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 전, 제가 쓴 짧은 단편 -빛-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은 2분 43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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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으로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흘러내리는 한 남자의 가벼워진 신체. 흐려지는 시야에는 끝없이 쳐들어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를 겁에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병사는 남자를 찔렀던 칼을 뽑았다.
끊임없이 솟구쳐오르는 피가 남자의 갑옷과 얼굴 그리고 찌른 병사의 얼굴과 갑옷을 붉게 물들였다. 피로 물든 철갑옷에 횃불이 비치니 붉은 루비와도 같았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웅장한 성당의 안에 있는 오르간 앞에 서 있는 남자아이는 눈에 좌절감을 간직한 채로 남자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켰어야만 하는 아이였지만,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의 힘으로써는 지킬 수가 없었다.
남자는 미소를 짓고 아이를 바라보며 앞으로 쓰러졌다.
남자가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그 아이가 13살 때의 일이었다. 왕궁 대성당의 성기사로 막 부임했던 남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성당의 앞에 있었다.
대성당은 어린아이가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대성당 자체가 사제들만의 공간이었기에 어린 아이가 성직자가 있는 교회도 아닌 사제들의 공간, 성당에 있을리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근무를 서고 있던 낮, 아이가 대성당에서 걸어나왔다. 손에는 장갑을 끼고, 팔토시까지 낀 것도 모자라 긴팔 옷으로 완전히 팔을 가려버린 아이.
남자는 직감적으로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이는 아무런 말도, 심지어 걸음걸이 소리도 내지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는 아이의 눈. 그 것은 탁한 진흙으로 만들어진 구슬과도 같았다. 눈의 촛점 자체가 맞지 않았고, 얼굴은 매우 창백했으며, 마치 피가 없는 흡혈귀인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고 걸어갔다.
남자는 그를 붙잡아야 했지만, 아이는 만지면 부서질 것만 같았기에,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근무지를 벗어나 아이를 따라 걸어갔다.
아이가 멈춰선 곳은 성당의 뒷편에 있는 숲 속 안의 개울가였다. 나무 사이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받은 그는 매우 아름다웠다.
아이는 눈을 가리고 햇빛을 바라보았다. 슬픔과 좌절이 가득한 눈은 울고있었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피부처럼,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잠시 후, 아이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라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이의 손에는 작은 유리조각이 있었고, 아이는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남자는 아이의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아이의 손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원래부터 피가 없었던 것 처럼 아이는 흰 눈을 벤 듯 흰 색의 피부 그대로였다.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자, 남자는 당황했지만, 이내 아이의 손을 묶어 지혈했다. 그러자, 아이는 손에서 유리조각을 떨어뜨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울었던 것인지 목소리는 이미 쉬어버려 다 큰 멧돼지의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잠시 후,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성당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매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매일 같은 자리로 향했다. 항상 손에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들려있었으며, 베인 상처에는 피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왜이렇게 슬퍼하며 자신을 괴롭히려하는 것일까. 남자는 그 사실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아이는 그 누구와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4년간 아이를 따라다니며, 나오지않는 피를 지혈해주었다.
4년이 지난 여름, 옆 국가에서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의 명분은 아이의 탈환. 아이가 있기 때문에, 국왕은 다른나라가 절대로 전쟁을 선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조차 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팔아 국민들을 선동하여 전쟁터에 내보냈지만, 아무런 전투기술을 받지 않은 주민들은 적군의 칼 앞에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남은 주민들은 성당에서 나오는 아이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 아이 때문에 전쟁이 시작됐고, 자신의 남편, 아들, 손자, 아버지가 죽는 것이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절망과 공포,혼란, 슬픔,좌절이 혼합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아이를 원망하고 있는 다른 주민들을 보며 강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적군이 수도에 도착하고, 성기사인 남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목숨을 걸고 아이를 지키는 것.
남자는 쏟아져오는 적군을 하나 하나 베었다. 얼굴에 피가 묻고, 온몸에 상처가 나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의 안전. 그것만을 생각하며 적군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그 역시 전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에게서 볼 수 없는 새빨간 눈물들을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붉은색으로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흘러내리는 한 남자의 가벼워진 신체. 흐려지는 시야에는 끝없이 쳐들어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를 겁에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병사는 남자를 찔렀던 칼을 뽑았다.
끊임없이 솟구쳐오르는 피가 남자의 갑옷과 얼굴 그리고 찌른 병사의 얼굴과 갑옷을 붉게 물들였다. 피로 물든 철갑옷에 횃불이 비치니 붉은 루비와도 같았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웅장한 성당의 안에 있는 오르간 앞에 서 있는 남자아이는 눈에 좌절감을 간직한 채로 남자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켰어야만 하는 아이였지만,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의 힘으로써는 지킬 수가 없었다.
남자는 미소를 짓고 아이를 바라보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가 죽기 직전, 아이의 괴성이 들리며 감긴 눈에 아주 밝지만, 탁한 빛이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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