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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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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구름 한 점없이 깨끗한데, 땅은 연신 커다란 굉음과 함께 함성을 내지르고있다. 달려가는, 또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있었다. 그 사이에는 나도 껴있었다.

눈 앞에 달려가는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다. 그를 보며 내 머릿속에는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치여 죽을 것이다.

눈 앞에서 화살이 날라와 내 볼을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내 뒤에 있던 사람의 이마에 화살이 박혀있었다. 그 순간 공포가 급격하게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살고싶었지만, 눈 앞의 풍경에 희망이 점점 사라졌다.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드디어 적국의 병사들과 부딪혔다. 앞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고기 베이는 소리가 내 귓속을 강타했다. 빠르게 줄어드는 앞 줄을 밟으며 나는 나아갔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적국의 병사가 도달했을 때, 그 역시 나와 다르지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공포. 그리고 살고싶다는 바램이 얼굴을 통해 절실히 들어나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봐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나도 살고싶었기에, 결국 나는 살기를 바라는 그의 몸에 검을 꽂아넣었다.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지며 쓰러지는 남자. 나는 검을 빼고 그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 계속해서 병사들을 죽여나갔다. 살기 위해서,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앞으로 나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 가슴에는 화살이 박혔다. 흥분을 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아프지는 않았지만, 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렇게 죽게 되는구나라는 공포가 전염되듯 머릿속에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눈 앞은 어째서인지 흐릿하게 보였다. 눈의 초점을 맞춘다고 맞추는데도 앞이 잘 보이지않았다. 소매로 눈을 닦으니 흐려졌던 눈이 조금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눈물 때문인 것 같았다.

앞에서 달려오는 적국의 병사. 나는 검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달려오던 남자는 나의 검을 막고 곧바로 내 배에 검을 꽂아넣었다. 차가운 것이 뱃속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 좋지않은 기분이었다.

급격하게 힘이 빠져나갔다. 이제는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태. 앞으로 쓰러지는 것을 적국의 병사가 발로 차버려 나는 뒤로 자빠졌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려 배쪽을 바라보았다. 피는 배쪽에서 나지않았다. 관통된 등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죽는 것인가. 하늘은 이렇게 나를 데려가려 하는가.

몽롱했던 정신이 점점 나를 잠의 세계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버텨보려 노력을 해봤지만, 매혹적으로 유혹하는 졸음을, 나는 막을 수 없었다.

잠을 자면 편해질까.


나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성, 그 성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기억. 16세였던 그 때, 나는 아버지를 따라 어떤 영주의 성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이 때까지 보지못했던 갖가지 호화로운 장식이나 옷들을 입고있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벽에는 밝은 톤의 벽지, 바닥에는 카펫트가 깔려있었다. 천장은 어찌나 내 키의 세 배쯤 되는 듯 했다.

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곳은 영주의 집무실이었다. 덩치가 꽤나 컸는데도 그는 자신의 몸보다 작은 사이즈의 튜닉을 입고있는 듯 했다. 마치 터져나올 것 같은 튜닉을 보며 신기해하던 나는 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듣지못했다. 영주의 방에 있는 것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날은 아버지와 함께 성에서 자기로했다. 그 성의 시종이 안내한 방은 정말로 컸다. 붉은색의 커튼이 바람에 날려 휘날리고있었고, 방에는 심심하지않도록 커다란 책장에 책들이 무수히 꽂혀있었다. 손님의 방인데도 이정도라는 것에 나는 감동받으며 신이 나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아버지는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방에는 시녀들이 들어와 나를 끌어내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일인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나는 시녀에게 아버지가 어디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시녀들은 자기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를 찾아야했다. 그래서 성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시녀들이 나를 막아서며 나를 어딘가로 끌고갔다. 그녀들이 끌고간 곳은 누군가의 방 앞. 나를 끌고간 시녀가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녀는 문을 끌고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 방의 안은 숲처럼 녹색으로 가득했다. 커튼부터 시작해서 바닥에 깔린 카펫, 침대를 감싼 천까지 전부다 녹색이었다. 그러나 그 방과는 이질적인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노란색의 긴 웨이브머리에 인형의 눈에 쓰인 유리눈처럼 아름다운 눈, 오똑한 코에 윤이 나며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 방과는 어울리지않은 분홍색의 드레스를 입고있는 여성.

시녀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앞으로 공주님을 지켜드릴 아이입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녀는 그녀가 알았다고 하자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방에는 나와 공주라는 그 여성, 단 둘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내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름다운 그녀라면 나의 부탁을 들어줄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직은 제가 힘이 없어 당신을 놓아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가 이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면 당신을 반드시 풀어드릴께요. 그 때까지 저를 지켜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않는다고 맹세를 하는 것 같았다.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나는 그녀를 지켜왔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암살자를 보내 암살을 시도했고, 밥에 독약을 타 독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나를 포함한 병사 여러명이 그녀의 죽음을 막았다 .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 오랜 시간동안 함께하며 내 마음은 점점 그녀에게 기울어져갔다. 하늘과 땅같은 신분차이가 있기때문에 나는 최대한 내 마음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미소가 머릿속에 맴돌때면 성의 주변 숲 속으로 들어가 소리를 치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매일 밤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녀의 얼굴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본 것처럼 아름다웠고 성스러웠다. 내가 만지는 순간 더러워질 것 같은 투명하고 맑은 물처럼.

그녀는 때때로 나에게 성 외부에 관한 일들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공주이기에, 어디에 나가게 되면 암살될까 영주는 그녀를 감금하듯이 방에 가두어놓았기때문에 성의 외부에는 나간 적이 없었다.

그녀가 물어볼 때면, 나는 최대한 말을 재미있게 하며 그녀에게 밖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럴때면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눈을 맞춰주었다. 녹색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에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다음에는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준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 그녀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그 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인지를.


그녀가 거의 권력을 잡았을 때 쯤, 그녀의 아버지인 영주는 전쟁을 일으켰다. 옆 나라의 국왕에게 전쟁을 일으킨 영주는 모든 병사들을 동원해 진격했다. 물론 그 병사들 사이에는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나는 그녀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더이상 그녀를 못볼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처음의 전쟁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아야한다는 본능이 강하게 나를 지탱했다. 여기저기서 피가 터지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짐승의 본능에 따라야했다. 그러나, 그 본능이라는 것도 자주 일어나는 싸움에 무뎌졌는지 점점 약해졌다.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그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싸움에 임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전쟁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몸은 본능을 거부하는 듯 처음과 같이 움직이지않았다. 그러다보니 내 머릿속에는 점점 공포가 쌓여만 갔고 화살을 맞았을 때는 공포가 마음 뿐만아니라 몸까지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의 사람이 나의 배에 검을 찔러넣었을 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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