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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당한 소설/에르카나

제목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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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서쪽 외곽의 시골마을 페렐.

동쪽 끝에 있는 마왕성과는 꽤나 먼거리였기 때문에 마왕의 힘이 조금밖에 미치지 않아 마물들이 약해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물들을 없앨 수 있었기에, 다른 마을들 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에르카나 대륙의 국가 네이블의 수도와는 꽤나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인구는 얼마 없었지만, 마을사람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가 떨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으아아아아!”

하늘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마을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궁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색의 물체. 그 물체는 빠른 속도로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고, 꺅꺅거리며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그것이 뭔지 더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내리쬐는 태양빛 때문에 그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가지않아 바닥에 떨어진 물체. 그 물체가 떨어진 장소는 마을의 축제가 열릴 때마다 쓰이는 마을의 광장이었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강하게 흙먼지가 날리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흙먼지 때문에 잘은 보이지않았지만, 마을 광장의 거대하게 파인 구덩이 안에는 한 소년이 뒷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좋아하며 소리쳤다.

...살아있다....살아있다!”

인간이 저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 살아있는 것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옷을 입고있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저 사람이 하늘에서 추방당한 천사가 아니냐고 속닥거렸다.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자 소년은 소리치다가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늙은 노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소년은 고개를 들어올려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다 빠져 반들반들한 속살이 드러나있었고, 실같이 하얀색의 기다란 눈썹 때문에 눈이 보이지않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 쭉 뻗어진 긴 수염까지 나있어서 입조차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허리가 굽어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옆에는 한 소녀가 그가 넘어지지 않게 팔을 붙잡고 부축하며 힘겹게 걸어왔다.

소년은 그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누구시오?”

노인은 힘겨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옆의 소녀가 잘 부축해주고 있어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 제 이름은 김환이라고 합니다.”

환이 말하자, 노인은 소녀의 손을 뿌리치고 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붙잡고 물었다.

이 때까지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날 데리러 이렇게 왔구만.....”

이해가 되지않아 표정을 찡그리고 노인을 바라보는 환. 노인은 뒤를 돌아보며 지팡이를 든 손의 반대손으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 때까지 고마웠구먼....! 다음 생에도 여기서 태어나도록 신께 부탁하겠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노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돼요, 할아버지!”

이 때까지 노인을 부축하고 있던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않아 노인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환의 질문에,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 갑시다.....빨리 하늘로 올라가 내 아내를 만나고 싶구만.....”

아무래도 노인과 다른 사람들은 환을 저승사자로 생각하는 듯 했다. 환은 양손을 흔들며 부정의 표시를 보이고 말했다.

아니에요, 저 저승사자 아니에요!”

저승사자가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노인.

그럼 자네는 누군가?”

그 말에 울던 마을사람들도 모두 멈추고 환을 바라보았다. 환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도 사람이에요.”

그 말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환을 바라보았다. 하긴 환도 믿지않을 것 같았다. 저 높디높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살았는데 그걸 인간이라고 하면 그 누가 믿겠는가.

환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정말로 사람이에요! 믿어주세요!”

눈은 보이지않았지만, 노인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놀란 듯 했다. 잠시 후, 노인은 손짓으로 소녀를 오게 하더니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환에게 말했다.

일단, 우리집으로 가서 얘기나 한 번 들어봄세.”

환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표정을 조금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노인을 따라갔다.

 

길을 가는 내내 날아오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고 도착한 집 하나. 통나무 여러개를 뭉툭하게 깎아만든 이 집은 관리를 하지않은 것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지어 낡아버린 것인지 겉의 껍질이 갈라지고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집의 앞에는 찍다만 장작이 꽂힌 그대로 둥근 나무 밑둥의 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여기가 할아버지 집이에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그의 옆에서 부축을 하던 소녀가 말했다. 얇고 차분한, 고운 목소리가 환의 귀에 흘러들어왔다.

, 맞아요. 제가 항상 다른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절대로 가시지않더라구요.”

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에서도 한 곳에 오래 산 어르신들은 이 집에서 지낸 추억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노인이 집 문 앞에 도착하자, 소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다행이 집 안은 외견과는 다르게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집 안의 거실이자 손님을 맞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거실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얼굴을 돌려 노인의 방인 듯 한 곳을 살짝 보니, 방 안의 침대도 깔끔히 정리되어있었다. 거동을 보니 노인이 한 것 같지는 않았고, 소녀가 이따금 찾아와 도와주는 것 같았다.

소녀는 노인을 탁자에 앉혀놓고 반대쪽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쪽에 앉아주세요.”

, .”

조심스레 의자에 앉은 환. 의자에 앉자마자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들은 검의 끝이 바닥에 닿아 작은 흠집을 냈다. 그는 깜짝 놀라 곧바로 손에 들은 검을 무릎에 올려놓고 팔을 탁자의 위로 올려놓았다.

잠시 후, 소녀가 차 한 잔을 노인과 환의 앞에 놓고 또다른 의자에 앉았다.

노인은 차를 한모금 마신 후, 환에게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누구라고 했지?”

환 역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쌉쌀한 녹차의 향이 입 안에 퍼졌다.

저는 김환이라고 합니다.”

그래.... 김환이라고 했었지....”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인 베니로 레이커, 옆에 있는 이 아이는 내 손녀 헬레나 레이커라네.”

환은 눈을 조금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의 귀 옆머리를 작게 꼬아 땋았고, 동그란 얼굴에 있는 큰 눈과 작은 입이 그녀를 더욱 귀엽게 보이게 했다. 옷은 갈색의 튜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만화속 시골소녀에게서나 풍기는 느낌을 주었다.

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작게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녀 역시 고개를 작게 숙이며 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베니로는 환이 인사를 마치자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왜 떨어졌는가?”

환은 그 질문을 듣고 표정을 찡그리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입을 벌리는 베니로과 헬레나. 이야기가 끝나자, 베니로는 차를 든 손을 벌벌 떨며 힘겹게 마시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을 올려 만세를 부르려한 듯 했지만, 허리에 무리가 갔는지 허리를 만지며 점점 내려왔다. 헬레나 역시 양 손으로 입을 가리고 베니로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당황한 환. 베니로는 지팡이를 짚고 환에게 천천히 다가와 환의 양손을 붙잡고 감격에 차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요..... 용사님!”

환은 곧바로 자신의 손을 빼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용사는 절대 안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용사님? 네레아 여신님께서 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네레아인지 뭔지 저는 모르겠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꺼에요.”

네레아님을 그렇게 말하시면 벌 받습니다, 용사님!”

노인은 아이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목소리로 환에게 말했다. 한숨을 쉬는 환.

잠시 후, 노인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헬레나가 물었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아세요?”

그 말을 들은 환은 뜨끔했다. 확실히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몰랐다.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싶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베니로가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마왕을 무찌르고.....”

아니요, 절대로 안할껍니다.”

베니로의 말을 듣지도않고 단박에 거절하는 환. 헬레나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천장을 조금 바라보더니, 이내 환에게 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컴푸타(?) 컴퓨터(?) 인지 뭔지 그 곳에서 여신님께 이끌려 들어오셨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여신님께서 마왕을 무찌르라 하시고 보내신거면 마왕을 물리쳐야 용사님 세계로 다시 돌아가실 수 있는 것 아니에요?”

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니, 그 방법이 정답인 듯 했다. 이 세계에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신인지는 그 여자밖에 없을 것 같았고, 그녀는 마왕을 처치하지 않으면 원래 세계로 다시 보내줄 것 같지 않았다.

.... 정말로 마왕을 처치해야하나.....”

환은 스트레스를 받아 깊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환은 마왕을 처치하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앞날이 깜깜했다. 그것보다 마왕을 처치하기 전에 다른 괴물들 손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까지 찾아왔다.

베니로는 환의 혼잣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용사님께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네레아 여신님께서 시키신 명령을 완수하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용사님, 꼭 마왕을 무찔러주세요!”

아까까지만 해도 골골거렸던 목소리였던 베니로가 힘이 가득찬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자 헬레나를 포함한 환까지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니로는 둘의 눈치를 보며 갑자기 기침을 시작했고, 환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환. 그는 일단 이 곳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 베니로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여기가 지금 어디에요?”

그 말에, 베니로는 헬레나에게 지도를 가져오라고 시키고 말했다.

여기는 에르카나 대륙의 작은 국가 네이블의 가장 외곽에 있는 마을 페렐입니다.”

이내 헬레나가 지도를 가져와 탁자 위에 펼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대륙의 제일 끝을 가리켰다.

그럼 마왕성은 어디있는데요?”

이번에 그가 가리킨 곳은 대륙의 정 중앙에서 약간 서쪽인 곳이었다. 지도는 꽤 오래된 것인지 마왕성이 그려져있지는 않았다.

여기가 바로 마왕성입니다.”

손그림으로 그려져있는 지도라 정확한지 아닌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저게 맞다면 꽤나 먼거리를 가야만 했다.

환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촌장이 서둘러 그에게 말했다.

네이블국의 국왕님께 가시면 지원해주실겁니다.”

....”

베니로는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환에게 말했다.

일단은 마을에서 지내시며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물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기는 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또 마왕까지 처치해야된다고는 꿈에서도 꿔본 적이 없었다.

헬레나.... 용사님께..... 마을 외곽에 있는 빈집으로 안내해드려라....”

어느새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돌아온 베니로. 헬레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환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길을 걸으며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마왕을 처치하려면 무술을 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여신이 준 검을 사용하려면 검술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가 배운 것이라고는 어렸을 적 누구나 배운다던 태권도 하나였다. 그 것도 오랫동안 배운 것이 아니라 딱 파랑띠까지만 잠깐 배운 것 뿐이라 잘하는 것도 아니였다.

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서 헬레나가 환의 옷을 매만지며 물었다.

진짜 특이한 옷을 입고계시네요.”

환은 자신이 입고있는 하계 교복을 둘러보고 말했다.

, 이거 교복이에요.”

교복이요?”

놀라며 바라보는 헬레나. 이 세계에도 교복쯤은 있을텐데 왜 이렇게 놀래는 것일까. 환은 그녀에게 물었다.

교복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는 보시다시피 시골마을이라 학교가 하나 있기는 한데 여러 나이대의 애들이 같이 배우는 데다가, 여기에는 교복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집은 없어요. 도시도 한 번 가본 적이 없고.... 볼 일이 없죠.”

원래 세계에서도 시골에는 인구가 얼마 없어 학교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 이런식으로 나누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이대의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배웠다. 이 세계도 다를 것은 없는것 같았다.

잠깐동안의 침묵 후에, 갑자기 헬레나가 미소를 지으며 어딘가를 향해 뛰어갔다. 그녀가 뛰어간 곳에는 작은 통나무 집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여기에요.”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환은 천천히 걸어가 고개만 조금 들이밀고 안을 살펴보고나서야 들어갔다.

오랫동안 쓰지않았는지 퀴퀴한 냄새가 집 안에 퍼져있었다. 바닥이든 어디든 먼지가 쌓여있어 정리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환에게 말했다.

이 집이 오랜 시간 빈집으로 있던 곳이라 조금 더러워요. , 그래도 걱정마세요. 오늘 하루 제가 도와드릴께요!”

말을 끝낸 그녀는 곧바로 침대에 있던 이불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이불 밑에 있던 바퀴벌레들이 사삭거리며 그녀의 다리 뿐만 아니라 주변에 빠른 속도로 돌아다녔다.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진 헬레나는 꺄악 소리지르며 이불을 이불을 떨궜다. 그러자, 이불에 있던 많은 먼지들이 공중에 피어올랐다. 환은 눈을 감고 기침을 하며 창문을 찾아 열었다. 뿌연 먼지가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한동안 기침은 계속되고, 이내 먼지가 가라앉아 환은 눈을 떴다. 헬레나는 이미 기절한 듯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바퀴벌레 하나로 기절까지 할 정도인데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살고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는 한숨을 푹 쉬고 그녀를 들어올려 나무침대로 옮겼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검을 벽에 기대어놓고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 강하게 털었다. 사방으로 먼지가 날아갔다. 그 중에서는 환의 얼굴쪽으로 날아오는 먼지들도 있었기에, 그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죽을 것 같았지만, 먼지가 가득한 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빨리 청소하고 깨끗한 집에서 사는 것이 나았기에, 그는 열심히 털고 집안을 청소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붉은 하늘이 되어있을 때였다. 그녀는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이 털어진 침대의 이불 위에 누워있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빨리 내려오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실수로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침대의 밑으로 넘어졌다.

에구구....”

벽에 부딪혀 아픈 머리를 문지르는 헬레나. 갑자기 큰소리가 들리자, 너무 작아 거실같지도 않은 거실에 있던 환이 그녀가 있는 침실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에는 작은 혹이 생긴 것 같았지만, 그에게는 별로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환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레나는 거실로 나와 탁자의 의자에 앉았다. 아까까지만해도 쌓여있었던 먼지는 그녀가 기절해있었던 사이 그가 다 치운 것인지 깨끗하게 닦여있었지만, 아직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에는 먼지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환은 표정을 찡그리고 머리를 긁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밥은 어떡하지.....”

환은 낮에 대충 청소를 끝내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과일같은 것은 없었다. 토끼나 다람쥐 등 작은 동물들이 있었지만, 저 동물들을 죽일 용기가 나지않아 포기했고, 나무 밑에는 버섯이 자라고 있었지만, 저 버섯이 독버섯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어 먹는 것을 포기했다.

현식의 혼잣말을 들은 것인지, 그녀는 박수를 한 번 치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저녁시간인데, 오늘은 저희집에서 식사하실래요? 제가 맛있게 만들어드릴께요!”

, 정말요?”

환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웃자, 그녀는 가슴을 쭉 펴고 퉁 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요리 하나는 자신있다구요!”

그래요? 그럼 감사히 먹도록 할께요.”

제가 정말 맛있게 해드릴께요!”

그녀는 미소를 짓고 그의 팔을 붙잡고 집 밖으로 이끌었다.

 

밖에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미안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 청소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환은 고개를 조금 돌려 헬레나를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 필요한 데는 청소 다 끝냈고, 내일이나 마저 청소 끝내고 침대 이불도 빨아야죠,

, 이불은 제가 빨아드릴께요. 내일 아침에 용사님 댁으로 찾아갈테니 접은 이불은 저한테 주세요.”

아니에요. 제가 집에서 빨아야죠. 뭐하러 다른데서 빨아요.”

그녀는 환의 말에 조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제가 내일 아침에 찾아와서 도와드릴께요.”

그래주신다면 저야 고맙죠.”

그녀는 헤헷하고 웃더니 얼굴을 붉혔다. 잠시 후, 환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에요?”

아직 어려요. 올해 16살이에요.”

저랑 두 살 차이밖에 안나는데요,. 우리 말 놓을래요?”

...아니에요! 어떻게 제가 용사님과 말을.... 용사님께서 존대해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그냥 오빠라고 불러. 나도 편하게 말 놓을테니까.”

아니에요, 용사님은 말 놓으세요. 저는 이게 더 편해요.”

그럴래?”

환은 멋쩍은 듯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 반응이 웃긴 것일까, 헬레나는 쿡쿡거리고 웃었다.

 

어느새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그녀는 꽤나 멀리 떨어진 집 앞에 멈춰섰다.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베니로의 집과 마찬가지로 겉은 나무가 갈라져 있었고, 그녀 역시 혼자 사는 것인지 안에는 불빛조차 나오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헬레나는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환도 이어서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아이의 집 답게 집안은 꽤나 깔끔하고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역시나 그녀가 노인의 집을 치운 것인지 거실은 노인의 집과 비슷하게 정돈되어있었다. 여자 아이의 방은 마음대로 보면 안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는 그녀가 앉으라고 말한 거실의 탁자의자에 앉으며 힐끗 방 안을 살펴봤다.

침대에는 분홍색의 귀여운 이불이 다리미로 다린 듯 구김없이 깔끔하게 펴져있었고 침대의 머리쪽, 즉 베개가 있는 쪽은 몇 개의 동물인형이 그녀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듯 다리를 쫙 펴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물을 끓여 차를 내오고 말했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주방으로 돌아간 헬레나는 환이 온 것이 그렇게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환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학교 갔다오면 집에 혼자 있기는 하지만, 부보님이 돌아오시면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며 지낸다. 그런데, 헬레나는 아무래도 부모님이 계시지않은 것 같았다. 집안에는 어린 소녀 혼자만 지낼 수 있는 공간 뿐이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혼자서 살 수 있었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녀가 있는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 때까지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신료의 냄새. 짭짤한 소금내가 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약간의 단내가 그의 입 안에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잠시 후, 그녀가 내온 것은 바구니에 든 빵과 묽은 스프 그리고 집 안에 퍼져있는 냄새의 원인인 요리였다. 조금 걸죽하면서도 간장을 쓴것인지 어두운 갈색의 빛깔이 도는 버섯요리. 양파라던지 당근, 감자가 들어가있어 꼭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버섯볶음을 보는 것 같았다.

헬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세요.”

그래.”

환은 숟가락으로 스프를 조금 떠먹었다. 묽은 스프는 생각했던대로 조금 싱거웠지만, 못먹을 만큼은 아니였다. 요리 실력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다음에 입에 들어간 것으로 종결되었다.

환은 바게트빵을 조금 찢어 그 위에 버섯볶음같은 것을 올려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 버섯볶음이 빵과 함께 혀에 닿자, 부드럽고 은은한 버섯의 향과 강렬하고 짭짤한 향신료의 맛이 어우러지며 마치 천상의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 정말 맛있는데?!”

그의 반응을 기대하며 바라보던 헬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함께 당연하다는 듯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했어요? 요리실력 하나는 출중하다고 했잖아요.”

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번 더 먹었다. 역시나 그녀의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녀는 환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는 듯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시간이 끝나고, 너무 늦은 시간까지 여자아이의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녀가 식사가 끝나고 타준 차를 전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까.”

환의 말에 약간 시무룩해진 헬레나. 그녀는 환이 조금 더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은 시간까지 헬레나의 집에서 있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었기에 그는 앉아있는 헬레나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조금 피곤해. 그리고 어차피 내일 아침에 만날껀데 뭘 그렇게 시무룩해하고있어?”

내일 만난다는 말에 헬레나는 약간 표정이 풀렸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운 듯 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는 없었기에, 환은 천천히 문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헬레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문앞으로 향했다.

그럼 내일보자.”

환은 문을 열고 말했다. 그의 인사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밤길은 차가웠다. 이 곳은 원래 세계와는 다르게 공기가 맑아 수많은 별이 하늘에 떠있는 게 보였다. 시골을 가도 잘 볼 수 없는 별들의 향연. 너무나 아름다웠다.

처음에 이 곳에 떨어진 것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 때는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원래 세계에서 지루하게 사는 것보다 마왕을 물리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는 것이 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감조차 잡히지않지만, 분명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확실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적들과 대립하며 싸울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지않을 수가 없었다.

별들 참 많다.”

환은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집에 가기 무섭게 침대에 누워 기절했던 환은 아침부터 들려오는 문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집이 아니라 두리번 거리던 환은 자신이 어제 이세계로 왔다는 것을 떠올리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가요.”

하품을 하고 까치집이 진 머리를 긁으며 문을 여는 환. 그 앞에는 어제 함께 밥을 먹었던 헬레나가 미소를 짓고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잘 주무셨어요?”

환은 이 아이가 왜 왔는지 잠깐동안 이해가 되지않다가 어제 했었던 약속을 깨닫고 당황하며 말했다.

, 미안해. 잠깐만 기다려.”

환은 바로 문을 닫고 머리를 최대한 매만졌지만, 뻣뻣한 머리를 물없이 만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환은 결국 머리 손질은 포기하고 입고 자서 구겨진 교복을 최대한 펴고 다시 문을 열었다.

들어와.”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집안을 둘러보는 헬레나는 바뀐 것이 없자 안으로 들어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멋쩍은 듯 웃는 환.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헬레나를 애써 무시하고 그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접어 가지고 나오며 물었다.

그럼 이불부터 빨아볼까? 어디서 빨까?”

헬레나는 약간 거무튀튀한 이불을 보고 조금 심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개울로 나가서 빨아야겠는데요.”

그래? 개울이 어디있는데?”

그녀는 창문 밖의 내리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지고 내려와주세요. 이불은 제가 빨께요.”

알았어.”

환이 이불을 가지고 내리막으로 조금 내려가자, 물이 흐르는 맑은 소리와 함께 시냇물이 보였다. 환은 이불을 냇가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뒤를 따라오던 헬레나가 내려놓은 이불을 하나 들고 시냇물에 던져넣어 밟았다. 이불이 생각보다 많이 더러웠는지 그 이불을 지나는 시냇물이 뿌옇게 흐려졌다.

정말 더럽네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헬레나. 환은 양 손으로 자신의 치마를 끌어올리고 이불을 밟는 헬레나를 보고 가슴이 설레었다. 남이 봤으면 어린 부부처럼 보였을터였다. 하지만 이 주변에는 사람이 잘 다니지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오해를 받아보고싶기도 했다.

눈 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올리며 계속 빨래하는 헬레나. 환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집을 조금 더 정리하고있을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천천히 집을 향해 올라갔다.

아직 더러운 곳은 많았다. 전 날 자주 쓸만한 것은 대충 먼지를 치워놨지만, 쓸 것 같지않은 부분은 먼지가 두꺼운 상태 그대로였기에, 오늘 안에 전부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베니로가 중년의 여성의 부축을 받고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용사님.”

,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환. 중년의 여성은 환에게 베니로의 부축을 부탁한 후에 돌아갔고, 베니로는 환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의 탁자에 앉았다.

무슨일로 오셨어요?”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질문을 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제가 검술을 몰라서 일단 이 주변에서 검술을 조금 연습하다가 가려구요.”

환은 고개를 돌려 네레아에게 받은 검을 보았다. 처음 봤던 것처럼 검신에 새겨진 룬문양은 처음과는 다르게 빛나고있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럼 한동안은 여기 머무시는 것으로 알고 네이블 국왕님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은 뒷머리를 긁적이고 표정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꼭 보고 해야되요?”

무언가 마음에 안드시는 것이라도....?”

아직 검술도 못쓰는 일반 평민인데, 국왕님께 보고했다가 실력보고 거짓말이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베니로는 환이 무슨 걱정을 하는 지 깨달았다는 듯 껄껄거리고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보고를 해야한다는겁니다. 그래야 네이블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원이요?”

, 그렇습니다. 네이블의 국가 종교는 네레아교입니다. 말 그대로 국가조차 네레아님을 믿고있는데, 네레아님께서 보내주신 용사님을 도와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국왕님께서는 용사님께서 검술을 못하셔도 네레아님께서 보내셨다고 하시면 네레아님께서 용사님을 보내신 이유가 있겠지하시며 아마 검술 선생을 붙여주실겁니다.”

그들이 믿는다면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자신을 믿어줄지는 알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하며 네레아교의 이름을 더럽혔다고 처형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정 걱정되시면 저희 마을 주민 전체가 발벗고 나서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환은 베니로의 말을 듣고도 많이 고민됐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저희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수도로 사람을 한 명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말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는 베니로. 베니로는 환이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깨달은 듯 당황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청소중이셨군요. 제가 다른 사람들을 불러 도와드리라고 해놓겠습니다.”

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지금 거의 다 끝났고 헬레나가 빨고있는 이불만.....”

그 순간,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냇가에서 헬레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환은 곧바로 벽에 기대어놓은 검을 들고 헬레나가 있는 시내로 뛰쳐나갔다.

냇가에서, 환은 시냇물에 넘어져 오른쪽을 보며 벌벌 떨고있는 헬레나를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저렇게나 공포에 휩싸여 벌벌 떠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 헬레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본 환. 하지만, 그 것을 보고 환도 그녀처럼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시선이 향한 곳. 거대한 체구의 사람을 잡아먹고 기생하는 것인지, 푸른빛의 생선 한 마리가 사람의 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를 차지하고있었고 그 물고기와 인간 몸의 접착부분에는 붉은색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아아....”

환은 겁에 질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않았다. 그 작은소리를 들은 것인지 그것의 얼굴부분인 물고기가 환을 향해 조금씩 돌아갔다. 기분나쁜 고기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의 공허한 눈. 그 눈에서는 살아있는 물고기의 눈에서 보이는 생기는 없었다. 마치 죽어있는 것인데 누군가가 억지로 돌리는 듯한 그런 느낌.

잠시 후, 그의 뒤를 따라 나온 베니로가 그 괴물을 보고 소리지르더니 공포에 질려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저 마물이 어떻게!”

그는 저 괴물을 아는 듯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곳에서 싸울 수 있는 것은 검을 들고있는 자신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 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검을 휘둘러본 경험 자체가 없었기에 그의 머릿속에 상상이 되었다. 달려들고 나서 괴물에게 맞아 죽는 자신의 모습이. 그러나, 자신을 도와준 헬레나를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환은 식은 땀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마음을 결정한 것인지 미소를 짓는 환. 그는 손에 들려있는 검을 꽉 쥐고 괴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도망쳐요!”

다가오는 환을 보며 소리지르는 헬레나. 그 순간, 물고기의 입에서 원래는 나와서는 안되는 커다란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헬레나에게 달려드는 괴물.

하지만, 커다란 몸집답게 그 괴물의 속도는 느렸고, 환은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향해 뛰어들어 감싸고 괴물의 돌진을 피했다.

시냇물의 바닥에 있는 돌멩이에 긁힌 것인지 환의 팔에 상처가 나 피가 냇가를 따라 흘러내려갔다.

도망치세요!”

울먹이며 환을 바라보는 헬레나.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 곳에서 도망친다면 끝도 없이 도망치기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괴물을 향해 검을 꼬나쥐고 자세를 잡았다. TV에서 본 적은 있었기에 대충 자세는 나왔지만, 익숙하지않은 자세가 불편하기만 했다.

걱정마,헬레나. 내가 지켜줄게.”

황소처럼 몇 번의 발길질을 하며 돌진할 준비를 하는 괴물. 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고 그 물을 주워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환은 천천히 옆으로 걸어가 헬레나와 멀리 떨어졌다. 이내 다시 한 번 달려드는 괴물. 환은 옆으로 구르며 그 괴물의 돌진을 피했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가면 승산이 없었다. 괴물은 그렇게나 뛰어다녔는데도 아직 힘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환은 아까 전에 헬레나를 구하다 긁힌 상처가 쓰라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생각에 빠진 환. 잠시 후, 그는 앞에 거대한 바위를 보았다. 자신의 키의 두 배쯤 되는 괴물보다 훨씬 거대한 바위. 그 바위를 보고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바로 바위를 향해 뛰어갔다. 그의 작전은 어떻게 됐든 바위의 앞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바위의 앞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가 바위로 뛰기 무섭게 괴물은 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읽은 것일까. 괴물은 그가 향하는 바위를 향해 돌진했다. 아까보다 더 힘을 실은 것인지 속도는 더욱 빨라져있었고, 그가 도착함과 동시에 괴물도 도착할 듯 했다.

하지만, 그 것은 환이 바라는 바였다. 괴물이 바위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죽을 힘을 다해 달리던 환은 바닥에 검을 꽂아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목표를 잃은 괴물은 바위에 부딪혔다. 커다란 소음을 내며 무너지는 바위. 괴물은 괴성을 내며 자신의 어깨로 부수어버린 바위에 깔렸다.

환은 머리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고 무너진 바위로 다가갔다. 그리고 돌멩이들을 치워 괴물의 얼굴만 보이게 했다.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었기에, 그 괴물의 몸을 찌르는 것은 살인을 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괴물의 얼굴은 단순한 물고기였다. 물고기 역시 죽은 것만 봐왔고 한 번도 죽여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보다는 나을거라 판단하고 그 괴물의 머리를 칼로 찔렀다.

그 순간, 갑자기 검신에 새겨진 룬문자에서 빛이 퍼져나오더니 물고기의 머리가 고무풍선이 터지듯 펑 하고 터져버렸다.

갑작스럽게 터져버려 피할 새도 없이 물고기의 시체가 얼굴에 묻어버린 환은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괴물의 터진 조각을 바라보았다. 곤충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을 빼앗아본 환. 꽤나 큰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정신이 사라진 듯 멍하니 바라보기만했다. 아무리 괴물이었어도 그 괴물은 어엿하게 살아있던 생물이었다.

잠깐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멍하니 있던 환에게 헬레나가 울면서 달려와 안겼다.

고맙습니다, 용사님.....”

서글프게 우는 헬레나. 환은 긴장이 풀려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가슴에서 싸움이 끝난 아직까지도 숨가쁘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피가 끓는 이 기분은 처음이었다. 학창시절 싸움조차 해보지않았던 환에게 이 싸움이라는 자극은 너무나 강했다.

한동안 패닉상태였던 환은 정신을 차리고 슬피 우는 헬레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제 괜찮아.”

정말 무서웠어요....”

아직도 공포에 떠는 듯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강하게 껴안는 헬레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꽉 껴안았던 환을 놓은 헬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소매는 시냇물에 젖어있어 닦아도 닦인 것 같지않고 더 많은 물이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잠시 후, 멀리서 베니로가 큰소리로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용사님!”

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팔을 흔들며 대답했다.

, 괜찮아요!”

환은 미소를 지으며 헬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헬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집으로 돌아온 환은 곧바로 교복을 벗어 밖의 나무건조대에 걸어놓았다. 걸기 전에 강하게 짰는데도 물은 계속 뚝뚝 떨어졌다.

베니로는 환의 집으로 돌아온 헬레나에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 옷 좀 갈아입고 오너라. 그리고 올 때 저 그 어디냐..... , 우리집 옆에 살고있는 위트에게 옷 좀 빌려오너라.”

헬레나는 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베니로는 환을 보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역시 여신님께서 보내신 이유가 다 있었군요.”

감기에 걸린 것인지 연신 기침을 하던 환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베니로의 표정이 눈썹과 수염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감탄의 마음이 느껴졌다.

저 마물은 마왕의 영향권 내에서도 조금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마물이었습니다. 그런 마물을 이렇게 손쉽게 처리하시다니..... 역시 여신님께서는 용사님을 알아보신 게 틀림이 없습니다!”

환은 죽을 힘을 다해 한 일이 그에게는 쉽게 보였는 듯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환은 고개를 젓고 표정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저도 죽을 뻔 했다구요. 쉽게 이긴게 아니에요.”

어쨌든 이기시지않았습니까?”

과정은 어찌되었든 이겼으니 상관없다는 말투로 되받아치는 베니로. 환은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

잠깐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베니로는 무언가 떠오른 듯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서 내려와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럼 지금 바로 국왕님께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용사님께서 도착하셨다고!”

환은 이번 전투에서 느낀 것이 있었다. 아직은 나갈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금 나가게 되어 용사가 왔다는 것이 마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면 분명히 마왕이 환을 노리고 마물들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실력으로는 마왕의 측근은커녕 마왕의 졸개한테도 얻어터져 죽을 것 같았다.

환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국왕에게 알리지말라는 거부의사를 말하려했지만, 거동도 불편한 노인이 언제 나갔는지 베니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먼지만이 휑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거 맞아?”

노인에 대한 의심이 한층 더 깊어진 환. 잠시 후,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게임이라면, 캐릭터가 생선된 곳 근처에서 레벨을 올리며 수련을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저 할아버지가 국왕님께 말하면 무조건 국왕은 자신을 데리러 사람을 보낼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초반의 레벨업 구간을 확 건너뛰고 잡지도 못하는 강한 놈들과 대면해야 할 것이었다.

이 세계의 교통편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것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수련을 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 강해져야 하는걸까.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같은 체력단련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렇다면 여신이 준 검을 제대로 잘 쓰기 위한 검술 훈련을 해야하는데, 환은 원래 세계에서 검도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검술 수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나오던 수련법이었기에 그 것이 정말로 수련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어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하지.....”

환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어진 검을 보았다. 네레아 여신이 만들어준, 이름조차 모르는 이 검. 이 검을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 것일까.

 

밖을 보니 어느새 날이 조금씩 저물고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밖에서 나무 건조대에 말리고 있는 자신의 하계 교복 상의를 만져보았다. 역시나 아직 다 마르지않았는지 만진 손에서 축축함이 느껴졌다.

한숨을 쉬며 그 옷을 입으려 할 때, 멀리서 헬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그녀의 손에는 옷이 들려있었다.

그는 그녀가 도착하기 무섭게 옷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었다. 덩치가 꽤 큰 사람의 것인지 튜닉의 팔의 넓이나 길이 뿐만 아니라 바지의 길이까지 너무 길었다. 키가 178cm인 환도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보다 조금 큰 아이였지만, 이 옷을 입으니 꼭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옷을 입은 것 같이 보였다.

꽤 커다란 사람의 옷인가봐?”

, 아마 마을에서 가장 큰 사람일꺼에요.”

얼마나 크길래 이 정도가 되는 옷을 입고있는걸까. 이 걸 입고있는 것이 과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환의 모습이 웃기는 듯 쿡쿡거리며 웃었다. 역시 그녀는 아까처럼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환은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리고 튜닉의 소매까지 접어올린 후에 자리에 앉아 반대쪽 책상을 약하게 두 번 치며 헬레나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환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 말씀하세요.”

이 세계의 교통수단 좀 알려줄래?”

교통수단이요?”

그녀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이 마을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하고 짧게 소리쳤다.

그 애라면 알 지도 몰라요.”

그 애?”

, 여행을 좋아해서 다른 곳으로 여행을 자주 떠나던 아이가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그녀는 별로 내키지않다는 듯 표정을 조금 찡그리고 말을 흐렸다.

별로 만나고싶지는 않은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헬레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다른 사람과 트러블 없이 잘 지낼 것 같은 헬레나조차 싫어하는 것일까. 환은 그에게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인데?”

그녀는 밖을 잠깐 보더니 한숨을 쉬고 그에게 말했다.

일단 가서 만나보세요. 별로 만나고싶지는 않지만, 저도 따라갈께요.”

지금?”

, 그 애는 어두워질 때 아니면 집에 안들어오는 애라서 지금 가야 만날 수 있어요.”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헬레나. 환은 궁금한 표정으로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환은 조금 고민에 빠졌다. 가는 길에, 헬레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 말 때문이었다.

저는 집 앞까지만 안내해드리고 집으로 돌아갈께요. 그리고 제 소개로 왔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환은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 아이가 헬레나의 이름을 들으면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말하지말라는 것일까. 그는 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갓 변성기가 온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그리고 이내 열리는 문. 그 안에는 헬레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헬레나와는 다르게 레몬빛을 띠는 거친 머리를 가진 소년. 변성기가 온 목소리와는 다르게 얼굴은 장난기가 많은 어린 아이 특유의 귀여움이 있었다. 아직은 추울텐데, 옷은 팔과 다리의 반을 잘라버린 반팔 튜닉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년은 이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는지 손에는 빵이 들려있었다.

환은 조심스레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 주변의 교통수단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왔는데.....”

환의 말에 뒷머리를 긁으며 얼굴로 짜증을 표현하는 아이. 소년은 얼굴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짜증난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알려줬어요?”

이 말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환은 곧바로 그에게 말했다.

헬레.....”

헬레나요? 어디있어요?”

헬레나의 이름이 나오기도 전에 아이는 환의 말을 자르고 아까와는 다르게 활짝 웃으며 환의 등 뒤를 요리조리 기웃거렸다.

헬레나는 안내만 해주고 갔어.”

그 말에 잔뜩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는 아이. 이 소년의 행동으로 보아 헬레나가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다시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을 지은 아이는 이내 한숨을 쉬고 혀를 차며 말했다.

, 헬레나의 소개라니 하는 수 없지. 안으로 들어오세요.”

환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 구조는 환의 집과 똑같았다. 그러나, 가구의 배치나 각종 장식품들을 배치해 다른 집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기 앉으세요.”

환은 그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의자의 앞, 탁자에는 빵부터 시작해서 각종 야채로 만든 볶음이나 국, 스프같은 음식이 이 소년이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이 차려져있었다.

이걸 혼자 다 먹는거야?”

소년은 고개를 당연한 것을 뭘 묻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환은 대단하다는 듯 놀라며 그가 밥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환의 배에서도 밥을 달라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소년은 이번에도 짜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올 때 밥도 안먹고왔어요?”

아까부터 계속 짜증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환도 짜증이 났지만, 일단 정보를 얻으려면 잘 보여야했기에 환은 속으로 화를 삭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오늘 조금 일이 있어서 아직까지 밥을 못먹었거든.”

그 말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더니 앞접시 하나와 나무젓가락 한 쌍을 가져와 그의 앞에 놓고 다시 밥을 먹었다.

이 것이 바로 츤데레라는 걸까. 만화같은 데에서 남자주인공이 츤데레인 여자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처음에 환은 저렇게 매력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에게 주인공이 왜 화를 내는지 몰랐다. 그러나, 남자에다 저런 성격을 가진 아이와 말을 하게 되니 남자주인공이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

환은 그에게서 받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덜어 집어먹었다. 성격이나 생김새와 다르게 음식솜씨는 꽤 좋아 맛있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탁자를 치운 소년은 다시 의자에 앉아 환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의심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잠깐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소년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그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

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구나! 그러니까 내가 모르지.”

소년은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잠시 후, 그는 웃는 것을 멈추고 물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교통수단은 왜 묻는겁니까?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고?”

비꼬는 듯한 그의 말투. 하지만, 그의 말에는 악의가 느껴지지않았기에 그것이 장난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니,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환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의 밑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는 꺼내온 종이를 탁자에 펼쳤다. 그가 꺼내온 종이. 그 것은 지도였다. 그 지도는 전 날 베니로의 집에서 본 것보다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져있었다.

, 이건 아무한테나 들을 수 없는, 헤센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강의니까 잘 경청하세요.”

처음으로 그는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지금 있는 페렐이에요. 여기 북쪽 입구에는 마굿간이 하나 있는데 그 마굿간의 아저씨한테 말을 하나 사서 하룻동안 꼬박 가야 여기.....”

그는 손가락으로 길을 따라 쭉 이동하더니 또 다른 마을표시가 있는 곳에서 멈추고 말을 이었다.

“‘네기아에 도착할 수 있어요. 네기아에 도착해야만 텔레포트를 타고 각 지역으로 갈 수 있지만, 텔레포트는 많은 돈이 필요해서 잘 타고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그는 주변 마을을 무시하고 국가의 중앙에 있는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수도 네레아기스에요. 네레아 여신님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데, 이 도시의 이름만큼 유치하게 만들어진 도시 이름은 세상에 여기 하나 뿐일꺼에요.”

그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환. 페렐과 네레아기스는 지도만 봐도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럼 네레아기스부터 여기까지 온다면 얼마나 걸려?”

.....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타고 온다면 15, 텔레포트를 타고 온다면 3일이면 도착하겠네요.”

“3.....”

그들은 절대로 말을 타고 올 리가 없었다. 대륙의 중앙을 마왕이 차지한 지금, 용사가 왔다는 말을 들으면 그들은 분명히 텔레포트를 타고 데리러 올 것이었다. 그렇다면 환에게 남은 시간은 이 페렐에서 수도까지에 가는 시간 더하기 3일이라는 뜻인데, 만약 여기서도 텔레포트를 타고 보낸다면 3일 더하기 3일 해서 총 6, 일주일도 남지않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 안에 과연 강해질 수 있을지 약간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교통수단이라고 할 건 없어요. 돈이 있는 사람들은 텔레포트가 없는 곳까지 말이나 마차를 타고 가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이동수단인 양 다리로 걸어가거나. 둘 중 하나에요. 물론 돈이 없는 사람들은 텔레포트가 있는 곳도 걸어가야하지만.”

그는 지도를 다시 접고 침대 밑에 넣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환은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그러니까....... 이름이?”

, 제가 제 소개도 안했나요? 제 이름은 헤센 브렌타에요.”

, 그래. 헤센, 고마워. 덕분에 잘 알았어.”

환의 인사에 그는 볼을 긁으며 웃었다.

고맙긴요, .”

처음에는 별로 좋지않은 아이같았지만, 이야기하다보니 괜찮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환은 작별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러자, 헤센이 다가와 그에게 귓속말로 속닥였다.

헬레나한테는 잘 좀 말해주세요. 알았죠?”

역시 그는 헬레나를 좋아하는 듯 했다. 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말라고 당부한 후에 손을 흔드는 그에게 다시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6. 6일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그는 생각했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검술은 당연히 시간이 모자랐고, 심지어 체력과 힘을 키울 수 있는 근력운동을 하는 데에도 모자랐다. 도대체 이 기간동안 무슨 기술을 배워야하는 지 감조차 오지않은 환은 머리를 강하게 긁어댔다.

그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알아냈어요?”

그 목소리는 환이 잘 알고있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나는 곳을 본 환.

헬레나, 집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용사님이 조금 걱정되서요.”

부끄러운 듯 헤헤 웃는 헬레나. 환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헬레나도 그의 옆으로 다가가 함께 걸었다.

걔가 제대로 알려줬어요?”

제대로 알려줬어. 걱정마.”

그럼 다행이네요. 걔가 워낙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그런데 왜 그 헤센을 피하는거야?”

환은 궁금한 듯 물었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나올 대답은 예상이 갔다.

그야 계속 저한테 들이대는게 싫으니까 그렇죠.”

역시나 그녀의 대답은 환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않는 듯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생김새같은 건 괜찮은 편 아니야?”

그렇기는 해도 성격이나 그런게 마음에 안들어서.....”

그래?”

환은 헤센의 성격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헬레나는 그 성격을 엄청 싫어하는 듯 했다. 그래도 도와준 헤센에게는 답례라도 해야했기에, 환은 깜빡한 것을 떠올리는 척 하며 헬레나에게 말했다.

, 그러고보니 내가 고맙다고 인사도 못하고 나왔네. 헬레나, 혹시 내일 고맙다고 말 좀 해줄 수 있어?”

해줄 수야 있지만.....”

별로 내키지않는 듯한 표정을 짓는 헬레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내일 제가 인사해둘께요.”

고마워.”

미소를 지은 환을 보며 얼굴을 붉힌 헬레나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것이 들킬까 부끄러워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헤센의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어느 새 해는 완전히 떨어지고 세상에는 달빛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환은 헬레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그녀는 가슴을 피고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여기에 얼마나 살았는데요.”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환은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계속 괜찮다는 말을 하고 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힘차게 손을 흔드는 헬레나에게 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헬레나가 멀리 사라지자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집. 원래 세계에서도 혼자 살았었지만, 역시 집에 혼자 있는 것은 꽤나 외로웠다.환은 침대로 들어가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검을 바라보았다. 벽에 기대어져있는 검 역시 환처럼 꽤 쓸쓸하게 보였다. 아직 검집도 만들지 못했고 차고 다닐 수 있는 혁대도 준비하지 못해 들고다닐 수도 없었다.

내일 촌장님한테 부탁이나 해볼까.....”

그는 조금씩 잠으로 빠져들며 오늘 있었던 싸움을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식의 싸움이 계속 될 것이었다.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분명 더 강한 상대도 있을 것이었다. 이 괴물보다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파헤쳐나갈지 생각하던 환은 점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잠들었다.

다음 날, 환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을 닫고 자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잠도 깨지 않은 채 들어오는 바람에 부들부들 떨며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창문을 닫았다. 이 세계는 계절이 봄인 것인지 태양은 따스했지만 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그는 밖에 널어두었던 교복을 만져보았다. 역시 하루가 지나니 교복은 뽀송뽀송하게 전부 말라있었다. 그는 옷을 벗어 접어둔 뒤에 자신의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커다란 옷보다는 역시 자신의 사이즈인 교복이 움직이기 좋았다.

그는 검을 들고 옷을 보자기에 싼 다음 검과 보자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베니로의 집이었다. 그가 어제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온 결과. 그 것은 베니로에게 부탁해 국왕에 보낼 사람을 최대한 천천히 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베니로의 집 앞에서,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방금 잠에서 깬 것인지, 베니로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저에요.”

천천히 문을 여는 베니로. 그는 환을 보자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환영했다.

이게 누구십니까? 용사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저희 집에는 어인일로....?”

, 그게....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베니로는 자신의 기다란 흰수염을 몇 번 쓰다듬고는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그래서.... 어떤 부탁을 하러 오셨습니까?”

거실의 탁자 앞 의자에 앉은 베니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별로 중요한 부탁은 아니었지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니 환도 그를 따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죠.... ... 이번에 국왕님께 제 이야기를 보내는 것 말입니다.....”

. 그게 뭔가 잘못된거라도....?”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분께는 죄송하지만 조금 늦게 가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을까해서.....”

환의 말에 베니로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겁니까?”

베니로의 반응을 본 환은 그가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안됩니다.”

그는 웃는 것을 멈추고 곧바로 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러자, 당황하는 환.

.... 어째서?”

죄송하지만 이미 보냈습니다.”

.... 말도 안돼!”

환은 이미 보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아직 한가지 희망이 남아있었다. 이 마을은 시골마을. 시골마을에는 텔레포트를 탈 돈까지 마련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래도 텔레포트는 못타겠죠?”

용사님께서 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당연히 빨리 전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사비까지 털어서 텔레포트를 타라고 돈 좀 쥐어줬습니다.”

안돼!”

환은 하늘을 향해 절규하며 소리쳤다. 이렇게 되면 남은 기간이 6일이라는 뜻인데, 6일로 훈련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용사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고 남은 시간동안 착실히 수련만 하시면 됩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니로는 껄껄거리며 환의 어깨를 탁탁 쳤다.

잠깐동안의 좌절시간이 끝나고, 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나갔다. 뒤에서 베니로가 용사님 어디가세요?!’라고 하며 소리쳤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대답할 시간조차 남아있지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빨리 시작해서 강해져야만 한다.

여기서 안일하게 아무것도 하지않고 성으로 간다면 그의 취급은 안봐도 뻔했다. 성 안에 있는 귀족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기도 못펴고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제대로 강해지지도 못하고 괴물들을 상대하다가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그 전에, 그는 헬레나의 집에 들러야만 했다. 어제 빌렸던 옷을 다시 주인에게 갖다주어야하기 때문이었다.

헬레나의 집에 도착한 환. 그는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여...?”

아직 잠에서 덜 깬 헬레나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나가 누구....”

환의 질문을 되묻던 헬레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기고, 집 안에서 갑자기 분주히 무언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때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헬레나의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환은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은 갔기에 조용히 기달렸다.

잠시 후, 헬레나의 집이 열리며 하늘빛의 원피스를 입은 헬레나가 밖으로 나왔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오래걸렸죠?”

...아니야.”

발그레 웃는 헬레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환. 잠시 후, 그녀는 조심스레 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일로 오셨어요?”

, 맞다. 이거.”

환은 왼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보여주었다. 그 보자기를 보고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에요?”

어제 내가 빌렸던 옷.”

~”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그 옷을 건네받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돌려줄게.”

, 왜요?”

이 옷의 주인이 누군지 한 번 보고싶거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는 환.

그래요? 그럼 같이가요.”

헬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집 밖으로 나와 베니로의 집 쪽을 향해 걸어갔다. 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베니로의 집 쪽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에요.”

그녀와 함께 도착한 곳은 베니로의 집에서 얼마 떨어져있지않은 대장간이었다. 그 곳에는 아침부터 일하는 듯 대장간의 바로 옆 화로에서 장작타는 소리와 함께 모루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 달군 쇠를 차가운 물에 식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대장간 아니야?”

, 맞아요. 일단 들어오세요.”

그녀는 환의 팔을 잡아 끌며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간의 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웠다. 화로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이 대장간의 안은 찜질방이라고 할 정도로 습기가 차있었고 온도가 높았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일하는 것일까. 그는 내심 대장장이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대장간의 복도를 지나기가 무섭게 몇몇의 대장장이들이 헬레나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헬레나, 그 녀석은 누구냐?”

, 저번에 하늘에서 떨어지셨던 분이에요.”

하늘에서 떨어졌던..?”

,! 그 사람!”

한 명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한 명은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대장장이가 그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

그 있잖아 왜, 어제인가 이틀 전인가, 하늘에서 광장으로 떨어졌다던 그 사람.”

,! 그 사람!”

그런데 여기는 무슨일로 왔는가? 그것도 헬레나가 팔짱을 끼고...... 설마.....”

대장장이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환에게 다가와 자신의 우람한 팔로 어깨동무를 하며 그에게 물었다.

벌써 헬레나의 마음을 가져간거냐?! 그 어떤 소년도 빼앗지 못한 헬레나의 마음을 이틀만에 빼앗다니, 대단한데!”

헬레나는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더운 것인지 얼굴을 붉히고 대장장이의 등을 찰싹 치며 웃었다.

환도 어색하게나마 웃으려 노력했지만, 그에게서 흘러내리는 땀과 냄새 그리고 졸려오는 목 때문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환은 그를 밀쳐내며 화난 표정으로 입꼬리만 조금 올린 채 웃는척하며 말했다.

별로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대장장이는 의심의 눈초리로 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네가 그런 사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우리 귀여운 헬레나를 울리는 날에는 내가 네 녀석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마.”

아까와는 다르게 진심이 느껴지는 듯한 대장장이의 말에 환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바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헬레나에게 묻는 대장장이.

그런데, 너희들 무슨 일로 온거야?”

, 맞다! 위덴 아저씨 어디 있어요?”

위덴이라면..... 아마 안쪽 개인 작업실에서 망치질하고 있을꺼다.”

고마워요, 레닌 아저씨!”

답변을 듣고 곧바로 환의 팔을 붙잡은 채 또 다시 끌고가는 헬레나. 그러나, 얼마 가지않아 헬레나는 방 하나의 앞에서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가 그 옷의 주인이 있는 곳이에요. 그 분의 성함은 위덴 크로엘’. 이 곳의 대장장이 분들과 함께 페렐의 대부분의 쇠로 된 기구들을 만들어주시는 분이세요.”

방의 내부. 화로의 불로 인해 붉은 빛이 도는 방 안에 환의 키에 반 정도 더 커보이는 거구의 남성이 그의 크기만큼 커다란 모루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무줄을 이용해 뒤로 묶은 그의 얼굴에서 땀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너덜거리는 옷은 어제 물에서 나온 환처럼 푹 젖어있었다. 얼마나 망치질을 한 것인지 그의 주된 손인 듯한 오른쪽 팔은 왼쪽 팔보다 훨씬 두꺼워져 있었다.

환은 침을 삼키고 천천히 다가가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를 듣지 못한 것인지 그는 환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연신 망치질을 두들겼다. 그러자, 환은 한 번 더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제야 눈길을 주는 위덴. 하지만, 그는 다시 모루 위에 올려진 쇠로 눈을 돌리고 망치질을 했다.

무슨일이지?”

그의 입에서 굵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빌렸던 옷 돌려드리러 왔어요.”

거기 선반 위에 올려놓고 가라.”

환은 고개를 돌려 그가 말한 선반을 찾아보았다. 입구 앞에 있는 그 선반의 위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질서없이 올라가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선반 위에 옷을 올려놓고 다시 인사했다.

, 어제 옷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잠깐.”

그가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찰나, 위덴이 그에게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을 떨은 환은 자리에 우뚝 서서 위덴을 바라보았다.

위덴은 환에게 다가오기 무섭게 그의 손에 들고있는 검을 보고 물었다.

이 검, 어디서 얻은거지?”

환은 자신의 손에 들고있는 검을 한 번 보고 그에게 말했다.

이건 네레아가 준 검인....”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하며 그의 입을 막는 헬레나. 잠시 후, 위덴이 말한 것을 듣고, 그녀는 안심한 듯 한숨을 쉬고 놓아주었다.

네레아 여신님께서?”

.”

잠깐만 보여줄 수 있겠나?”

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위덴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위덴은 몇 번이고 감탄했다.

확실히 여신님이 만들어주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있군.”

그는 다시 환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좋은 검을 왜 손에 들고만 다니는거지?‘

제가 메고 다닐 허리띠가 없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환. 그는 대답을 듣고 턱을 몇 번 만지더니 방의 구석에 있던 상자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그에게 던졌다.

이걸 메고 다녀라.

그가 건네준 것은 검을 등에 멜 수 있도록 고안된 가죽 띠였다. 오랫동안 안 쓴 듯 꽤 먼지가 쌓여있었다.

감사합니다!‘

환은 인사를 하고 곧바로 착용했다. 낡아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부드럽게 착용할 수 있었고, 검도 안정감 있게 등에 멜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환은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더운 대장간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니 옷은 이미 땀범벅이 되어 위덴처럼 젖어있었다. 그나마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 기분은 좋았지만, 찝찝함에서 나오는 기분나쁨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또 다시 옷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하는 환. 그 순간, 헬레나가 환에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용사님!”

그는 깜짝 놀라며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헬레나가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는 꼭 네레아 여신님께 여신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세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 환에게 헬레나는 다그치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네레아 여신님을 믿고 있어요. 그 증거로 나라의 수도까지 네레아 여신님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네레아 여신님께 경칭없이 부르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긴 그렇네.”

환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세계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냥 예수라고 부르면 안좋게 보는 시선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수도의 이름까지 신의 이름을 따라서 짓는 사람들. 애초부터 신앙심 자체가 달랐다.

그나마 위덴 아저씨가 검에 정신팔려있어서 다행이었지, 잘못했다가 쫓겨날 뻔 했다구요.”

화가 나 찡그린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는 헬레나를 보고, 환은 웃으며 말했다.

다음부터 조심할게.”

그제서야 표정을 푸는 헬레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조심해주세요.”

 

헬레나를 다시 집으로 보내고, 환은 집으로 돌아가 옷을 벗어 나무 건조대에 걸어놓았다. 그 이후, 그는 근력 운동을 6일동안 해봤자 힘이 강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검술을 연습하기로 했다.

집 앞에서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린 환. 그냥 가지고 다닐 때는 몰랐지만, 생각 외로 검을 휘두를 때 꽤나 많은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이 검을 들고 싸웠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번을 휘두르니 팔이 아파진 환은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주변에 있는 나무막대기 하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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