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안내한 곳은 어제 토너먼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장소였다. 시녀는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곳입니다."
현식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와는 다르게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파티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인 것인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친한 사이처럼 보였을테지만, 그들의 눈에는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악착같은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퀘퀘한 냄새가 났던 어제와는 다르게 향수를 뿌린 것인지 많이 맡아본 향기가 코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이게 무슨향기인지 조금 고민하던 현식은 이 것이 아르마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여러분!"
황동빛의 깨끗한 갑옷을 입은 전사. 어깨에는 로빈과 비슷하지만 색깔만 다른 대검을 걸쳐매고 붉은색의 망토가 바람에 휘날리고있었다. 그러나, 휘날리는 것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진 현식은 뒤를 보았다. 그 곳에는 작은 어린아이 한 명이 그의 망토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고있었다. 얼굴은 못생긴 편은 아니였지만, 휴지로 얼굴을 닦으면 기름이 떨어질 것만 같은 느끼함이 보였고, 대검을 쓰는 사람답게 목 아래의 갑옷 사이로 우람한 근육이 보였다.
그는 망토 휘날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않았는지 표정을 찡그리며 어린아이가 잡아 흔들고있는 망토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망토를 놓친 아이는 앞으로 쓰러지며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일어났다.
머리에 두배는 되보이는 푸른빛의 모자를 쓰고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쇠봉을 든 아이. 그 것이 지팡이인지 아닌지는 잘 구분이 가지않았지만, 그의 옷에서 풍겨지는 마법의 향기가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얼굴은 꽤나 중성의 모습이었기에 그 아이가 여자인지, 아니면 남자인지 구분은 가지않았지만, 현식은 그 아이가 남자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검을 든 남자는 찡그렸던 표정을 다시 풀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 저와 맞붙게 될 상대인 자네들에게 한가지 제안이 있어서 찾아왔다네!"
그는 말할 때마다 눈썹이 올라갔다. 그 것이 웃긴 나머지 카나는 입을 막고 키득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 당신들의 저희 토너먼트 상대인가요?"
현식은 다른 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무언가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는 양쪽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래, 자네들이 우리의 토너먼트 상대라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여자 아니면 아이들이었다. 트레시아는 그를 벌레를 본 것처럼 바라보았다.
로엔카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제안이 뭔가요?"
그는 대검으로 자신의 어깨를 퉁퉁 치며 말했다.
"자네들, 토너먼트를 포기하고 우리쪽으로 넘어오는 것이 어떤가?"
"넘어오라니요?"
현식은 표정을 조금 찡그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검을 바닥에 꽂고 기대며 말했다.
"자네들에게는 '승산이 없다' 이말일세."
"승산이 없다니요?"
"말 그대로야. 일단 사람부터 우리쪽이 많잖아. 안그래? 이것뿐만 아니라 실력부터 차이나서 금방 끝날텐데 뭐하러 시간낭비를 하냐 이거야."
마치 실력을 전부 안다는 듯이 말을 하는 남자. 트레시아는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확실하게 티를 내며 말했다.
"당신이 우리 실력을 알아요? 해봐야 아는거지 어떻게 싸워보지도않고 차이가 난다는 걸 알죠?"
"계집은 빠져있어!"
험악한 표정으로 바뀌며 호통을 치는 남자. 그 말을 듣고 화난 트레시아가 검을 뽑으려하자, 로엔카가 트레시아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심호흡을 한 남자는 표정을 풀고 현식에게 말했다.
"트레시아, 당신이 이 토너먼트를 포기하고 우리쪽으로 오면, 당신도 우리쪽 명단에 넣어주지. 어때? 좋은 제안 아니야?"
"흥, 웃기시네."
콧방귀를 끼며 말하는 트레시아. 남자는 다시 한 번 호통을 치려는 것을 참는 듯 표정을 험악하게 바꾸었다가, 이내 머리를 쓸어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계집은 빠져있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곧바로 전투태세로 달려들 것 같은 트레시아를, 현식은 한 손을 벌려 막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에게 항복할 생각도 없고 질 생각도 없어요. 돌아가주세요. 그리고 저는 트레시아가 아닙니다."
마지막 말을 듣고 당황하는 남자, 잠시 후, 표정을 찡그리더 뒤에 있던 어린아이를 보고 화를 내었다.
"네가 분명히 저 남자가 트레시아라고 하지않았어?!"
"죄송해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 그 아이는 매우 불행해보였고, 불쌍해보였다. 마치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처럼 보이기도했다.
"내가 트레시아야, 이 멍청아!"
현식의 뒤에 있던 트레시아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한방 먹었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이거,이거.... 내가 한 방 먹었구만. 이름만 보고 남자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잠시 후, 웃음을 멈춘 남자는 현식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보자고, 친구."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돌아 대검을 뽑고 걸어가는 남자.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은 현식은 뒤로 돌아 그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저 남자, 분명히 뭔가 있어서 저러는 것 같으니까 조심해주세요."
카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고 로엔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트레시아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남자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이를 갈고있었다. 이 상태라면 트레시아는 분명 남자가 도발하는 순간 넘어갈 것이 뻔했기에, 현식은 트레시아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자, 깜짝 놀라 현식을 바라본 트레시아의 눈을 마주치며 당부했다.
"트레시아, 저 녀석이 뭐라고 하든 절대로 넘어가지마. 넘어가는 순간 지는거야."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눈을 아래로 향한 트레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쉰 현식은 다시 앞을 보고 동료들과 함께 토너먼트의 원형경기장 관중석을 향해 걸어갔다.
관중석에 앉은 현식은 조금 생각에 빠졌다. 이 곳에 온 사람들은 분명히 레일라처럼 강자일 것이었다. 그런데, 트레시아와 함께 2 대 1로 싸워도 이기지못한 레일라같은 사람들을 현식이 이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스킬도 강한 것들은 아직 배우지도 않았고 지금 생각하는 스킬도 완성이 되지않았는데, 이 상태로 싸우게 된다면 패배는 물보듯 뻔했다.
현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는 것을 본 카나가 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리고 말했다.
"걱정마,오빠! 분명히 이길 수 있을꺼야!"
현식은 카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올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않아 어제 토너먼트에 대해 설명했었던 사제가 천천히 올라와 똑같은 자리에 서서 자신이 들고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몇 번 찍으며 주변을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어제는 잘 주무셨습니까, 여러분!"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이번 토너먼트의 심판을 맡게 된 '벨라 쉰들러'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토너먼트의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자팡이를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었다. 그러자, 빛이 하늘로 올라가며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토너먼트는 10분 제한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많은 시간을 드리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시가 급한 지금, 여러분들에게 많은 시간을 드릴 수 없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마왕이 나온 지금, 이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것도 시간낭비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무에게나 맡기면 사상자가 분명히 많이 나올 것이고, 또 용사를 지원하는 자금때문에 금전도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기에 이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도 아직까지 용사들이 마왕을 물리치지못한 것을 보면 마왕 뿐만 아니라 다른 마물들도 강한 듯 했다.
벨라는 쑥덕거리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찍어 조용히 시킨 후에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사람을 절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죽이는 순간, 양 팀 모두 탈락이고, 사람을 죽인 파티는 전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니 무조건 전투불가상태로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쉽다. 실력차이가 난다면 더더욱. 그러나, 사람을 기절만 시키거나 전투불가상태로 만드는 것은 죽이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 규칙은 아무리 힘이 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힘을 조절해 싸워야하고, 이렇게 되면 강한 마법은 제한이 되기때문에 강한 사람에게는 안좋을 수 있지만, 실력이 좋지않은 약자에게는 아주 좋은 규칙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어서 세 번째 규칙을 발표했다.
"세 번째, 양 팀의 인원은 서로 같게 해서 싸우게 됩니다. 상대의 파티가 3명 뿐인데, 다른 팀의 상대가 10명이라면 당연히 불리한 싸움이 되겠지요. 그렇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양 팀에서 적은 수의 인원인 파티의 인원수를 따라 인원이 많은 팀은 그 팀의 인원수에 맞게 파티원을 빼서 토너먼트에 참가하셔야합니다."
이 규칙은 정말 다행이었다. 현식의 파티는 적은편에 속해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파티들은 전부 6명 이상씩 뭉쳐다니는 것 같았고, 아까 현식에게 말을 건 남자도 10명 이상의 동료를 가지고있는 듯 했다. 이렇게 되면 그가 말한 인해전술은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현식의 파티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마지막입니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되면 무조건 패배입니다. '플라이(Fly)'마법이나 '홀(Hole)'마법을 사용하는 즉시 바로 패배처리되니 주의해주십시요. 또한 바닥에 얼음을 생성하여 공중에 떠있거나, 밖으로 나갈시에도 패배처리되니 그 것도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없는 기술로 시간을 벌거나 공격을 못하게 하는 것을 막아 어떻게 해서든 동등한 조건에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용사를 뽑겠다는 의지를 내뿜는 듯 했다.
그녀는 큰소리를 내어 목이 아픈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자, 이렇게 해서 규칙에 대한 설명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앞으로 30분 후, 첫 번째 대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첫 번째 대전의 출전파티는 이 파티입니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져나오며 그녀의 머리 위에 커다랗게 글자가 쓰였다. 첫 번째 싸움의 주인공은 '엘체 반 헤페리아의 파티'와 '페델 반스타의 파티'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3 : 3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아무래도 페델 반스타의 파티의 인원수에 따라 3:3으로 제한하는 듯 했다.
"그럼, 엘체님은 인원 세 명을 뽑아 원형 경기장의 입구쪽에 있는 시녀에게 명단과 함께 인원을 보내주시고, 페델님 파티분들께서는 시작시간 10 분 전까지 원형경기장 입구로 와주시기바랍니다."
멀리서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머리에 자줏빛창을 들고있는 남성, 옷은 파란 면티에 가죽갑옷을 끼고있고, 바지는 움직이기 편하도록 가벼운 흰색의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고있었다. 그의 다른 파티원들도 뒤에서 일어났지만, 잘은 보이지않아 현식은 엘체의 파티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엘체의 파티는 이미 정해놓은 듯 회의 조차 하지않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