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차에 올라타려 할 때, 마법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식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라탔고, 이내 마차는 출발했다.
현식은 마차의 의자에 앉아 회복되기 전에 맞아서 피가 났던 부분을 소매로 닦았다. 하얬던 그의 와이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성기사처럼 보이는 소녀는 그녀가 용사라고 부르는 소녀에게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밖을 가리키며 저거 보라는 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썰렁한 농담을 하는 둥 쓸데없는 잡담들만 주구장창 늘어놓고있었지만, 옆에 있는 남자는 아무말 없이 자신의 등에 매고있었던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고있었고, 용사라 불리는 소녀는 이미 익숙해진 듯 고개만 계속 끄덕이고있었다.
성기사 소녀를 제외하고 조용한 이 때,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마법사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의 얇지만 고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의 손에는 수건처럼 생긴 흰색의 천이 들려있었다.
"머리에 피가 조금 나신 것 같은데, 이걸로 닦으세요."
현식은 수건을 양손으로 받아들며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표했다. 그들도 피를 이 수건으로 닦는지 흰색의 천이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있었다. 현식은 피를 한 번 닦은 후에 수건을 보았다. 꽤나 많은 양을 흘린 것인지 수건에 커다랗게 피가 묻어있었다. 현식은 수혈을 제외하고 이 때까지 이 정도의 피를 한 번도 흘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식이 피를 닦고 있을 때, 마법사가 물었다.
"검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니 기사이십니까?"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 인해 젖은 머리가 찝찝해 감고싶었지만, 마차는 멈출 생각은 하지않는 것 같았다. 이 상태로 하루 종일 있어야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안좋아졌다.
마법사는 턱을 매만지며 현식의 옷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기사인데 너무 얇게 입으신 것 아니에요? 대부분의 기사들은 대체로 철갑옷을 많이 입으시는데."
"저도 갑옷은 있기는 있는데, 잠깐 빼놓은 사이에 강도들이 들이닥쳐서...."
현식은 피에 젖은 수건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손에 워터볼트를 만들어 피가 묻은 수건을 워터볼트 안에 넣어 주물거렸다. 그러자 워터볼트의 물이 붉게 물들며 안에 들어있던 수건의 색을 빼내었다.
현식은 붉게 물든 워터볼트를 밖에 버린 다음 양손으로 꽉 짜서 마법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법사는 현식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있었다. 현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그러자, 마법사는 고개를 젓고 웃었다.
"아, 그게 아니라 기사분이 마법을 쓴다는게 놀라워서요."
"기사가 마법을 쓰는게 이상한가요?"
마법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체로 기사는 마법사를 경시하는 경향이 조금 있거든요. 마법 연습할 시간에 수련하고말지라는 생각이 강해서 웬만하면 마법은 안배우려고해요."
그리고 그는 옆에 있는 성기사의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옆에 있는 사제도 마법을 배우느니 차라리 수련이나 더 하겠다고 하거든요."
"아, 그래요?"
현식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쉴 새 없이 이야기하던 소녀가 그를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현식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사제였어요? 성기사 아니에요?"
"성기사요? 성기사라는 것도 있어요?"
현식의 말을 듣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마법사. 아무래도 이 세계에는 성기사라는 직업이 없는 듯 했다. 마법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성기사라고 하면 성을 지키는 기사들 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지금 옆에 있는 여자애는 사제기는 한데, 전투를 위주로 하는 '전투사제'에요."
"전투사제?"
"네, 힐이나 버프기술을 수련함과 동시에 신체도 수련함으로써 살아남는데 최적화되어있는 직업이라고 할까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게임을 즐겨했을 때 했었던 게임이 생각났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는데, 그 곳에서 나오는 성기사가 죽지않아서 별명이 성바퀴였다. 이 세계에서는 전투사제라는 직업이 성기사를 대신하는 듯 했다.
잠시 후, 옆에서 전투사제인 소녀가 다가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얘기하는거에요?"
마법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도 이야기 좀 껴주세요!"
현식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잠시 후, 현식은 아까 자신을 치료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지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에게 말했다.
"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의 녹색빛, 그 치료효과가 있는 기술을 써주신 게 당신이죠?"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제가 사제거든요. 겉모습은 철갑을 입고 막 달려들 것 같은 전사지만, 그 실체는 가녀리고 아리따운 사제!"
그녀는 양손을 겹쳐 왼쪽 볼에 갖다대며 가녀려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현식의 옆에 앉았다. 깜짝 놀란 현식이 조금 옆으로 빠지자, 그녀는 다시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검도 들고계신분이 거기서 왜 맞고계셨어요?"
그녀의 질문을 들은 마법사는 깜짝 놀라 손을 저었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식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마물들은 많이 쓰러뜨려봤어도 사람이랑은 한 번도 상대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사람들이랑 싸우는데 약간 공포감이 들은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이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살다가는 금방 죽어요."
"그래요?"
"몇 달 전에 마와....."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자 갑자기 마법사가 달려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래도 마왕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는데, 그 마왕에 대한 것은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않은 비밀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법사가 그녀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고 웃으며 말했다. 현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마법사는 그녀를 용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무언가 말하더니 이내 다시 돌아왔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마법사는 다시 자리에 앉아 현식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한 말은 이상한 소리니까 그냥 잊어주세요."
"아,네....."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찾아온 정적. 이번 정적을 먼저 깬 것은 현식이었다. 그는 마법사에게 말했다.
"이 때까지 저를 구해드린 은인에게 이름도 안밝혔네요. 제 이름은 '장현식'입니다. "
현식이 손을 내밀자, 마법사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말했다.
"아, 제 이름은 '레이블 로엔카'입니다. "
현식은 사제에게 다가가 똑같이 인사했다. 약간 기분이 다운되었던 그녀는 현식의 인사에 다시 기분이 업된 듯 손을 힘차게 흔들며 말했다.
"제 이름은 '텔펜 에스카나'에요. 카나라고 부르시면 되요!"
현식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그는 용사라고 불리는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얇게 뜨며 현식의 손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그의 인사를 받지않았다.
현식은 내민 손을 머리로 가져가 살짝 긁으며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나약한 사람은 싫어."
그녀의 말에 약간 주춤거린 현식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돌아왔다. 그러자, 마법사가 현식에게 소곤거렸다.
"저 분의 성함은 '프레인 트레시아'에요. 약간 저런 성격이니까 현식씨가 조금 이해해주세요."
"아, 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고싶었지만 쌀쌀맞은 그녀의 행동에 그는 한숨을 쉬며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까의 상황때문인 것일까. 현식은 점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을 깨려고 밖을 보고있었지만, 계속해서 보여지는 같은 풍경과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잠을 더 끌어당겼고, 어느 새 그는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