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파록 2017. 8. 15. 22:44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한동안 그는 계속해서 허수아비를 내리쳤다. 팔은 팔대로 아파오고 자세를 잘못 잡은 것인지 허리, 다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라는 저 사람은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듯 조용히 누워있었다.

현식은 팔이 너무 아파 하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두 시간도 안했는데 벌써 쉬려구요?"

현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팔이 조금 아파서요....."

그녀는 짚단에서 일어나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훈련할 시간도 없는데 쉬고 싶은 생각이 나요? 빨리 일어나서 연습해요."

"하지만, 팔이 아픈걸 어떡....."

"팔이 아프면 안아플 때까지 휘둘러야죠. 그럴 각오도 없이 로빈테스님에게 검술배우고싶다고 이야기한거에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로빈은 분명 현식에게 검술 배우기는 힘들다고 했었다. 솔직히 현식은 검술을 배우는데 얼마나 힘들까 얕잡아봤었다. 해봤자 팔굽혀펴기나 달리기같은 기본 체력을 한 다음 태권도처럼 정해진 무예 동작이 있어서 그 것을 외우며 배우는 것인줄 알았는데, 이런식으로 배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빨리 일어나서 휘두르세요."

현식은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목검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도 자세나 휘두르는 방법 정도는 이야기해주셔야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휘두르라고 하시면 조금 시간 낭비같은데...."

"일단 휘두르세요. 싸울 때 무조건 자세잡고 휘두를꺼에요? 싸움이 일어나면 자세를 못잡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물론 자세 잡는 게 힘을 싣기에는 좋죠. 강도도 강해지고. 그런데 그 정도의 데미지때문에 자세를 배우기에는 이 5일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5일가지고는 자세 배우지도 못해요."

현식은 이해가 가지않았다. 전투를 하게되면 최대한 자세를 잡으며 공격하는게 맞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자세를 못잡는 경우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자세를 잡고 한 방 한 방 강력하게 휘두르면 괜찮지않을까.

"싸울 때 자세를 못잡는 경우는 피하면서 상대와 멀리 떨어져 자세를 잡고 싸우면 되는거 아닌가요?"

레니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 그를 보며 말했다.

"전투할 때 누가 1:1로 정정당당하게 싸우겠어요? 불리하면 지 친구를 끌어들이는게 사람인데. 그리고 사람들과 싸우는 경우보다 마물들과 싸우는 경우가 더 많을텐데, 뭐 마물들한테 1:1로 싸우자고 할꺼에요? 말도 안통하는데?"

그녀의 말투가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솔직히 1:1의 싸움이 벌어지는 확률이 너무나도 낮았다. 자신의 친구가 주변에 있는데 누가 1:1로 싸우려고 하겠는가. 그 유명한 역사서인 삼국지에서도 소설인 연희에서는 일기토가 많이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일기토를 거의 하지않았다.

현식은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말했다.

"자세는 알겠는데, 그렇다면 휘두르는 법이라도 알려주세요."

그녀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까 제가 보여드렸잖아요. 그걸로 하시라구요."

"아니, 한 번보고 어떻게 따라합니까?"

그녀는 현식에게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현식이 들고있던 목검을 뺏어 쥔 다음 허수아비 앞에 섰다. 잠시 후, 그녀는 허수아비의 팔부분을 향해 목검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나무끼리 부딪히는 뭉툭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지며 양팔을 벌리고있던 허수아비의 한 팔이 '투둑'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잘 봤죠? 이게 종베기에요."

약간의 힘이 실린 그녀의 내려치기를 보고 조금 겁을 먹은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검을 오른쪽으로 눕힌 다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힘을 실어 휘둘렀다. 그러자, 허수아비의 허리부분이 뭉툭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그녀는 이빨을 꽉 물고 말했다.

"자, 이게 횡베기."

그녀는 부러진 허수아비를 버리고 옆에 있던 다른 허수아비에게 다가가 검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리고 적을 향한 다음 힘껏 내질렀다. 그러자, 허수아비의 허리가 부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찌르기'에요."

그녀는 목검을 다시 현식에게 던져주고 말했다.

"이제 전부 다시 알려줬으니까 아무 불평말고 하세요."

현식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에서 뭐라고 더 말하면 자신도 허수아비처럼 될 것 같았기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계속 휘두르다보니 어느 덧 시간은 점심을 이미 훌쩍 지나있었다. 팔은 계속 휘두르니 마비되어 통증은 느껴지지않았지만 팔목은 아무리 휘둘러도 때릴 때마다 충격이 전해져들어와 너무 아팠다. 그는 잠깐 목검을 놓고 팔목을 몇 번 돌린 다음 로빈이 싸준 도시락의 보따리를 풀었다. 도시락의 뚜껑을 여니 맛있는 냄새가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코로 들어와 폐를 정화해주는 것 같았다. 그가 싸준 도시락의 왼쪽 구석에는 간장같이 검은색 소스에 졸여져있는 리쿠고기가 있었고, 그 옆에는 샐러드, 그리고 그 앞에는 볶음밥이 있었다.

그가 숟가락으로 리쿠고기를 들어 입 안에 넣으려할 때, 레니아가 다가와 그의 도시락을 보고 물었다.

"그 도시락은 어디서 난거에요?"

"아, 이거요? 이거 로빈씨가 싸준건데요?"

현식의 말에 당황하며 놀라는 레니아. 그녀는 그의 도시락에 얼굴을 넣을 듯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올려 현식을 보더니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오...왜 당신이 로빈테스님의 도...도시락을 가지고있는거에요?"

현식은 리쿠고기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리쿠의 담백하고 달콤한 육즙과 간장같이 검은 이 짭짤한 소스의 맛이 입 안에 퍼지며 식욕을 자극했다.

"그야, 로빈씨가 힘내라고 싸줬으니 가지고있겠죠."

레니아는 얼굴이 붉어지고 현식을 보고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그...그럼 지금 당신은 로빈테스님 집에 사...살고있다는 건가요?!"

로빈의 집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여관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아 로빈도 그 여관에서 자고있는 것 같았기에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현식의 대답에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현식은 레니아가 왜 그런 것인지 이해하지못하고 볶음밥을 입 안에 넣었다. 소스에 절인 리쿠고기때문인지 볶음밥의 간은 평소보다 싱겁게 되어있었다. 현식은 리쿠고기를 볶음밥에 올려 같이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볶음밥의 고소함과 리쿠고기의 육즙의 달달함, 그리고 소스의 짭짤함이 입 안을 가득 매워 그의 피로했던 정신에 힘을 불어넣었다.

레니아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식이 먹는 밥을 보더니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현식이 당황하며 바라보자, 레니아는 웃으며 말했다.

"저기, 그 도시락 한 입만 먹어도 될까요?"

현식은 무언가 낌새를 알아채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 안에 씹던 것을 삼키고 말했다.

"네, 안됩니다."

그리고 바로 입 안에 샐러드와 함께 리쿠고기를 넣었다. 상큼한 샐러드의 맛이 리쿠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며 조화를 이루었다.

레니아는 도시락을 먹던 현식의 목 옷깃을 붙잡고 흔들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요! 한 번만 먹게 해주세요!"

현식은 강한 힘으로 정신없이 흔드는 그녀의 손을 계속 치며 놔달라는 행동을 했다. 그러자, 레니아가 손을 멈추었다.

현식은 폐로 들어갈 뻔한 음식을 간신히 식도로 삼켰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레니아에게 말했다.

"제가 드리기는 할께요."

그 말에 레니아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현식의 옆에 앉아 도시락을 받으려는 그 때, 현식이 도시락을 살짝 그녀의 반대쪽으로 빼며 말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궁금한 듯이 바라보는 레니아. 현식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음식 드릴테니까 이제부터 훈련하는 거 옆에서 봐주시면서 잘못된 자세같은 것 있으면 바로 바로 고쳐주세요."

현식의 말에 레니아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귀찮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식은 리쿠고기를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다 먹죠,뭐."

그의 반응에 레니아는 당황하며 알겠다는 말을 한 후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도시락을 빼앗 듯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입 안으로 리쿠고기를 넣었다. 마치 세상을 전부 다 가진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바뀌는 레니아. 그는 평소에도 저런 웃음으로 다니면 인기가 많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맛있어요?"

현식이 묻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잠시 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붉히며 바로 손을 내리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잘먹었다는 듯 배를 만지는 레니아. 현식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녀는 현식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자세를 다시 고쳐잡았다. 현식은 그녀에게 물었다.

"로빈 좋아해요?"

그 순간, 짜증난다는 얼굴을 지으며 특유의 기분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그 사람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