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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나만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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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푸른 녹색의 숲, 그 숲 안에서 들리는 청아한 새소리와 흘러가는 냇물, 그리고 동물들의 대화소리가 아름답게 울려퍼진다. 마치 한 곡의 평화로운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음은 진정되고 진정되는 마음에서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활기차게 피어났다.

동물들과 식물, 그리고 곤충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이 넓디 넓은 숲속에 누군가의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묵직했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걷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 이 발걸음소리는 어딘가로 향하는 듯 빠르게 들려왔다. 숨이 차서 쉬고, 다시 걷고를 반복해 그것은 가려는 곳에 도착한 것인지 더이상 발걸음소리는 들리지않았다.

그 발걸음소리의 주인은 한 남자아이였다. 황금밀밭같이 아름답게 노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그 아이의 성격을 나타내듯 똘망똘망한 눈, 태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입술을 가진 한 남자아이. 옷이 여자옷이었다면, 누구나 다 착각할 것 같이 예쁘게 생긴 그 아이는 손에 화려하지않지만, 푸른빛이 도는 회색으로 염색한 나무로 이루어진 리라를 손에 들고 태양이 비치는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그 아이는 잠시동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리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리라를 조심스레 다리 위에 올려두고, 손으로 줄을 퉁겨 소리를 내었다. '솔'의 아름다운 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이 아름다운 소리가 너무나도 좋은 지, 그 아이는 다시한번 줄을 퉁겼다. '레'의 낮은 음이 다시한번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아이는 리라를 손으로 들어올려 쭉 뻗고 바라보았다. 회색의 뱀의 형상이 그려진 아름다운 리라. 아이는 그 리라를 언제까지고 바라보아도 질리지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다시 리라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음색, 그 음색 사이에 퍼지는 우아한 진동이 숲 안에 울려퍼졌고, 그 소리를 듣고 하나, 둘 동물들이 다가왔다. 다람쥐, 참새, 사슴 뿐만 아니라 늑대와 여우 그리고 호랑이 같은 맹수들과 거미와 개미, 사슴벌레같은 곤충들도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의 연주가 바람에 날려 먼 곳까지 들리는 듯, 먼 곳에서 세차게 울던 매미들과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는 그 순간만큼은 조용했고, 자신의 짝을 찾아 슬피울던 새들도 더이상 울지않고 그의 어깨에 앉아 소년의 연주를 감상했다.

천사의 음색인걸까, 아니면 주변의 생명들을 홀리는 악마의 음색인걸까. 먹이인 동물들과 포식자인 동물들이 서로 몸을 기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절대로 싸우고싶지않다는 듯이.


아름다운 리라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이내 소년은 줄을 퉁기는 것을 멈추고 눈을 떴다. 주변에 동물들이 왔다는 것을 보고 놀랄 법도 하다만은, 아이는 동물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깨에 올라와있는 새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었고, 연주가 끝나자 가까이 다가오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늑대는 그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 듯 그의 앞에서 누워 잠을 청했다. 주변에 모든 동물들이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있자, 그는 웃으며 다시 리라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줄을 퉁겼다. 아름다운 리라의 음색이 그와 동물들의 귀를 기분좋게 두드렸다. 아이는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이 곳에서 리라를 연주하며 동물들과 함께 살고싶다고. 언제까지나 동물들에게 나의 연주를 들려주고싶다고. 

그의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않아 다른 사람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같은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숲에 작게 퍼져나갔지만, 숲에는 소년의 연주가 울려퍼지고있었기 때문에, 그 발걸음소리를 알아차리는 동물들은 아무도 없었다. 발걸음은 그가 앉아서 연주를 하고있는 바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있었다. 하늘의 해는 점점 떨어져 붉게 물들어가고있었지만, 그 발걸음은 상관이 없다는 듯, 연주가 들리는 곳을 향해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그 발걸음소리는 노래소리가 들리는 곳에 다다르고 멈추었다.

그 발걸음의 주인공은 한 여자아이였다. 염색인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모르는 붉은색의 머리에 윗머리를 땋아 내리고, 속눈썹이 길고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한 여자아이. 소녀는 그 아이와 비슷한 또래였다. 

소녀는 바위 위에서 앉아 연주하는 아이를 보았다. 동물들과 함께 어울려 리라를 연주하는 아이를 보고 소녀는 놀랐다. 마치 천사가 잠깐 내려와 동물들을 위해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가 있는 풍경은 아름다웠고 신비했다. 소녀는 천천히 다가가 동물들 옆에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이런 음악이 세상에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이 너무나도 황홀했다. 이 황홀함을 언제까지나 느끼고싶었다. 그래서 소녀는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연주가 끝나고, 소년은 감았던 눈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기대고있는 소녀를 보았다.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자고있는 소녀. 소년은 조금 놀랐다. 이 곳에 사람이 올 줄은 몰랐기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웃으며 소년도 그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연주를 들어주는 소녀를 위해 리라를 다시 연주했다. 세 번째 연주, 소년은 손가락이 아파왔다. 하지만 연주를 멈추지않았다. 기분 좋게 자고있는 동물들과 소녀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고싶었다. 그러나, 리라는 더이상 소년을 아프게하고싶지않은 듯 자신의 소리를 최대한 아름답게 내었다. 그러자, 소년은 점점 잠이 들기 시작했고, 이내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연주하던 손을 멈추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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