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의 뒷편은 기다란 벽때문에 햇빛이 가려져 밤처럼 어두웠다. 현식은 뒷편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널부러져있는 나무판자들과 쓰레기들, 먼지가 쌓인 채 우두커니 서있는 아무것도 담기지않은 나무상자와 그 위에 층층이 쌓여있는 나무통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쥐들이 찍찍거리며 돌아다녔다. 현식은 그 뒷편 중앙에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검을 뽑아 마나를 검에 집중했다. 그러자, 검의 주변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바람가르기를 시전하려고 하는 것일까. 한동안 눈을 감고있던 현식. 잠시 후, 현식의 검에서 무언가 스파크가 뛰기 시작했다. 마치 부싯돌과 부싯돌을 부딪힐 때 나오는 스파크들처럼, 현식의 검 주변에서 불똥들이 쉴 새 없이 튀어오르고있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바람속성인 바람가르기처럼, 불속성이나 수속성을 이용한 검술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마나때문인지 정신이 조금씩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잡고 계속 검에 마나를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검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것은 검 주변의 온도가 검을 불에 달군 것 만큼 뜨겁다는 이야기였다. 현식은 조금 더 집중을 하며 검에 마나를 모았다. 그러자, 얼마 가지않아 그의 검이 녹기 시작했고, 현식은 쇳물이 손에 떨어지자 뜨거움에 깜짝 놀라 검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뜨거운 부위를 계속 문질렀다. 쇳물이 떨어져 벌겋게 달아오른 손. 현식은 녹아내린 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현식은 차라리 불이 아닌 얼음이나 물을 할 걸 하고 후회했다. 그리고 좋지않은 마음으로 뒷편에서 빠져나와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식이 여관에 들어서자, 현식을 발견한 로엔카가 빠르게 달려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갔다오신거에요?! 떠나신줄알고 깜짝 놀랬잖아요!"
그렇게 생각한 것은 카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녀도 걱정을 했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현식을 바라보고있었다. 현식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가긴 어딜가요. 자, 이제 아침도 밝았으니 밥이나 먹죠."
현식은 로엔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카나의 옆에 있던 트레시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트레시아는 아직 화가 풀리지않았는지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주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밥을 먹고 난 후에, 그들은 여관에서 나와 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이 가까워지며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되어있는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는 새로 바뀌고 있는 것인지 지어지고있는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나머지는 완성이 다 된 것인지 르네상스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양식으로 되어있었다. 뾰족하면서 거대하고 웅장한 성. 검은색과 회색이 뒤엉킨 색을 한 성은 그 상태만으로도 웅장함을 나타내고있었는데, 주변에 돌아다니는 철로 된 은빛의 경계병들과 기사들이 돌아다니니 그 웅장함을 더욱 뽐내는 듯 했다.
성의 문 앞에서, 들어가려는 그들을 한 병사가 다가와 막으며 물었다.
"무슨일로 오신겁니까?"
그러자, 트레시아가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희는 폐하께 용사가 되기를 간청하러 왔습니다."
병사는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별로 그렇게 강해보이지는 않으신데..... 뭐, 상관없나. 안으로 들어가시죠."
병사는 가로막았던 거대한 문을 활짝 열었다. 현식을 포함해서 전부 처음보는 왕성의 내부에 입이 벌어진 그들은 쉴 새 없이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거대한 정원들과 꽃밭들,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테라스와 그 테라스 근처를 치장하는 나무들과 꽃들. 그리고 거대한 건축물은 그들의 정신을 빼놓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병사는 놀라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꺾으시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왼쪽으로 꺾으시면 건물이 하나 나옵니다. 그 곳이 이번 용사의 시험을 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 곳으로 가주시기바랍니다."
병사는 말을 마치고 그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린 후에, 그들이 들어가자 다시 문을 닫았다.
성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점점더 거대해지는 건축물들을 보며 역시 왕은 왕이라는 생각이 들은 현식은 병사가 말한 길을 그들과 함께 걸어갔다. 바닥에 흰색 벽돌타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꽤나 작은 건축물 하나가 보였다. 그 건축물로 다가가 문을 연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건축물의 내부, 꽤나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의 촛대에 촛불이 켜있었고, 그 밑에는 구경할 수 있는 좌석들이 2층에 걸쳐 모서리마다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투기장과 같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있었고 그 경기장에는 선수들이 출입할 수 있는 두개의 문이 있었다.
어째서 이런 경기장에 모이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않은 현식은 로엔카에게 물었다. 그러나, 로엔카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시험을 본다고 하는데, 짐승들과 싸우게 시키려고하는걸까요?"
현식은 볼을 긁으며 조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누군가가 그들의 뒤에서 현식을 밀치며 말했다.
"방해되니까 저리 꺼져."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 현식은 뒤로 돌아보았다. 뒤에는 얼굴이 흉터 투성이인 근육질의 남자가 현식을 바라보고있었다. 윗옷은 입지않고 있었고, 바지는 무릎 밑 종아리부분이 거의 찢어져 넝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 한 명은 고깔모를 쓰고있고 가슴이 나온 것으로 보아 여자 마법사였고, 또 다른 한명은 손에 창과 갈색의 경갑을 입은 것으로 보아 창병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파티에는 힐러가 없는 것 같았다.
현식은 몸을 피해 길을 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거대한 체구의 남성은 가래침을 바닥에 퉤 뱉고는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여자 마법사는 고개를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사과를 표한 뒤,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카나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의 뒷모습에 혀를 내밀며 말했다.
"재수없어!"
로엔카는 현식과 나머지 동료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저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 거대한 체구의 남자 파티를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1층의 좌석에 앉아있었다. 대충 50명 정도 되어보이는 이 숫자로 어떤 시험을 보길래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일까. 대충 상상은 갔지만, 현식은 그 상상이 이루어지지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얼마 지나지않아, 경기장의 북쪽의 단상처럼 보이는 곳의 계단으로 누군가가 한 명 올라왔다. 사제복 차림의 긴 검은색 머리의 젊은 여성. 손에는 거대한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는 지팡이의 반 정도 되는 푸른천의 사제 모자를 쓰고있었다. 꽤나 달라붙은 옷은 그녀의 몸매를 더욱 풍만하게 만들어주었고, 그 달라붙은 옷의 겉에는 옆이 뚫린, 통이 넓은 한벌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그녀는 단상의 맨 끝에 올라와 시끄럽게 떠드는 모험가들을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려 관심을 갖게 한 후에 말했다.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에게 폐하를 대신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전부 용사가 되기를 희망하시는 분들입니다. 한분 한분 강한 힘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마왕을 처치하러 가려는 정의로운 사람들.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에게 깊은 존경심과 감사를 표합니다."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올린 후에 말을 이었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여러분들의 용사가 되어 인류를 구하겠다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폐하께서도 잘 알고계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들었다가 바닥에 찍으며 말했다.
"마음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강한자만이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겠지요."
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후에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여러분들의 실력을 확인해보시고자 이런 시험을 만드셨습니다."
그녀는 지팡이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지팡에서 빛이 일어나며 글자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자들을 본 순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여러분들 중 가장 강한 파티가 용사가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 여러분들이 모두 참가하는 토너먼트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아까보다 더한 술렁임이 주변에 퍼졌다. 한숨을 쉬는 사람들과, 이미 알고있었다는 듯 아무렇지않게 웃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표정도 짓지않은 채 눈을 감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제는 지팡이로 다시 한 번 바닥을 찍어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말했다.
"자, 지금 시간은 13시. 앞으로 6시간 이후에는 성 안을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에 이 성의 내부에 있는 상점으로 가서 앞으로 있을 토너먼트에 대비하여 여러 물품들을 사놓으시기 바랍니다. 무기가 전부 낡은 사람들은 무기를 교체하고! 갑옷이 녹슨 사람들은 갑옷을 교체하며! 장신구가 파괴되어버린 분들은 장신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토너먼트에서는 물약을 절대 사용할 수 없으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숙소는 18시에 여기로 다시 오시면 시녀들이 데려다드릴테니 무조건 19시가 되기 전에 여기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그녀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모르고 준비를 하지않은 것 같았다.
현식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녹아내려버린 검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로엔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일단 저희도 일어서죠."
근심가득한 표정을 한 로엔카는 현식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 여러분들 중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신 분 계신가요?"
로엔카가 카나를 보자 카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으로 트레시아를 보았지만, 트레시아 역시 고개를 저었고 마지막으로 현식을 보자 현식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카는 현식을 보며 물었다.
"뭐가 필요하시죠?"
현식은 검이 있던 부분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원래 있어야할 검이 없었다.
"그 검 어디로 갔어요?"
로엔카가 묻자, 현식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침에 기술좀 수련하다가 녹았어요."
"녹았다구요?"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로엔카. 현식은 약간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무기점으로 일단 향하죠."
"네."