떨어지는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겼다. 조금은 불편했지만 꽤나 신기한 광경에 현식은 재미를 느껴 튕겨나가는 빗방울들에 집중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토미의 가게였다. 로빈은 그렇다치고, 토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문을 열고 가게의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부터 먼지가 많았던 토미의 가게가 사람이 없으니 바닥에 떨어져 조금씩 쌓이고있었다. 겨우 3일동안이었는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았다고 이렇게 먼지가 쌓인다는 것은 평소에도 가게에 먼지가 많았다는 것인데, 그는 토미의 몸이 조금 걱정되었다.
현식은 로브를 벗어 입구쪽의 옷걸이에 걸고 가게 안의 테이블에 있는 의자에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테이블 위에 있는 먼지를 밀고 인벤토리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속성 마법 심화 - 불'
루그와 만난 다음 날부터 그는 쭉 루그와 함께 다니며 사냥을 하고 마법을 수련했다. 어느 덧 파이어볼트는 숙련도가 3이 되었고, 두더지를 잡았을 때 배웠던 매직미사일때문에 사냥이 꽤나 수월해졌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속성 마법 심화에 나와있는 마법들은 쓸 수가 없었다. 이론이 이해가지않아 일단 마법이라도 써보자해서 그는 이 안에 나와있는 설명대로 마법을 써봤지만, 불속성마법이면 파이어볼트가 나왔고, 수속성 마법이면 워터볼트, 빙속성 마법이면 아이스볼트가 지팡이 위에 구름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이 마법의 발동 조건이 뭘까. 그는 앉아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집 안에는 밖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지붕에 부딪혀 울려퍼져 마치 동굴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파이어볼트를 쓸 때의 마나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손에 파이어볼트를 시전했다. 그가 마나를 모을 때 따뜻한 무언가가 머리부터 시작해서 심장을 지나 배를 통해 손으로 가는 것을 알아냈다. 아무래도 마나가 모이는 곳은 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구간에서 마나가 불로 바뀌는 것일까. 그는 조금 더 집중했다. 몇 번이고 파이어볼트를 시전하고 흩뜨리는 것을 반복했지만, 마나가 불로 바뀌는 순간은 끝내 알 수 없었다.
그가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가게의 문을 강하게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있던 현식은 깜짝놀라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뜨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쪽에는 비를 맞고 달려왔는지 옷과 머리가 흠뻑 젖어 축 늘어진 토미가 가쁜 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정말 급한 일이였던 것인지 토미는 그 상태에서 바닥에 누워 계속 가쁘게 숨을 쉬었다. 현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토미에게 다가갔다.
"저 찾으셨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식은 뜨거운 차를 이불을 덮고 벌벌 떨고있는 그녀의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다행이 가스 대신 마나를 이용한 마나레인지는 원래 세계의 가스레인지와 똑같은 생김새였기때문에 사용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토미는 차를 살짝 한모금 마시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기분이 좋은듯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집이 최고라니까."
"어디 갔다오신거에요?"
현식이 묻자, 그녀는 다시 차를 한모금 마시고 말했다.
"성에 좀 갔다왔어요."
"성이요?"
"네, 그리고 그 것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
현식은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말.
"저와 함께 성으로 가주세요."
현식은 꽤나 당황했다. 3일간 성에 갔다왔으면서 왜 또 자기를 성에 데려가려는 것일까. 그는 잠잠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에는 왜요?"
그의 물음에 토미는 말하는 것을 조금 주저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빠르면 내일, 늦으면 이틀 후에 마물들이 이 곳에 쳐들어와요!"
"마물이요?"
현식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게임에서도 때때로 몬스터들이 마을을 덮치는 이벤트가 있기때문에 그 것과 비슷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마물이요!"
현식은 그게 뭐가 큰일이냐는 듯 물었다.
"그래서요?"
현식의 반응에 당황한 토미는 답답하다는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
"마물이 쳐들어온다니까요!"
"그러니까, 마물이 쳐들어오는게 왜요? 걔들도 쳐들어올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의 말을 듣고 충격먹은 토미는 무언가 말하려했지만, 그녀는 현식이 산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생각해내고 이내 수긍하며 말했다.
"제가 앞뒤설명을 다 잘라버리고 얘기했네요."
그녀가 어색한 웃음을 짓자 현식도 검지로 볼을 긁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토미가 말을 이었다.
"원래 마물들은 같은 종족을 제외한 다른종족과는 단체활동을 하지않아요. 오히려 같은 종족과도 단체활동을 하지않는 마물들이 더 많구요. 그런데 그 마물들이 일주일 전부터 이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에서 모이고있었고 오늘 새벽에 출발해 지금 이 곳으로 오고있다고해요."
"강한 마물들이에요?"
"이 주변에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강한 마물들은 아니지만..... 마물들이 모이면 소수로는 처리하기 힘들죠."
현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토미에게 물었다.
"그래서, 제가 성으로 같이 가야하는 이유는 뭐에요?"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바로 대답했다.
"지금 마물들은 많은데 이 도시를 지킬 병사들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그래서 현식씨가 마물들을 처리하는데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에이, 저 3일 전에 막 전투마법을 배운 사람이에요. 제가 가서 뭐하겠어요. 방해만 되지."
"아니에요. 현식씨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될꺼에요."
현식은 손사래치며 말했다.
"아직 초급마법 밖에 배우지않은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가서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토미는 양손을 깍지껴 부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안경 속으로 보이는 귀여운 고양이 같은 눈망울이 반짝거리며 현식을 바라보았다.
"제발 부탁드려요. 저는 현식씨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그의 부탁에 현식은 조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됐든 그녀가 없었으면 현식은 마법을 배울 수 없었고, 이 마을에 며칠 있지않았지만 조금 정이 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마을이 없어지면 현식은 갈 곳이 없었기에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현식의 동의를 들은 토미는 기뻐하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현식을 껴안았다. 잠시 후, 자신이 무엇을 했다는 것을 인지한 토미가 깜짝 놀라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빠르게 떨어졌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현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검지로 볼을 긁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가 현식을 이끌고 향한 곳은 마을의 광장이었다. 현식은 처음 와보는 마을광장. 원형의 마을광장의 길을 제외한 모서리부분들은 전부 활짝 핀 꽃들이 심어져있었고, 그 심어진 꽃들 사이로 현식보다 반 정도 더 큰 나무들이 아이를 사이에 둔 부모인 양 우뚝 서 있었다. 마을의 중앙에는 벤치들이 분수대의 주변을 애워싸듯 배치되어있었고 사자처럼생긴 조각상이 위엄을 뽐내며 입에서 물을 뱉고있었고, 그 뱉은 물은 옆에 있던 분수대로 떨어졌다.
마을의 광장인지라 사람들은 많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고 모두 무언가 구경하려는 듯 분수대의 앞에서 소란스럽게 서있었다. 토미가 시끄러운 곳은 별로 좋아하지않아 표정이 찡그려진 현식을 데려간 곳은 그 마을사람들이 모여있는 분수대의 앞쪽. 토미는 현식을 붙잡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제일 안쪽을 향했다. 숨이 막히면서까지 도착한 안쪽.
안쪽에는 꽤나 넓은 단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병사들이 무언가를 나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토미가 단상을 향해 걸어가며 현식을 이끌자, 그 앞에서 마을사람을 막고있던 병사들이 현식만을 붙잡고 막아섰다.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그러자 토미가 당황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저기, 그 남자는 영주님께 불려서 온거니까 들여보내주세요."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들은 토미의 말을 믿는 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다른곳을 향해 걸어갔다. 토미는 다시 현식을 이끌고 단상의 앞으로 걸어갔다.
단상의 앞에는 한 남자가 몇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리고 노인과 함께 무언가 말을 하고있었다. 표정을 보니 심각한 상황인 듯 그들은 연신 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있었는데 토미는 웃는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토미는 흑적색의 짧은 머리를 가진 남자의 뒤에 도착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영주님, 저 왔습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뒤로 돌아 토미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 토미 왔어? 잘됐군. 지금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는 토미와 함께 온 현식을 보고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영주의 질문에 토미는 바로 고개를 들어올리고 말했다.
"제가 아는 모험가 한 명을 데려왔습니다."
영주는 턱을 매만지며 현식의 얼굴과 몸을 세세히 살피더니 실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별로 그렇게 강해보이지는 않는구만."
"하지만, 마법에 관한 재능은 저보다 뛰어나다구요!"
토미는 현식을 소개하는 것이 신이 나는 듯 웃으며 말했다. 물론 현식도 그의 말에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강하지않는 것은 사실이기에 그냥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토미의 말을 들은 영주는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천재인 토미가 인정할정도의 천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자네, 이름은 뭔가?"
현식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장현식입니다."
"꽤나 들어보기 힘든 이름이구만."
영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로 현식을 부르며 걸어왔다. 그는 현식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네가 왜 여기있는거야?"
"로빈씨!"
현식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로빈이 걸어와 토미에게 다그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미,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토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로빈에게 물었다.
"뭐가 아니에요?"
"이녀석은 마법을 배운지 얼마 되지않은 초보자라고. 그런 초보자를 이 곳에 부르다니..... 개죽음당하게 하고싶어?"
로빈의 말에 그녀는 걱정말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치며 어깨를 폈다.
"위험한 상황이 닥친다면 제가 지킬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자기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든 마법사가 무슨 남을 지킨다고 하는거야?"
"저도 한때는 왕궁마법사였다구요. 그런 무시발언은 저도 기분이 나쁘네요."
"하지만...."
더 큰 싸움이 되기 전에 영주가 그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로빈에게 말했다.
"일단 그만하고 토미를 한 번 믿어보자구."
로빈은 잔뜩 찡그린 표정을 풀고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장현식이라고 했나? 원래라면 사건 정황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하지만..... 어차피 두시간 후에 다른 모험가들 다 모아놓고 얘기할테니 그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게나."
"네."
"그 때까지 어디가서 조금 놀다오는게 어떤가? 여기는 조금 할 일이 있어서말이야."
"그러죠."
"토미는 잠깐 나 좀 보지."
"네."
영주의 부름에 토미가 영주와 함께 로빈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원래 계획은 토미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고 배우지못한 마법을 어떻게 배워야할 지 물어보려했지만, 현식은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을 광장을 벗어났다.
그는 혼자 걸어다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글씨를 읽을 수 없을 때는 보지못했던 가게들이 꽤 많았다. 양복점을 포함해 무기를 파는 무기점이나 애완동물을 파는 펫상점이라던가 땔감 또는 건축물의 재료를 파는 재료상점, 그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어느 게임에서 보던 아이템이 담겨져있는 항아리같은 것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그는 조금 더 걸어보기로했다.
현식은 어릴 적 모험을 하는 것을 동경하고, 또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다른 아이들이 TV에서 드라군볼이나 피구왕탕키를 볼 때, 그는 다큐채널에서 고고학이나 심해, 등산 또는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또 밤에는 자신이 심해나 우주, 다른 나라를 모험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커서 반드시 모험을 할 수 있는 고고학자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한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
처음에 이세계로 떨어졌을 때는 정말 돌아가고싶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엘프를 만나고 이 도시로 와서 마법을 배우니 또 다시 그의 꿈이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듯 그의 가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던 원래세계보다 위험할 수도 있는 이세계에서의 모험. 다른사람들은 어린시절 만화를 보며 한 번씩 해보기를 원했던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되는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물론 아직은 약해 갈 수 없겠지만, 조만간 다른 모험가와 비슷한 실력이 되면 원래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편안하게 돌아다닌 적은 그에게 있어서 오늘이 처음이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오우거에 쫓기거나 엘프를 만나고 또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늑대를 만나 싸운 후에 다음날, 이 도시로 오게 되었고 이 도시로 오고나서는 여관에서 로빈을 만나 친해지고 로빈의 소개로 토미를 만나 마법을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이 급박하게 일어나 편안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멍하니 도시를 걷다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어느덧 광장에서 나온 지 한시간 반 후인 3시 30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지금 뛰어가면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 그는 깜짝 놀라 바로 광장을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