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오스 전쟁
엔슬라의 도시 '리아누'에서 그리 떨어지지않은 곳에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있는 들판,
트리오스 들판이 있었다. 이 들판에는 이상하게도 작은 나무 한그루조차 없었다. 바로 옆인 트리오스 숲에는 조금 과장을 보태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나무가 많았지만, 이름도 똑같은 이 트리오스 들판에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 떨어져있지않았고, 그저 작디작은 잔디와 잡초들만이 이 들판의 주인인 것 처럼 줄기를 꽂꽂이 세우고 태양빛을 받아먹고있었다. 군데군데 있는 물웅덩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작은 호수들이 있어서 풀들은 마를 일이 없었고, 항상 푸른 잔디들은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말이다.
엔슬라는 얼마 전에 포시니아에게 선전포고를 받았다. 작은 나라였던 포시니아의 국왕은 포시니아의 땅이 넓어지기를 바랬고, 그들보다 더 작은 엔슬라는 그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나라였다. 그들이 최초로 싸운 곳은 국경인 '신니라 평야'였다. 그 평야에서 엔슬라의 군사들은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작은 나라인만큼 인구도 적어 병사가 얼마 되지않았기에, 그들보다 큰 나라인 포시니아의 상대가 되지않았다.
포시니아는 5천명의 군사를 나누어 엔슬라의 각 마을과 도시로 파견했으며, 병사가 얼마 없었던 엔슬라는 모든 병사를 끌어모아 수도 테누스의 옆도시인 리아누에서 마지막 결전을 펼치려고했다. 그들이 마지막 결전지로 택한 장소는 바로 트리오스 들판이었다. 이 나라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아름다운 환경에서 병사들은 전사하고싶다했기 에, 그들의 국왕은 마지막 결전지를 그 곳으로 채택했다.
밝디 밝은 태양빛을 맞으며, 엔슬라의 병사들은 그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환경을 뇌 속에 간직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트리오스 들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트리오스들판은 언제나처럼 밝은 태양빛을 받으며 아름답게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와 대조되게 얼마있을 전투를 걱정하는 병사들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고, 그들을 격려해야할 장군들조차 겁이라도 집어먹은 듯 손톱을 입에 물고 땀을 흘리고있었다.
얼마가 지나자, 포시니아의 군대가 트리오스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보이기시작했다. 포시니아군은 대열을 갖추고 대기하는 엔슬라군을 보더니, 이내 걸음을 멈추고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대열정비가 끝나자, 말을 탄 포시니아 병사 한명이 백기를 들고 엔슬라군에게 달려왔다. 포시니아군의 전령이었다.
"멈추시오!"
엔슬라군의 장군인 딜하르 웰 시니오 장군이 창을 겨누며말했다. 그러자, 포시니아군의 병사는 말에서 내리지도않고 딜하르장군에게 말했다.
"이 곳의 최고 사령관을 만나러왔소."
한 나라의 장군인 자신의 앞에서 말에서 내리지도않은 일개 병사가 그런말을 하니 딜하르 장군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내 자신의 옆에 있던 병사 한명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병사는 그 명령을 듣고 안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최고사령관에게 보고하러 가는 듯 했다. 엔슬라의 병사가 출발하자, 포시니아의 병사는 말에서 내려 주머니에 박아놨던 육포를 하나 꺼내 조금씩 뜯어먹었다. 얼마 후, 안쪽으로 들어갔던 병사와 함께 판금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늙은 중년의 장군 한명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곧 싸울 적진에 무슨일로 오셨소?"
포시니아의 병사는 그가 오자 뜯어먹던 육포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당신이 이 곳의 최고 사령관이오?"
무례한 그의 말에 화가 난 그는 호토이라도 칠까 고민했지만, 이내 화를 참고 말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엔슬라군의 최고 사령관 티스린 올 그레이 장군이오."
"역시 최고 사령관이라 인물이 훤하시구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은 포시니아의 병사는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우리 포시니아의 대장군이신 니클라코프 장군께서 엔슬라군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겠다고 했소."
"자비?"
그의 말에 표정을 찡그린 티스린을 보고,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렇소, 자비! 우리 포시니아는 현재 땅을 넓히기 위해 이 작은 나라인 엔슬라를 침공한 것이오. 이 곳만 박살내면 엔슬라의 땅은 모두 포시니아가 갖겠지." 포시니아의 병사는 천천히 장군의 앞으로 걸어갔다. "결국 포시니아에게 필요한 것은 살육도, 금은보화도 아닌 땅 뿐이란말이오. 내 말의 요지는, 니클라코프 대장군께서는 살육을 좋아하시지않기에, 만약 당신들이 지금 항복을 한다면, 병사들을 죽이지않고 원래 살던 집을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소."
"그러니까, 지금 우리보고 살던 집을 다시 줄테니 항복하라 그 뜻이오?"
"이 것은 항복과는 조금 다르오. 당신들이 지금 우리와 싸우는 이유는 재산과 가족을 위한 것이지않소?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피해없이 승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오. 엔슬라는 아무런 피해없이 재산과 가족을 지키는 것을 패배라고 얘기하는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자, 장군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재산과 가족이 안전하다면, 그들 입장에서 목숨걸고 싸울 필요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장군은 포시니아의 병사에게 역정을 내며 큰소리로 호통쳤다.
"지금 우리더러 재산과 가족때문에 이 때까지 살고 지켜주었던 나라를 배신하고 우리를 공격한 역적을 왕으로 모시란말이오?! 자산과 가족을 포기하더라도 나라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건마는....."
장군의 호통을 들은 병사는 그를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된 이후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나라가 있었소. 멸망한 지 몇년 안된 쿠들프트부터 시작해서 성자의 나라라고 밝혀진 옛 왕국 튀니르카, 전사의 나라라고 알려진 톨포스같은 나라들이 멸망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소. 헌데 그거 아시오? 현재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 초대 트란실의 국왕은 니오스의 국민이었소. 그렇다면 실상을 보면 트란실의 국왕은 매국노인데, 트란실의 국민들은 모두 매국노를 모시고있는것이지않소? 우리 국민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 할 필요가 없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알겠소?"
"그 것은 트란실의 이야기이고 엔슬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관계가 없기는, 내가 알기로 초대 엔슬라의 왕도 멸망한 나라였던 팔하임의 국민이었던 걸로 알고있는데."
"그 나라는 이미 멸망하지않았는가!"
"그렇소, 헌데 그 팔하임을 어느 나라가 멸망시켰는지 아시오?"
병사의 말에 티스린은 당황하더니 아무말도 하지않고 고개를 돌리고 분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의 나라인 팔하임을 멸망시킨 나라는 엔슬라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무말도 하지못하는 티스린을 보며, 포시니아의 병사는 미소를 짓고 그에게 말했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그저 사람을 비참하고 어리석게 만들 뿐이오. 애국심 하나때문에 희생되지않아도 될 국민들을 희생시킬 셈이오?"
티스린은 병사의 말에 어떤 말이든 반박을 하고싶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않았다. 잠시 후, 그는 한껏 커다란 목소리를 내어 그에게 화를 냈다.
"닥치시오! 당신이 아무리 나에게 설탕발린 혓바닥을 놀려대도 우린 절대로 항복하지않을 것이오! 여봐라, 저자를 저 앞까지 모셔다드려라!"
티스린의 명령을 들은 병사 두명이 그의 양 팔을 붙잡고 말에 올렸다. 그러자, 포시니아의 병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그에게 말했다.
"잘 생각해보시오, 니클라코프 장군께서는 당신들에게 이틀의 시간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는 아까 넣어두었던 육포를 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넣고 씹으며 천천히 포시니아의 본영으로 걸어갔다. 그가 떠난 뒤, 티스린은 고민에 빠졌다.
지평선에서 보이는 엄청난 수의 군대가 내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은 자신의 푸른 몸에 피를 묻히기 싫은 지 점점 붉은색으로 몸을 바꾸어갔고, 그에 따라 우리는 저 멀리서 보이는 군대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저기, 저 멀리서 보이는 군대가 몇정도 되보이나?"
옆에 있던 50대쯤 되어보이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병사인 '엘루안'씨가 나에게 물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1000명 이상은 오고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한껏 찡그리며 적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에 수긍했다.
"그런 것 같구만."
그는 적군을 보고 웃었다. 아마 모든 것을 포기한 웃음이리라.
그가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자네는 젊은데 나라를 잘못만나 이렇게 빨리가게 되는구만."
그 생각을 한번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태어난 나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도 어릴 적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이미 태어난 것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기 멀리서 다가오는 많은 수의 병사들을 단 500명이서 이 산성을 지키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그렇다고 장군을 원망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장군들도 명령을 받고 온 것이기 때문에 원망하려면 왕을 원망해야지.
적군이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쯤, 티스린 장군은 우리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 주목!"
잘생긴 얼굴과는 대조되게 커다란 목소리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유명한 티스린장군님 병사로 죽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저기 다가오는 적군들이 보이나?"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나를 포함해 이 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은 이미 적군을 보고 사기를 잃을대로 잃은 상태였다.
"당연히 보입죠."
중년의 병사 한명이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티스린장군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의 존명이 걸린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누군가는 여기서 죽게되겠고, 누군가는 도망을 치던 무엇을 하던지간에 살아남아 도망치는 삶을 살거나 많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겠지.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있다."
그의 말에 병사들이 다시한번 동요하기시작했다. 시장통처럼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다시한번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그는 주먹을 들어올리고 말했다.
"우리는 전설이 되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은 모두 웅성거리는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 말도 안될 정도로 차이나는 이 상황을, 만약 이긴다면! 우리는 그에 맞는 합당한 보상과 함께 우리의 이름이 역사에 널리 퍼질 것이다!"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모두들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고있는 것이리라.
"자네들 눈에는 이 것이 암울한 상황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이 상황은 당신들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 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민, 아니면 다른 귀족의 밑에서 살고있는 농노나 노예들이었다. 그러니 그의 말은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한 병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자네, 계급이 뭔가?"
그는 대답했다.
"저는 농노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장군님은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농노에서 벗어나고싶나?"
"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전투에서 승리해라! 모두들 잘 들어라! 만약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이 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내가 국왕님께 부탁드려 최하 평민, 공을 많이 세운 자는 땅과 함께 귀족의 작위를 달라고 부탁드리겠다!"
장군님은 칼을 빼들고 우리에게 다시한번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귀족이 되고싶나?!"
그의 외침에 병사들이 하나 둘 큰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보다 위에 군림하고있던 귀족처럼, 자신도 살아보고싶었기 때문에, 장군의 말은 그들 마음속의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
점점 많은 수의 병사들이 티스린 장군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무기들을 하늘을 향해 찔러대었다. 그 사이에는 나도 있었다.
"모두 귀족이 되고싶나?!"
그의 외침에 모든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들의 대답이 트리오스 들판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렇다면, 공을 쌓아라! 그리고 왕이 아닌 우리의 나라를 지켜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은 목이 쉬어라 질러대었다. 그들은 끝까지 장군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장군은 그들의 사기를 돋우고 천천히 뒤로 돌아 다가오는 적군들을 보았다. 어림잡아 2000정도 되어보이는 적군들을 보며 그는 옆에 있던 딜하르 장군님에게 말했다.
"지금 있는 모든 식량들을 갖고와라."
그러자, 딜하르장군님은 표정을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예...? 하지만, 지금 식량을 다 써버리면 내일까지 버틸 수 가 없습니다!"
그의 말에 티스린장군은 큰소리로 호통치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어야한다! 만약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가지고있는 식량은 모조리 적에게 돌아갈텐데, 적에게 돌아갈빠에야 우리가 지금 모두 먹고 모든 병사들이 배부른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 가장 좋지않겠는가?!"
딜하르 장군님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끄덕이며 식량창고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몇수레의 식량들이 병사들의 앞에 도착했다.
"앞줄의 병사부터 차례대로 수레에 있는 식량들을 한보자기씩 가져가라!"
그의 말이 끝나자, 앞줄에 있던 병사들이 일어나 수레에 있는 보따리를 하나씩 가져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자, 몇개나 되는 수레는 모두 비어졌고, 병사들의 손에는 한보자기의 식량이 쥐어있었다. 잠시 후, 티스린 장군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모두 보자기를 풀고 식량을 먹어라. 먹고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은 법. 밥을 먹지못하고 후회하며 죽기 전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식량들을 후회하지않을 정도로 위에 담아가라!"
병사들은 그의 말을 듣고 바로 보자기를 풀어 식량을 입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뺏어먹는 사람이 없었을텐데도, 우리는 빠른 속도로 입 안에 식량을 우겨넣었다. 천천히 먹는 나조차도 입에 쑤셔넣기 바빴으니 이 상황은 다들 이해가 갈 것이다.
얼마나 빨리 먹었던지, 조금 커다란 보자기였지만, 병사들은 1시간도 채 되지않아 모든 식량을 다 먹었다. 누구는 배가 너무 부른지 손을 뒤에 집고 몸을 뒤로 기대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 배가 고픈지 계속해서 보자기를 보고있었다.
잠시 후, 바로 눈앞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이 온 적군을 보며 장군은 외쳤다.
"다 먹었나?! 그렇다면 일어나라!"
우리는 비장한 얼굴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한명 떠드는 사람이 없었고, 누구한명 한숨을 쉬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자네들에게는 여한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
"와아아아!"
칼을 높게 든 장군님의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다. 나도 과연 저런 남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이번 생에는 전쟁으로 죽을 것 같으니 포기했다. 다음 생을 기약해야지.
장군님은 뒤로 돌아 칼을 적군쪽으로 뻗으며 큰소리로 명령했다.
"돌겨어어억!"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탄 장군들과 장창과 칼을 든 병사들이 돌격하고, 활들고 있는 병사들이 시위를 당겼다. 나는 칼을 들고 있었기에, 장군님을 따라 돌격했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떨렸다.
'여기서 죽는건가.'
이 생각이 한두번만 들었던게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도 똑같았겠지만, 나는 정말 죽고싶지않았다. 그래서 살기위해 앞에 보이는 적들을 모조리 베었다. 하나, 둘 내 눈 앞에서 피를 튀기며 쓰러졌고, 이 쓰러지는 병사들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숨을 헐떡였다. 내가 베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고, 믿고싶지않았다. 한평생 사람을 때리는 일 없었던 내가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다는 것을 나는 믿고싶지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내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고, 이 칼은 내 눈 앞에 있던 적을 차례차례 베어냈다. 베어냈다는 것을 환상으로 무시할 수 있다고 해도, 내 몸에는 뜨겁고 끈적한 피가 전신에 묻어있다.
'역시 내가 벤건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조금씩 기억이 끊어져서 보이고있다. 장군님은 어떻게 이런 전쟁을 했던걸까? 장군님도 나처럼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까? 아니, 장군님은 강하시기때문에 이런 경험은 해보신 적이 없으시겠지.
내가 몇명이나 죽였는 지는 잘 모르겠다. 무조건 앞에 있는 사람을 칼로 베었기때문에, 아마 우리쪽 병사도 몇명 베어냈을 것이다. 내가 벤 사람은 누구일까? 아까 같이 말했던 엘루안씨일까? 아니면 어제 함께 웃으며 왔던 핀들씨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니,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 생각해봤자 마음만 고통스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