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파록 2017. 8. 1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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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에 재능이 없다니요?"

현식은 다시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그러자, 로빈이 음식을 현식이 앉는 자리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녀석의 집안이 어디인지는 아냐?"

현식은 이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않았기때문에 지금있는 이 세계에 어느 가문이 잘나가고 못나가는지 알 지 못했다. 현식의 반응을 보자, 로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산에서 살아도 그렇지 이렇게 정세에 대해 모르면 쓰나....."

로빈은 음식 그릇을 하나 더 올려놓으며 말했다.

"레니아의 가문, 예스피르니가문은 오래전부터 검술에 재능이 있어 좋은 실력의 기사를 배출해낸 가문이다."

현식은 입에 밥을 한 입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은 다른 테이블에 올려놓을 음식을 준비하며 말을 이었다.

"옛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검술의 실력이 좋은 기사들을 배출해내서 각지의 영주들이 와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이지. 그래서 지금 레니아의 오빠나 언니들은 전부 각지의 영주들에게 흩어져 기사단장을 하거나 영주의 호위기사를 하는 등 여러 고위직을 맡고있어."

현식은 감탄하며 다시 입 안에 음식을 넣었다.

"그런데 레니아만은 어느 영주도 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

"재능이.... 없어서요.....?"

"그렇지."

로빈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재능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해. 특히 마물들이 미쳐 날뛰는 지금 시기만큼은 말이야. 원래라면 예스피르니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 신체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 현재 왕국의 수도에서 기사단장을 맡고있는 레니아의 오빠, 니르 예스피르니는 대륙의 끝에 살고있는 드라코를 혼자서 잡을 수 있는 신체능력과 검술재능을 가지고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레니아는 그런 능력 자체를 물려받지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태어났다고 하더군."

현식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 경청했다.

"물론 너도 오늘 느꼈겠지만 레니아는 다른 여자들보다는 훨씬 힘이 강해. 하지만, 그 것도 레니아가 피나는 노력을 해서 얻은 결과물이야. 능력을 물려받은 다른 언니들은 그녀보다 적은 노력으로 강해지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레니아는 다른 언니들보다 3배, 아니 5배 이상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른 언니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더라고."

"하지만, 레니아의 다른 언니들이 그녀보다 노력을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 사람들은 레니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지 못해. 아니, 할 수가 없어. 레니아는 밥도 안먹고 목마를 때마다 물만 마시면서 10일 이상을 잠도 안자고 훈련만 했거든."

"그게 말이 되요?"

현식이 믿지않는 듯 설마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로빈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 나조차도 밥을 안먹으면 힘이 안나서 훈련을 못해. 그런데, 그녀석이 물만 먹고 훈련하는 걸 내가 봤어."

그의 말에 현식이 놀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을 먹지않는 것을 3일까지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것도 몸을 움직이면서 10일을 먹지않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굶어죽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식의 놀라는 표정을 본 로빈은 웃으며 음식이 담긴 그릇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직원이 다가와 그릇을 쟁반에 올려놓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지. 이 녀석이 어디서 군것질을 하면서 훈련을 하는건가, 아니면 새벽에 몰래 들어와 밥을 먹고 다시 나가는건가. 그래서 내가 병영에서 하루 종일 훈련장을 바라보고있었는데, 집에 갈 생각을 하지도 않고 게속 검을 휘두르더라고. 그러다가 목마르면 옆에 있던 물가로 가서 물만 마시고 다시 와서 검만 휘두르고."

로빈은 조리에 쓴 도구들에 물을 부어 씻었다. 그의 입에는 작은 미소만이 걸려있었다.

"그렇게 10일동안 있다가 병영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뭔지 아냐?"

현식은 고개를 저으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로빈은 손에 들고있던 스펀지같은 무언가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배고프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는 계속 조리도구를 닦았다. 레니아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꽉 잡은 스펀지에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여관으로 데려와서 밥이나 좀 해줬지."

현식은 먹던 것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로빈의 말을 들으니 아까 전에 보인 그녀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많은 노력을 한 그녀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현식이 갑자기 그런 기술을 쓰는 것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믿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아니, 믿고싶지않았을 것이었다. 분명 이 기술은 레니아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레니아는 많은 노력을 하면서 겨우 터득한 이 기술을 검술은 커녕, 검을 잡는 자세조차 모르는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배웠다는 것이 달갑지않았을 것이었다.

로빈은 찬장에서 나무로 된 커다란 컵을 꺼내 뒤에 있던 나무통에 달린 수도꼭지같은 것을 돌렸다. 그러자, 그 수도꼭지에서 붉은색의 음료가 흘러나왔다. 로빈은 그 음료를 벌컥 벌컥 마시더니 몸 안에서 막혀있는 것이 뚫린 것 같은 상쾌한 목소리를 내며 입을 닦았다.

"일단 내가 말은 잘 해볼테니까 최대한 레니아의 말에 따라서 잘 해봐. 뭔가 깨달았다고 막 써보지말고. 일단 기초부터 배워."

"네, 알았어요."

현식은 다시 입 안에 음식을 넣었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음식맛도 제대로 느껴지지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곤란한 생각이 들었다. 이 능력도 어떻게 보면 재능에 포함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몇 년을 걸쳐서 배우는 것들을 조건만 안다면 낮은 효과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니 다른 사람들의 재능보다 훨씬 좋은 재능이었다. 그런데 오늘 있었던, 그저 힘을 담으려고 했던 행동이 갑자기 기술이 되서 나가는 것처럼 내일도 그러지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현식이 다른 기술들의 획득조건을 알기 전까지는 이 재능을 조절할 방법이 없었다.

현식은 밥을 다 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레니아의 일을 알게 되니 그녀를 만나기가 약간 껄끄러워졌다. 물론 레니아가 내일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레니아가 나오지않는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로빈의 성격상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기때문에 레니아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아까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인지 침대에서 조금 쉬니 갑자기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당연히도 운동을 안한 사람이 갑자기 운동을 많이 하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현식은 신발을 벗고 침대의 이불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몸의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일까. 어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알이 배겨 몸이 아팠던 것이 며칠 쉬어 풀린 듯 싹 날아가있었다. 현식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밥을 먹고 씻은 후에 어제 훈련했던 동쪽 성 밖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동쪽 성 밖의 훈련장. 그 곳에는 이미 레니아가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녀는 현식을 보더니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현식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현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현식이 사과를 받자, 레니아는 언제그랬냐는 듯 곧바로 현식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어제 했었던 훈련을 계속 해볼까요? 어제 못했던만큼 더 심하게 시킬꺼니까 각오해요."

그녀의 말에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방금 전의 사과로 불편한 감정이 사라져 개운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레니아의 검술강의를 들으며 훈련하니 검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이 게임능력때문인지는 몰라도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운동을 하지않아도 데미지는 강해졌다. 처음에는 허수아비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허수아비의 팔을 치면 부러뜨릴 정도까지 파괴력이 높아졌다.

마지막 날, 현식은 레니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는 방에 돌아와 깜깜해진 창문 밖을 보며 마을의 마지막 야경을 감상했다.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난다는 생각에 약간은 설레면서도 조금은 불안했다. 이 도시 밖에는 이 도시 주변에 사는 마물보다 더 강한 마물이 가득할 것이었고, 겨우 이 실력으로 그 마물들을 헤치며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가지않으면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떠날 채비같은 것은 필요없었다. 필요한 물품은 내일 아침에 가게들이 문을 열자마자 돌아다니며 살 예정이었다. 음식이야 아직 돈이 남아있으니 잡화점을 가서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함께 간단히 먹을 것을 사면 됐기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내일의 계획을 곰곰히 생각하던 현식은 어느 새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날. 현식이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시침은 8시를, 분침은 23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앞으로 7분 후에 가게들이 문을 열테니 최대한 빠르게 준비한다면 좀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현식은 준비를 끝내고 바로 방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계단의 끝까지 내려오자, 로빈이 현식을 불렀다. 그리고 현식에게 거대한 보따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로빈은 웃으며 볼을 긁적이고 말했다.

"내가 음식 좀 쌌다."

현식은 그의 말을 듣고 입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가 여관의 뒤뜰로 간 다음 인벤토리에 도시락을 넣고 빠르게 뛰어 무기점으로 향했다. 물건들은 전부 영주가 말했던대로 원가보다 싼 가격에 팔고있었다.

무기점에서 그는 검 한 자루를 샀다. 단검보다는 조금 더 기다란 검. 평범해보였지만 날도 날카로웠고 무엇보다 가벼웠기때문에 이 검을 선택했다.

그리고 캐니언이 소개시켜준 갑옷점에서, 그는 그가 입고있던 갑옷보다 조금 더 무겁지만 강도가 높은 경갑 하나를 구매했다. 편한 움직임을 위해 가죽으로 만든 팔꿈치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나무로 이루어진 갑옷. 하지만, 겉에만 나무일 뿐 안쪽에는 가벼운 철판으로 되어있어서 강도 하나는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갑옷점의 여주인은 가격을 속여파려고 했지만, 현식이 미리 가격을 봐둔터라 속지않고 정가에 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들른 곳은 잡화점. 토미의 잡화점으로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토미가 파는 것들은 대부분 물약뿐이었기에 다른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잡화점에서 현식은 오래 보관이 가능한 육포를 꽤 사고 등불과 기름 그리고 부싯돌을 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현식은 토미의 잡화점으로 향했다.

토미의 잡화점의 문 앞, 토미는 밖에 나와 자신이 키우던 약초들에게 물을 주고있었다. 잠시 후, 토미는 현식을 보더니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현식에게 달려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현식씨가 머무는 여관에 찾아갔는데 없었는데, 어디갔다 온거에요?"

현식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그게.... 검술을 조금 배우고있어서....."

그의 말에 토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손을 눈가에 대고 우는척을 하며 말했다.

"이제 마법스승은 볼 장 다 봤으니 필요없고 다른 스승을 구하신거구나..... 이 마법스승님은 참으로 서운해요....."

"그런거 아니에요."

현식이 웃으며 말했다. 이내, 토미도 미소를 지으며 현식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 그럼 오늘도 마법을 배워야죠."

"아, 잠시만요."

토미는 궁금한 표정으로 현식을 바라보았다. 아이같은 순수한 표정에 현식은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 약간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 마법 배우러 온게 아니에요. 인사하러왔어요."

현식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토미. 현식은 말을 이었다.

"오늘 떠나기로 했거든요. 아마 당분간, 아니 오랫동안 여기에는 못올 것 같아요."

토미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잠깐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에, 토미는 입을 꾹 닫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저한테 인사하러 오신거에요?"

"네."

짤막한 현식의 대답. 토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현식에게 말했다.

"뭐, 오늘 떠나신다니 어쩔 수 없네요. 언제 돌아오실지는 아직 정하지는않으신거죠?"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다음에 오면 꼭 여기부터 들려주세요. 스승님 걱정시키지말고."

토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목이 메였다. 분명 만난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그 시간동안 정이라도 들은 것인지 그를 보내고싶지않았다. 하지만, 토미가 그를 머물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있더라도 그는 떠날 것 같았다. 그러니 웃는 모습으로 보내주고싶었지만, 역시 몸은 머리를 따라주지않았다.

현식은 우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꼭 다시 올께요."

토미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식은 토미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서 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토미가 안정을 되찾자 현식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 가볼께요."

토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식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에 뒤로 돌아 북쪽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