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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죽음의 앞에서

죽음의 앞에서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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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검은색이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창문없는 창고마냥 매우 어두웠다. 실낱같은 빛이라도 있으면 좋았을려만, 빛은 커녕 향불도 없어 그의 눈에는 오로지 암흑 뿐이었다. 이 암흑에 어떻게 들어오게됐는지는 기억조차 나지않았다. 그가 이 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도 기억나지않았다.

때때로 이 암흑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자신을 보면, 자신이 이 암흑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머릿 속에 있는 것은 자신이 지어낸 기억이고, 원래는 이 암흑의 일부분이었고, 자아를 가지게 된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그 기억조차 그는 잊어버렸다.

그의 머릿 속의 기억은 마치 불 속에 타들어가는 종이마냥 점점 사라지고있었다. 재라도 남으면 어떻게든 쥐어보겠지만, 그의 타오르는 종이는 재조차 남기지않고 소멸해버려 그는 잡을 수 조차 없었다. 남아있는 기억이라도 살려보고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종이는 빠르게 타올라 점점 그의 머리 속에서 떠나갔다.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조차 타버려 기억나지않았고,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며칠 전, 아니 몇시간 전일지도 모르는 가만히 앉아있는 기억 뿐이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는 이 암흑의 공간 뿐이고, 이 암흑의 공간이 삶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 있었을까, 그는 손가락을 펴 세어보았다. 보이지않아 그저 감각으로만 접었지만, 실제로 그게 접혔는지 접히지않았는 지도 그는 몰랐다. 하나, 둘, 세어갈수록 그는 숫자조차 점점 잊어갔다. 그리고 아홉을 세고 나서 그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숫자를 잊었기때문이었다.

그가 포기하고 주저앉았을 때, 이 암흑에서 볼 수 없는 것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어때? 고통스럽지?"

그는 이 암흑에서 가질 수 없는 빛을 가지고있었다. 아니, 빛이라기보다는 암흑에서 볼 수 없는 색깔을 가지고있었다. 눈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이게 며칠만의 말인가. 며칠이 아닌 몇년만의 말일수도, 수십년만의 말일수도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잊지않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묻고싶은 것은 그게 아닐텐데?"

그가 제일 궁금한 것은 이 남자가 누구인지도, 이 공간이 어디인지도 아니었다. 그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나는 누구요?"

남자는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딱'소리를 내며 웃었다.

"바로 그거야."

남자는 그에게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의 눈 앞에 서서히 한 광경이 나타났다. 흰색의 방 안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제일 앞에 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는 손에 쇠막대기를 하나 들고 누군가를 위협하고있었다. 그를 보고 그는 그 남자를 막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언제 돈 갚을꺼야?"

그 남자는 쇠막대기를 바닥에 내려찍고 말했다. 그의 위협에 앞에 있던 꼬마와 침대에 누워있던 아파보이는 늙은 중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않았다. 중년이 입을 여는 순간, 그는 쇠막대기를 그의 머리로 내려찍었다. 중년의 머리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보고도, 남자는 조금도 주저하지않고 중년의 온몸을 쇠막대기로 내리쳤다. 힘없는 중년의 남자는 부들부들 떨며 맞고만 있었고, 그 중년의 옆에서 소년은 소리하나 내지않고 벌벌 떨며 눈에서 눈물만 흘리고 중년이 맞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장을 입은 남자의 주변에 있던 다른 남자들까지 합세해 그를 심하게 구타했다. 얼마 간의 구타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는 중년에게 다가가 다리를 접어 앉아 중년의 남자의 얼굴에 대고 말했다.

"내가 정이 있어서 이정도만 하는거야. 다음달까지 시간을 조금 더 주지. 그 때까지 안갚으면 네 아들이나 너나 각 부위별로 해외여행하는거야, 알았어?"

정신을 잃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중년의 남자는 아무소리도 내지못한 채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남자는 그의 얼굴을 두번 치고 일어나 천천히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광경이 점점 연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그는 남자가 이 광경을 왜 보여주는지 잘 몰랐다. 이런 사건이 있는지도 몰랐고, 사건은 커녕 저런 장소가 있었는지조차 그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않았다. 이 광경을 보여준 이유를 모른채 멀뚱멀뚱 남자를 바라보던 그에게,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이걸 보고 아무런 느낌 안들어?"

남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쇠막대기를 든 남자를 말리고싶은 기분은 들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 느낌도 안들었습니다."

남자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현실이었으면 벌써 천년도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너는 죄책감조차 하나도 안드는거야?"

그는 남자가 무슨소리를 하는 지 이해하지못했다. 왜 자신이 이 장면을 보고 죄책감을 느껴야하는지, 이 장면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남자는 질문을 다르게 바꿔말했다.

"내가 보여준 장면에 네가 있었거든, 그렇다면 장면에서 너는 누구였을까?"

그 장면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그는 기억에 없어도 자신이 절대로 나쁜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 중년의 남자가 저 아닙니까?"

그의 대답에 남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중년의 남자도, 그 안에 있던 꼬마아이도 아니야."

슬슬 그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런 잔인한 짓을 했다고 믿고싶지않았다. 그러나, 남자의 분위기는 그 잔인한 짓을 주도했던 남자가 그라는 것을 인식시키고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쇠막대기를 들고있던 그 남자란 말입니까?"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 것이 긍정이라는 것은 그도 알 수 있었다. 믿고싶지않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않았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 남자는..... 살았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않았던 가슴이 바늘로 찌르듯 아파오기시작했다. 어째서 자신이 저런 짓을 벌인걸까, 이해가 안되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후회가 가득했다.

"그래서..... 제가 벌을 받고있는겁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면을 보고, 그는 자신이 왜 이런 끝없는 암흑에서 살고있는 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 것은 신이 나쁜짓을 한 그에게 주는 벌이었다. 그는 다시한번 주저하며 물었다.

"혹시..... 이 것말고 다른 것도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남자는 다시한번 손을 그의 이마에 갖다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십, 수백가지의 장면들이 터널에서 달리는 전차마냥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자, 가슴이 총에 맞아 뚫린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아.....아아아!"

그는 고통에 신음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죽어나가거나 고통받았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그들에게 가서 무릎꿇으며 사과하고싶었고, 자신의 영혼과 바꿔서라도 그들을 다시 살리고싶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자, 한번도 웃지않았던 남자의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알겠어?"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진 눈물이 바닥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는 이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남자에게 말했다.

"저에게 벌을 조금 더 주세요."

그의 말에 남자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그는 대답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렸고, 그들 뿐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고통속에 빠뜨려버렸습니다. 이 정도의 벌은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넌 충분히 오랜시간 벌을 받았어."

남자는 말을 이었다.

"넌 아마 지금 날 처음본다고 생각할꺼야. 그런데 나는 몇번이나 너에게 왔었어. 이 장면도 이 곳에 올 때마다 너에게 보여줬지. 그런데 그 때, 너는 나에게 절대로 후회하지않는다고 얘기했었거든.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것마냥 당당했었지."

남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암흑이었던 공간이 조금씩 흰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계속 벌을 줬어. 이 암흑의 공간에서 사는 벌을 말이야."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암흑의 공간은 빠르게 깨져가나고 빛처럼 밝게 빛나는 흰색이 물들어갔다.

"네가 얼마나 여기서 지냈는 지는 나도 몰라, 일일이 그걸 세고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어림잡아 얘기하면 너는 1000년 이상은 여기서 살았을꺼야."

남자는 다리를 접어앉아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바닥이 푸른 초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천년의 시간동안 네가 바뀌지않는다면, 나는 너를 포기하려고했어."

남자는 천천히 일어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점점 하얗게 물들어가는 세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때까지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살색빛 손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그는 후회에서 오는 고통, 고통 속에 빠뜨린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용서를 받았다는 기쁨이 겹치며 미친 듯 오열했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고, 이 눈물이 점점 커지며 강으로 변해 그의 앞에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 강에 손을 넣고 말했다.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 그저 그들에게 가서 직접 얘기하면 돼."

고개를 숙이고있던 그는 머리를 들어올리고 물었다.

"지금 그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

어느 새 남자의 옆에는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배 한 척이 있었다. 어째서 이 곳에 배가 있는 지 이해하지못했지만, 그는 원래 배가 여기에 있었다고 느껴졌다.

"그 배를 타면..... 갈 수 있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남자는 그에게 걸어와 머리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이 때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보였다. 집 안에는 한 여자아이가 보였고, 그 여자아이는 한 남자의 사진을 보고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사진을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학교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이어서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일을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준비가 끝나자 남자의 사진 앞에 다가가 말했다.

"여보, 다녀올께요."

그녀의 입에 지어진 미소가 그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고 행복하게했다. 바로 달려가 안아주고싶었고, 그녀를 만지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이 장면에 떨어져 파동을 일으켰다. 더 오랜시간, 더 자세히 보고싶었지만, 계속 떨어지는 눈물이 그 것을 방해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남자가 미소를 짓고 서있었다.

"자, 그럼 가봐."

남자가 배를 두 번 치자, 위에서 밧줄로 된 사다리가 내려왔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사다리를 잡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사다리를 올라갔다.


배에는 그 혼자였다. 이 배는 자동으로 어딘가로 향하고있었기 때문에 조종할 필요는 없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며 그의 생명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때까지 자신으로 인해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이정도는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느 새, 배는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멈춰섰다. 그 장소에는 비바람도, 천둥번개도 치지않았다. 그저 따뜻한 햇살이 있었고, 푸르른 나무와 맑게 개인 하늘이 있었다. 

그는 사다리를 내려 아래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땅이 그리웠는 지, 그는 몇번이나 흙을 손에 쥐고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무들 사이로 나있는 길의 끝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않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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