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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던소설/Class Of Class

용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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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씨는 생김새도 그렇고 제가 어렸을 때 잘 따랐던 오빠를 닮았거든요."

"오빠요?"

"네."

그녀는 그리운 듯한 표정을 짓고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오빠도 현식씨처럼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현식은 그 사람도 자신처럼 이세계로 넘어온 사람인가하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 것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에 대해서는 신경을 잘 쓰지않아요. 타인에게 신경을 쓰는것은 대부분 고용된 용병이나 그 가문의 노예들이기때문에 아무리 친한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에게 닥친 일은 그 사람이 해결하도록 방관해요."

확실히 그런듯했다. 카닐도시의 대규모 침공때도 그 누구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지키겠다는 말을 하지않았고, 그 무엇보다 먼저 보수를 물어보았다. 이 곳의 사람들은 보수가 없으면 움직이지않는 것 같았다. 

트레시아는 조금 생각하더니,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데 그 오빠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을 쓰고다녔어요. 약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받고있으면 달려가서 괴롭히는 사람에게 한 방 먹여주고 구해오고는 했어요."

그녀는 잠깐 숨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제가 아직 검술학교에 다니지않았을 때, 다른 남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그 때는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자르고 다녔었기때문에 남자애들이 저를 '머슴아'라고 놀리고 다녔거든요."

안타깝지만, 그 말은 현식도 동의했다. 그녀는 여자처럼 예쁘다기보다는 잘생긴 미소년의 이미지와 흡사했다. 지금은 장발이고 여자용 갑옷을 입었기에 그녀가 여자인 것을 알 수 있었지, 만약 그녀가 짧은 머리에 남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갑옷을 입고있다면 현식도 착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울고있을 때, 그 오빠가 나타나서 저를 구해줬어요. 오빠는 그 때 검술학교를 다니고있어서 멋진 경갑옷에 짤막한 검을 들고있어서 저에게는 마치 왕자님처럼 보였어요."

트레시아는 그 때의 생각에 행복을 느낀듯 미소를 지었다. 현식은 가만히 계속 이야기를 경청했다.

"오빠는 아이들을 물리치고 주저앉아 울고있는 저에게 손을 내밀어줬어요. 그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창피하지만 그 오빠에게 안겨 얼굴을 비비며 펑펑 울었어요. 그 이후부터 저는 오빠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검술학교에도 들어간거구요."

그녀는 검집에 꽂힌 자신의 검을 무릎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저도 오빠의 그런 마음을 이어받아 학교 내에서 괴롭힘을 받던 아이들을 구해줬어요. 대부분 아이들을 괴롭히던 아이가 엘체였기때문에 그 때부터 엘체와는 사이가 틀어졌어요."

말투나 행동때문에 그녀가 다른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예상을 했었지만, 아무래도 현식의 그 예상이 맞은듯 했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그녀가 엘체와 그렇게까지 말을 하고싶어하지않는 이유가 되지않았다. 오히려 엘체가 트레시아를 피하며 말을 하고싶지않았어야 맞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엘체가 자신과 비슷한 급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정중하면서도 예의바른 사람이었기에 그렇게까지는 싫어하지않았어요. 정말로 아이들 괴롭히는거 딱 그것만 고치면 정말로 완벽하게 귀여운 아이였기에 때때로 먼저 다가가서 아이들 괴롭히는 것좀 고치라고 하며 장난도 쳤어요.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녀는 검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꽉 쥐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노거나 분노가 아니라면 슬픔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잠깐동안의 정적 후에, 심호흡을 하고 감정을 추스린 트레시아는 말을 이었다.

"그 사건이 있던 날은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정말로 화창한 날씨였어요. 그 때는 실전 연습으로 약한 마물들을 잡는 날이였는데, 만약을 대비해서 검술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선배들 몇 명을 뽑아 함께 데려갔어요. 그 때, 아까 말했었던 오빠도 있었어요. 저는 오빠가 저를 지켜보고있다는 생각에 반드시 마물을 잡으리라 다짐했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걸어가 테라스의 울타리에 기대었다.

"마물이 있는 곳에 도착한 후, 아무일 없이 아이들이 한 명씩 레오루와 싸워 물리쳤고, 그렇게 실습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어요. 검술교관님께서 돌아가자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모으고 있을 때, 멀리서 누군가가 헥헥대며 교관님을 부르며 달려왔어요. 멀리서 보이는 생김새와 목소리를 들어보니 엘체였어요. 엘체는 달려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교관님을 붙잡고 말했어요. '저 숲에 거대한 마물이 있다'고, 그리고 '아직 한 아이가 마물에게서 벗어나지못하고 도망치고있다'고. 그 말을 듣은 그 순간, 오빠는 곧바로 그 아이가 있다는 곳을 향해 숲속으로 달려갔어요."

현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말했다.

"정 힘드시면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요."

그녀의 표정. 기억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떠올리려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현식은 한숨을 쉬었다.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예상되었다. 아마 그 오빠라는 사람이 마물에게 죽고, 그 죽은 것에 대한 원한은 마물이 아닌 오빠를 그 곳으로 유인한 엘체에게 돌려졌을 것이다.

현식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이야기를 시작한 거, 끝을 내야죠. 그리고 현식씨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한 번 훑었다. 붉으스름했던 하늘이 조금씩 산으로 넘어가며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여갔다.

"물론 교관님도 저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후에 오빠가 달려간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어요. 남아있는 아이들은 울고있는 엘체를 달래고있었지만, 저는 오빠가 걱정되었기에 저도 숲속으로 뛰어갔어요. 먼저 달려간 사람들이 마물들을 전부 처리하면서 간 것인지 제가 달려가면서 마물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어요. 다행이도 아무 탈 없이 오빠가 있는 곳으로 도착을 했는데......"

그녀는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목에 걸려 안나오는 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려 노력했지만,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고, 그녀는 힘겹게 한마디를 뱉었다.

"오빠가... 거대한 마물에게... 먹히고있었어요....."

자신이 좋아하고, 강하다고 생각했던 그 오빠라는 사람이 죽은 채로 마물에게 먹히고 있는 모습을 본 어린아이. 그 상황에 대한 뇌속의 스트레스와 패닉은 엄청났을 것이다. 마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지않은 것이 대단할 정도.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마물을 교관님께서 처리한 후에 저를 발견한 교관님과 함께 오빠의 상반신 뿐인 시체와 기절한 아이를 등에 업고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어요. 오빠의 시체는 아이들이 볼 수 없도록 따로 선정한 선배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데려오기로 했고, 마을에 도착한 저는 오랜 시간동안 밤마다 그 모습이 보이는 악몽을 꾸기도 했어요. 그 때부터 오빠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엘체를 완전히 싫어하게 되었구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현식을 바라보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얼굴은 잘 보이지않았지만, 그녀가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현식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한 번도 겪어보지못한 것에 대한 위로는 그저 위선일 뿐이었다.

트레시아는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알아요? 저번에 거대한 산적에게 당하려고할 때, 현식씨가 절 구해준 모습을 보고 정말 오빠와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더 떠올리기 싫어서 짜증을 조금 많이 냈는데, 미안해요."

현식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표시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 때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녀 역시 이렇게 보니 아직은 어린 소녀였다.

"이제부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네, 그러세요."

"고마워, 오빠. 오빠도 말 놔."

"알았어."

어색하게 말하는 현식. 그 모습에 웃긴 듯 쿡쿡거리며 웃던 트레시아는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현식은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다. 어리지만, 사랑을 하던 소녀가 사랑을 하던 남자의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것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걸어가다가 현식이 오지않자 뒤를 돌아보며 현식에게 물었다.

"안돌아갈꺼야?"

현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나는 조금만 더 생각좀 하다가 들어갈께."

"알았어. 늦게 들어오지말고 빨리 들어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 토너먼트의 전날, 어째서 트레시아는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일까. 물론 동료의 과거사를 안다는 것은 동료간의 유대를 강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안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런 과거를 뜬금없이 현식에게 알려준다? 그 것도 자신이 싫다고 계속 했었던 그 사람에게? 그로써는 가장 이해가 되지않은 부분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검술학교를 다녔을 때부터 알고지냈다던 로엔카조차 그녀가 왜 성격이 안좋아졌는지는 모르는 듯 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람이 아닌 현식에게 말하는 이유.....

그는 한동안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고 앉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않자, 뒷머리를 세차게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숙소는 모닥불만이 활활 타오르며 거실을 밝히고있었다. 그는 왼쪽에 있는 로엔카가 있는 방 안을 열어보았다. 로엔카가 있는 방 안은 커튼까지 쳐져있어 매우 어두웠다. 현식은 방 문을 다시 닫고 방문의 왼편에 있는 테이블 위의 물병을 들어 물잔에 물을 따른 후에 마셨다. 역시나 이 물병에도 마법이 깃들어있는 것인지 물은 매우 차가웠다.

현식은 다시 방문으로 다가가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로엔카가 사용중인 침대의 바로 옆 침대로 들어가 인벤토리창을 열었다. 어둠속에서 밝게 떠오른 인벤토리창. 그는 자신의 허리에 찬 단검을 인벤토리 안에 넣고 닫았다.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너무나 좋았다. 이불 안에 들어있는 솜의 양도 적당해서 무겁지도않았고, 재질마저 부드러운 재질이었기에 현식은 기분이 좋아졌다. 평생동안 이불 안에서 살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현실이나 이세계나 다를 것 없이 이불 안에서만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현식은 눈을 감았고, 열어놓은 창문에서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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