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나오기 전, 현식은 높게 쌓인 그릇을 보고 입을 벌렸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얼마나 먹은거에요?"
그의 질문에 트레시아가 밥을 먹으며 고개를 돌려 살짝 보더니 '흥'하며 다시 밥을 계속 먹었다. 급격하게 짜증이 밀려온 현식은 밥상을 엎을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가 그릇까지 깨지면 돈 좀 나갈 것 같았기에 참았다.
두 명의 여자가 먹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얼마나 오랜기간 굶었는지는 몰라도 마치 자신의 위는 우주인 듯 끊임없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음식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맛도 보지않고 입 안으로 쑤셔넣는 그 느낌. 뭔가 돈과 음식이 아까운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현식이 시킨 음식이 나왔다. 그녀들이 먹은 음식때문에 자리가 좁아서 로엔카와 현식은 별도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로했다.
꽤 여러종류의 음식을 시켰기에 탁자에 많은 음식이 차려졌다. 리쿠고기를 각종 채소와 볶은 음식이나 루와고기를 저며 만든 미트볼과 향신료 몇 가지, 그리고 무우처럼 생긴 채소와 함께 끓인 국도 있었고, 샐러드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의 다리부위처럼 생긴 고기가 훈제가 되어 나왔다. 그 것말고도 많은 양의 음식이 상 위에 차려졌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로엔카. 현식은 웃으며 말했다.
"자, 저희도 먹죠."
그도 역시 배고플 것이기에 그녀들처럼 마구잡이로 먹을 줄 알았지만, 로엔카는 그녀들과 다르게 빠른속도로 먹지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먹어야할 지 아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어올리고 샐러드를 집어 입 안에 넣으며 천천히 음미했다.
"친구분들처럼 안드시네요?"
현식이 묻자, 로엔카는 고개를 잠깐 돌리고 마구 먹어대는 그녀들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식으로 먹기는 조금 싫거든요."
"저도 동의합니다."
현식은 포크를 들어올려 그와 똑같이 샐러드를 집어먹었다. 샐러드에서 신선한 자연의 맛과 함께 식초에서 나오는 것 같은 새콤함과 과일의 향이 어우러져 현식의 입맛을 돋구었다.
"샐러드가 맛있네요."
"그러게요."
현식은 샐러드를 몇 번 더 먹더니, 이내 자신의 앞에 있는 면요리에 포크를 가져갔다. 그리고 면을 조금 섞어 국물을 묻힌 다음, 입 안에 넣었다. 소스는 짠맛이 강했다. 그러나, 이 짠맛을 육수 안에 있는 무언가의 담백함이 끌고 내려와주는 듯 뒷맛에 짠맛이 감돌지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요리에 들어있는 면, 이 면이 정말로 신기했다. 밀가루인 것 같으면서도 밀가루처럼 흐물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육포를 먹을 때처럼 딱딱 끊어지는 식감.
현식이 신기한 듯 면을 들어올려 요리조리 살펴보자 로엔카가 이상하다는 듯 현식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보고있어요?"
"아, 아니에요. 그냥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해서요."
그러자,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로엔카.
시간이 조금 지나고, 현식이 작은 목소리로 로엔카에게 물었다.
"아까 마차에서 하던 말 있잖아요."
"무슨 이야기요?"
"아까 카나씨가 말했던...."
로엔카는 밥을 먹으며 조금 생각하더니, 아까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는지 당황하며 미소를 짓고 고개를 저었다.
"알려드릴 수는 없어요."
"몇 달 전에 마왕이 나타났다는게 그게 비밀인가요?"
현식의 말에 깜짝 놀란 로엔카는 고개를 현식에게 최대한 가까이 대고 말했다.
"마왕이 나타났다는 건 세간에 잘 알려진거라서 비밀은 아니에요."
"그럼요?"
그는 한숨을 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현식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거 꼭 비밀로 해주셔야되요."
현식은 입 안에 국에 담긴 미트볼을 포크로 집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엔카는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사실, 저희는 국왕님께서 용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신청하기 위해 가는거에요."
"용사요?"
"네, 몇 달 전에 마왕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퍼지면서 국왕님께서 용사를 구하시기 시작했거든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만약 용사가 되면 여관의 숙박 뿐만 아니라 여관에서 제공되는 음식까지 전부 무료로 먹을 수 있고, 무기도 다른사람보다 40% 할인해서 살 수 있어요. 그리고 몇 가지 더 있기는 한데 여기서 말하면 오래걸리니까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께요."
그의 말을 들은 현식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게 숨길 일이에요?"
로엔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약한 사람이 용사가 되면 용사의 인장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요. 아직 용사는 되지않았지만, 나중에 될 것을 생각해서 저희가 용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숨기는거죠."
"하긴, 그렇네요. 그런데 트레시아, 저 분은 강하시지않아요?"
로엔카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그게..... 1:1 대인전에서는 상관이 없지만.... 다인전에서는 약간 불안하시거든요. 물론 약한 사람들이 많이 붙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용사 인장을 가지게 된다면 약한 사람들이 아닌 강한 사람들이 반드시 붙게 되있어서....."
"그렇구나."
"아, 물론 그 뿐만이 아니라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고싶어서 숨기는 이유도 있구요."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에 방금 넣었던 고기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잠시 후, 로엔카가 음식을 집어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현식씨는 어디출신이에요?"
현식은 그 질문에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저기, 어디냐.... 그..... 카닐의 산에서 살다가 내려왔어요."
"카닐에서요? 이야, 거기 산 공기가 좋기는 하죠. 그런데 강한 몬스터들이 많았을텐데, 괜찮으셨어요?"
"아, 예.....뭐....."
현식은 이 질문에 빠르게 피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로엔카에게 말했다.
"저는 다 먹었으니까 먼저 올라가볼께요."
"자.....잠깐만요."
밥을 먹던 로엔카가 황급하게 현식의 손을 붙잡았다. 궁금한 표정으로 로엔카를 바라보는 현식. 로엔카는 당황한 표정으로 현식에게 말했다.
"돈은......"
"돈도 내야되요?"
"음식값은 방값과 따로라서요....."
현식은 주머니에서 1실버를 하나 꺼내 로엔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걸로 내보고 부족하면 올라오세요."
로엔카는 현식이 준 1실버짜리 은전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식은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1달 전 마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남일같지가 않았다. 현식이 이 세계에 온지 얼마나 됐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대충 한 달 가까이 된 것 같았다. 마왕이 나타난 것도 한 달, 현식이 이세계로 넘어온지도 한 달째라는 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관련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마왕을 잡아야되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현식. 정말로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는 마왕을 잡아봐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왕을 잡으려면 이 정도의 힘 가지고는 마왕의 부하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수련을 해야했다. 차라리 카닐로 다시 돌아가서 마법과 검술수련을 더 받을지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문 밖에는 로엔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저기.... 돈이....."
현식은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
"얼마나 필요한데요?"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낸 현식. 그러나, 로엔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을 예상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은 값이었다.
"총 5실버......"
"5.....5실버요?"
도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밥값이 5실버나 나오는 것일까. 혼자서 로빈의 여관에서 한 달동안 예약했을 때 밥값까지 포함해서 3실버였는데, 여관비를 제외하고 밥값만 5실버라는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현식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부들부들 손을 떨며 주머니를 털어 손에 올려놓아봤다. 금화는 100이라고 써있는 금화 하나에 10이라고 써있는 금화 하나, 1이라고 써있는 금화 하나, 총 세개였고 은화는 10이라고 써있는 은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화는 10이라고 써있는 동화 한개, 1이라고 써있는 동화 5개가 있었다.
현식은 10이라고 쓰여있는 실버 은화를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다가가 건네주었다.
"남은 은화 반드시 가져오세요."
현식의 표정을 읽은 로엔카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빠른속도로 내려갔다. 차라리 그 때 자신이 싸웠다면 돈을 잃을 일도 없었을텐데라고 후회한 현식.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었기에 그는 그저 한숨만 쉬고 다시 침대로 다가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