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이 병사들을 지휘하러 간 후, 얼마간의 휴식이 끝나고 영주가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앞에서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일에 저를 안부르시다니..... 너무하신거 아니에요?"
마치 뱀이 신체를 핥는 것 같은 목소리. 영주는 잘 알고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성의 가장 훌륭한 흑마술사 '케슬린 제니아'아니야?"
어두운 자줏빛의 기다란 웨이브머리에 몸에는 쫙 달라붙는, 양쪽으로 밑단부터 허벅지가 보이도록 잘려지게 고안된 어두운 자줏빛 드레스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부각되어 성적인 면이 돋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미인이었다. 자줏빛을 좋아하는 것인지 입술에도 어두운 자줏빛을 칠했고 밖으로 드러난 피부도 많이 하얗기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꽤나 이질감이 느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곰방대를 들고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어째서 저를 부르시지않으신건가요? 서운하게."
그녀는 한쪽 손만 팔짱을 끼고 곰방대를 든 손을 입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서운한 기색은 없었고 미소를 짓고있었다.
영주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분명 불렀는데 안온건 자네아닌가?"
"제가 이런일에 빠지겠습니까? 영주님께서 부르시지않아서 못온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너에게 보낸 하녀 한 명이 농땡이를 피운 모양이군. 혼을 내야할텐데..... 너에게 보낸 그 날부터 이상하게 보이지않더라고."
그녀는 웃으며 곰방대를 한모금 입에 머금고 내뱉었다. 그러자 입에서 부드러운 느낌의 담배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실줄 알고 제가 미리 혼냈습니다."
그녀의 말에 영주는 표정을 굳혔다. 그러자, 그녀는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음부터는 내가 처리하도록하지. 너는 절대로 손대지마라."
"예, 그러도록하죠."
영주는 한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번 훑고 말했다.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온건가?"
케슬린은 서운하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영주님께 고용된 한 가족 아니겠습니까? 도와드리는게 당연하죠."
"좋군. 자네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되니까."
"그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영주는 표정이 다시 한 번 굳어지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와 이야기할 때면 때때로 거대한 뱀이 자신을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때는 어김없이 좋지않은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조건? 조건이 뭐지?"
그녀는 곰방대를 톡톡 쳤다. 그러자, 위에 쌓인 재들만 주변에 흩어졌다.
"이 싸움으로 발생한 모든 사망자와 죽은 마물들의 시체를 저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케슬린의 말에 고개를 젓는 영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닌 경우 모험가라도 사망자는 모두 화장시켜 납골당에 안치시켜주는 것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였다.
"미안하지만, 사망자는 안되겠는데. 마물만 가져가주면 안되겠나?"
"걱정 마세요, 영주님.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영주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마을사람들이 케슬린에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까지 줬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순식간에 바닥을 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되면 모험가들에게 약속한 것 조차 지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조금 생각해보고 연락주지."
영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케슬린이 웃으며 곰방대를 입에 대고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연기를 내뱉고 말했다.
"침공은 내일 저녁이니 빠른 시간 안에 대답해주십시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로 돌아 걸어갔다. 또각 또각하는 그녀의 하이힐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얼마 가지않아 그녀는 연기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잠시동안 긴장되었던 몸이 풀리며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이마에 손을 대었다.
"아..... 골치아파."
현식은 일단 토미의 가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토미의 가게에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 안에는 책과 그의 정장 상의, 또 보석 하나가 있었다. 그 보석을 꺼내 바닥에 놓은 현식. 보라색으로 빛나는 보석은 미세한 원형을 그리며 안정된 움직임을 보이고있었다. 토미가 나간 후 이틀이 지났을 때 도둑이 들까봐 챙겨둔 마나석이었다. 그는 이 마나석을 토미에게 줄 지, 아니면 다시 가게 안에 두고 문을 잠그고 나갈지 생각했다. 물론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지만, 친해진 사람의 물건을 도둑질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그것보다도 도둑질은 절대로 하고싶지않았다. 현식은 일단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가게의 뒷마당으로 나갔다.
뒷마당에서 그는 불속성 심화책에서 본 마법을 한 번 더 써보려 마나를 모았다. 그러나, 마나를 모아서 나오는 것은 작은 불의 구인 파이어볼트였다. 그는 다시 마나를 흩뜨리고 사용하기를 몇 번, 결국 아무것도 얻지못하고 포기했다. 어째서 안되는 것일까. 그는 이 때까지 보지않았던 정보창을 한 번 보기로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책을 만졌다. 그러자 책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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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 마법 심화 - 불
스킬책/마법사 전용
설명 : 과유불급이라는 말과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둘은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내뱉고있다. 그 안에서 지식은 후자에 속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마법계열의 사람들에게는 힘을, 물리계열의 사람들에게는 지혜를 선사한다.
이 책은 원소 '불'에 관해 더욱 상세하게 적혀져있는 서적이다. 불을 최초로 사용하게 된 사건과 시기부터 시작해 어떻게 마법사들이 불을 다룰 수 있게되었는 지 같은 불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고, 이 안에 수록되어 있는 마법은 하급 마법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용 효과 : 스킬 '파이어볼'습득가능
지능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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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책의 이름 밑에 있는 이 '마법사 전용'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현식은 자신의 스텟창을 다시 한 번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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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현식
나이 : 25
레벨 : 8
HP : 450/450
MP : 182/182(5 mp/s)
방어력 : 18
칭호 : 없음
무기 : 아쿠아마린 실버스틱
상의 : 흰색 와이셔츠
하의 : 회색 정장 하의
갑옷 : 가죽 경갑옷
힘 : 23(15) 민첩 : 13
지능 : 29(17) 행운 : 10
솜씨 : 13 의지 : 15
저항류 :
화속성저항 : 1 수속성저항 : 1
뇌속성저항 : 1 빙속성저항 : 1
지속성저항 : 1
강화류 :
수속성강화 : 1
상태 이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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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책에 쓰여져있는 저 '마법사 전용'이라는 것이 직업같은데, 그의 스텟창에는 직업이 나와있지않았다. 이 때까지 마법을 배우고있었기에 마법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의 직업은 무(無). 즉,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스텟창을 끄고 책의 정보창을 닫았다. 이 때까지 한 것은 모두 헛고생이었다. 이 책은 마법사가 되지않으면 배울 수가 없는 책이었다. 직업이 정해지지않은 그가 아무리 책을 읽고 시도를 해봤자 배울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다시 책을 안에 집어넣고 실망과 짜증에 가득찬 표정으로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