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파록 2017. 8. 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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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현식은 그것이 만화인지, 아니면 소설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않았지만,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창작물의 내용은 매우 뻔한 이야기였다. 마을에서 떠난 주인공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산적과 만나서 그 산적들을 물리치고 다시 마차로 이동하는 이야기였다. 그 때, 현식이

그 이야기를 보고 생각을 했던게,마차를 타면 도망치기도 힘들고, 마차의 소리도 크기때문에

당연히 산적의 표적이 될 확률도 높을텐데 도대체 왜 마차를 타지말고 말을 타고 가면 될 것을 말이 아닌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하지만, 이제 현식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말을 타지않은 것이 아니였다.

말을 타지 못한 것이었다.

마을을 떠나기 직전, 그는 걸어가는 것이 꽤나 먼 여행이 될 것 같아서 말을 사려고했지만,

말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던 현식은 결국 마차를 탔다. 그래서 터진 상황이 바로 이 상황.

주변에는 많은 수의 산적들이 둘러쌓여있었고, 마차에는 현식과 마차를 모는 마부 한 명 뿐이었다.

현식은 약간의 공포감이 들었다. 사람과 싸워본 적이라고는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는 싸울 뻔 했지

싸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경험이라고는 딱 한 번 뿐이었다. 그 것도 주먹다짐으로 한거였지

이것처럼 검이나 활을 들고 싸운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있을리가 없었다.

현식이 흰색의 천으로 둘러쌓인 마차의 안에서 긴장하고있을 때, 주변에서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마차를 둘러싸고있던 산적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에 검의 면을 툭툭 치며 현식에게

나오라는 신호를 보였다.

현식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마차의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현식에게 신호를 보냈던 남자가 현식의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풀어 검을 살펴보며 웃었다.

"이야, 별로 강해보이지도않는 놈이 검을 이렇게 좋은걸 갖고다녀?"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산적들이 전부 큰소리로 비웃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와 현식의

몸을 만지며 무언가 더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현식의 몸에서는 검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나오지않았다.

그의 몸을 검사한 산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녀석 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네."

"그래?"

그 옆에서 현식의 검을 자신에 허리에 차던 산적이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럼 뭐 노예로 팔아버려야지."

그리고 산적은 현식의 뒷목을 잡아 끌며 자신들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솔직히 현식은

그들에게 덤벼보고는 싶었다. 자신의 수중에는 검도 있었지만 빼앗겼고, 인벤토리에 지팡이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지팡이를 꺼냈다가는 산적들을 물리치는 것은 고사하고 시간이 멈추는 것 때문에

자신이 패닉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현식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간 남자는 현식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힘이 얼마나 강하던지 현식은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쓰러진 현식을 발로 밟고 걷어차며

때렸다. 아무것도 못하고 맞던 현식.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시야 왼쪽 맨 아래에 있던 체력게이지는

꽤나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새 HP가 반 이상 줄어들었을 때, 누군가 현식을 걷어차던 산적 한 명의

얼굴을 붙잡고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들리는 커다란 소리. 산적들이 밟는 것을 멈추자, 현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한 명의 여성이 서있었다.

검은색의 긴 머리에 눈동자는 햇빛을 받은 흑진주처럼 아름답게 빛이 났다. 얼굴은 꽤나 미인형이었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않았는지 얼굴에서는 앳된 모습이 보였다. 몸에는 검은색의 팔꿈치까지 오는 상의 타이즈에 가슴부터 갈비뼈까지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회색의 중갑이 빛을 받아 흰색으로 반짝였다. 하체도 마찬가지로 무릎까지 오는 타이즈에 허벅지와 허리부분에는 상의 갑옷처럼 두꺼운 철판으로 이루어진 중갑이 타이즈 위에 장착되어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머리가 벗겨진 산적 한 명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몸을 축 늘어뜨리고 머리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있었다.

그녀는 들고있던 산적의 머리를 놓고 곧바로 다른 산적을 향해 달렸다. 꽤나 먼 거리. 그 거리에서 산적이 자세를 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바로 위에 있던 산적이 아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들리는 커다란 소리.

그 소리가 나고 나서 얼마 후, 현식의 몸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현식은 팔을 휘저으며 녹색의 빛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녹색의 빛은 없어지기는 커녕 더 빠른 속도로 현식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당황한 현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빛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도망치려했지만, 빛의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에 자리에서 멈추고 몸을 살펴보았다. 산적들에게 밟혀 상처가 많았던 몸의 상처가 빠르게 낫고있었다.

그리고 상처가 다 낫자 녹색의 빛들은 사라졌고, 현식이 산적들에게서 떨어지자 멀리서 커다란 불의 구체가 날라왔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현식은 뒤로 돌아 산적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를 밟고있던 산적들 전부 온 몸이 검게 타거나 사지가 분해된 채로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나는 고기타는 냄새.

그 풍경은 현식에게 맞지않는지 위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예전부터 쏘우조차도 잘 보지 못한 현식에게 있어서 이 풍경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남아있던 산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 속을 향해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은 검은머리의 소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의 속도는 그가 이 때까지 본 어느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산적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소녀는 산적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산적의 머리가 단단한 바닥에 부딪혔고, 순간 발버둥치던 남자의 몸이 이내 축 늘어졌다.

얼굴에 피가 묻은 그녀는 마치 영화나 만화속에서만 보던 살인병기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표정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몸을 숙여 헛구역질을 하던 현식은 이내 몸을 일으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나온 숲에서 두 명의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사님, 대단해요!"

갈색의 머리를 양갈래로 나누어 묶은 소녀. 귀여운 얼굴에 지어진 밝은 미소가 그녀가 활기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소녀 역시 몸에 타이즈를 입고있었는데, 생머리의 소녀와는 달리 붉은색의 타이즈에 약간의 붉은빛이 도는 중갑을 입고있었다.

하체도 마찬가지였다. 손에는 그녀의 여린 몸에 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꽤 커다란 철퇴와 방패를 동시에 들고있었는데, 방패에는 십자가가 그려져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알고있는 상식에 의하면 성기사 같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나온 남자. 머리에는 회색으로 된, 챙이 넓은 고깔모자를 쓰고있었고, 몸에는 회색의 누더기처럼 생긴 로브를 입고있는,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나 보던 회색의 현자 간달프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간달프의 차이점은 그가 현식과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이라는 것 하나 뿐이었다.

마법사처럼 보이는 그의 손에는 그의 키보다 기다란 나무지팡이를 쥐고있었는데, 나무지팡이의 머리에는 나무의 줄기를 하나로 모아 꼬은 것 같은 장식이 되어있었다.

현식은 그들에게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내 마차를 끌던 마부도 다가와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마법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만 보던 전형적인 말. 현식은 헛웃음을 지었다. 마부는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뭐라도 보상을 해드리고싶은데....."

마부는 턱을 문지르며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 가시는 길이십니까? 괜찮다면 제가 태워드리겠습니다."

마부의 말이 정답이었던걸까. 성기사처럼 보이는 소녀가 펄쩍 뛰며 그 옆에 있던 긴 생머리의 소녀에게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용사님. 마부아저씨가 태워준대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향하시는 마을까지 태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자, 타시죠."

마부는 곧바로 마차의 뒤로 안내했다. 현식은 자신의 검을 가져간, 검게 탄 산적에게 다가가 자신의 검을 챙기고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